이전 리볼버오셀롯님이 올려주신 위화도 회군 건에 대해 생각해 본 것입니다 -_-a 어차피 딴 데서 쓰는 글 중에 딱 위화도 회군 나갈 무렵이기도 해서. 완성은 안 됐으니 좀 산만하네요.
1. 정도전과 이성계의 결탁
"정도전이 일찍이 태조를 따라가 군사의 대오가 정비된 것을 보고 나아가 은밀히 말하기를, “장합니다. 이 군사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하였다. 태조가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니, 도전이 말을 돌려 말하기를, “왜놈을 쳐서 동남을 평정한다는 말입니다.” 하였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서 한 말. 둘이 만난 것은 조선 건국 8년 전 즈음. 이 때 정도전은 이인임에 의해 귀양 갔다가 풀렸는데, 개경은 들어오지 말라, 즉 정치 행위는 못 한다는 제한을 받고 있었음.
-> 이런 상황, 정도전이 개국 후 보여 준 반고려적인 모습, 자기가 조선의 장량이라고 자청했던 것 등... 위화도 회군 한참 전에 그들은 손 잡았다고 봐야 됨. 그 전에 저 사료부터가 정도전이 "목적"을 가지고 이성계에게 접근했다는 걸 보여 줌.
2. 회군 이후의 상황
가장 중요한 건 조민수의 힘이 어느정도였냐는 것
-> 실록 등에 나타난 조민수의 태도 (님 가면 나는 어쩔 ㅠㅠ) 를 보면 실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성계. 이것만 본다면 말만 좌우로 나눈 거지 이성계 말에 다 따랐다고 보면 됨.
-> 하지만 이걸 그대로 믿을 순 없고 -_-;
조민수가 회군 이후 축출된 건 다음해 12월. 빛의 속도로 빠른 건 아니지만 꽤나 빠른 속도임. 이 과정에서 나타난 반격은 없었음. (있었으면 나쁘게 꾸며서 넣었을 것인데) 이색과 연합했는데도 이 정도면 축출될 당시에는 권력이 없었다고 봐도 됨. 창왕을 올린 것에 대한 거품 정도.
조민수와 손을 잡은 이색 역시 힘이 있었는지는 의문. 이 둘은 상소 한 방에 훅 갔다고 정리해도 될 정도로 쉽게 물러났음. 정도전, 정몽주 등이 모두 그의 제자인데도 이 정도면 -_-; 제자들이 스승과 척을 졌다고 봐도 될 듯. 애초에 신진사대부의 뿌리라 해도 그는 친원, 친불적 성향이라 제자들과 맞지 않기도 했음.
-> 이걸 1년 전으로 소급해 볼 경우 그가 이성계에게 맞설 힘이 있었을지는 의문. 그는 최영에 의해 숙청된 이인임 파. 이걸 생각하면 그저 이성계를 견제할 목적의 얼굴마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 즉 그가 창왕을 올리는 모습이나 이성계가 바로 건드리지 않은 걸 보면 어느 정도 힘은 있겠지만, 이성계와 대등하다고 볼 순 없음.
-> 그런 면에서 창왕을 올린 건 나름 머리를 쓴 거겠지만, 그러고도 1년만에 발린 걸 생각한다면 -_-a
-> 이렇게 보면 고려사 등에서 나오는 위화도 회군의 모습이 진짜일지도 모름. (...)
-> 그에 대한 기록을 보면 친명파인 것 같긴 한데, 이걸 보면 최영이 진짜 이해가 안 감. 친명파 장수 둘을 명나라 치라고 보냈다니 -_-;
-> 최영 얘기는 따로 생각해보고, 그가 친명파라면 이성계가 설득하기도 쉬웠을 듯. 보통 생각과는 달리 전방에 있는 장수들은 전쟁보단 평화를 바라는 경우를 정말 쉽게 찾을 수 있음.
=> 즉 그가 위화도 회군에 동의한 건 어쨌든 상황이 안 좋았던 것, 이성계의 말에 반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찬성해서 자기 지분이라도 얻어 볼랬던 것, -> 근데 생각해보니 이인임 파인 자기가 잘 될 거 같지 않으니 나름 머리 써서 창왕 옹립 -> 1년 후 역관광
3. 사불가론
공민왕 때도 요동 갔던 이성계가 왜 이번엔 안 갔냐고 하지만 이건 바로 설명 가능. 공민왕 때의 상대는 원. 이번에는 명임.
이성계가 중앙에 밀린, 속칭 촌놈이긴 하지만 그 역시 애초에 친원파. 거기에 이 정도로 논리적이며 강력한 반박을 한 것은 그의 생각으로 볼 수 없음. 왜구나 장마철 얘기라면 몰라도 역시 걸리는 건 첫 번째.
-> 이성계의 배후에 신진사대부가 있었다고 봐야 될 듯.
-> 문제는 어쨌든 말은 된다는 거 -_-;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거
3. 위화도 회군
문제는 여기까지 가도 위화도 회군이 우연 / 계획이라는 걸 단정지을 수 없음. 위화도 회군 당시에 대해 전혀 다른 사료가 나오지 않는 이상은. 하지만 없음.
그 위험한 상황에서 하중도인 위화도로 갔고, 급히 건너려다 수백명 잃고, 건넜다가 고립된 병력은 명에 투항까지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님.
회군 속도가 미친듯이 빠르고 (사냥하면서 천천히 갔댔는데 그래도 진군할 때랑 두 배 수준) 가족을 미리 빼돌렸다 해도 어쨋든 반역하는 건데 늦게 가는 게 바보 같은 짓이고 가족 문제는 난세라서 대비했다고 봐도 통함. 당장 날씨 보고 회군하기로 마음 먹고 가족들에게 연락, 빼돌린 거라면 이것 역시 [계획적]이라고 볼 순 없음.
그렇다고 마냥 우연으로 볼 순 없음. 정도전과 손 잡은 건 확실히 [다른 뜻]이 있는 거였고, 위화도 회군하자마자 신진사대부 대거 등용, 전시과 등으로 개혁에 착수. 이 과정에서 이색은 철저히 밀렸고, 이색이 돌아온 건 정몽주가 고려 멸망만은 막기 위해서 힘 써서 됐던 것. 폐가입진까지 참가하면서 누가 뭐래도 이성계파였던 정몽주가 갑자기 돌아선 걸 보면 왕이 되려는 계획을 정말 빨리 밀어붙인 거임.
-> 즉,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전의 정황과 이후의 상황이 너무 철저했다는 것.
=> 이 점에서 이성계가 기회 한 번 잡고 그대로 밀어붙였다는 것까지는 추측 가능
=> 문제는 이게 위화도까지 간 후 [아싸 기회 왔다. 일 시작하자](우연)였을지 사불가론 낼 때부터 [나 지금 너님 몰아내기 위해 명분 쌓고 있음요~](계획) 였을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
=> 다른 사료를 통해 해당 시기 위화도의 날씨나 정도전-이성계의 결탁 여부, 조민수의 힘 등을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게 안 되는 이상 심증으로 할 수밖에 없음.
4. 결론
=> 일단 이전의 정황 쪽을 중시해서 위화도 회군은 계획적으로 결론냄. 조민수는 어느 정도 힘은 있었지만 이성계를 거부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보는 것.
=> 이렇게 되면 그 때 날씨가 안 좋았던 건 이성계에게 정말 최고의 운빨이었던 것. 이런 쪽으로 보면 날씨가 좋았더라도 이성계는 다른 핑계 대고 돌아왔을 것. 뭐 어차피 장마철이긴 했을테니 비 오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행군했을수도.
->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말 운이 좋았던 게, 조민수 등 다른 장수들도 충분히 동감할 정도의 명분을 날씨가 만들어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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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합니다. 결론 내긴 했지만 켕기는 게 많고, 그렇다고 마냥 우연이라고 하기엔 그 후의 행보가 참 빨라요. 최영 -> 이색, 조민수 -> 정몽주까지 정말 빨리 처리했거든요. 거기다 정말 일관적으로 조선을 세우는 길로 갔거든요.
천금 같은 기회를 포착해 엄청난 추진력으로 민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걸 계획했고 운이 따라준 것인지... 뭐 일단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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