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 팬이나 삼팬 입장에서야 당연히 양신이 삼성 벤치에 함께 앉아 있는걸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죠. 은퇴를 선언한 한국 야구계의 전설적인 선수가 엔트리 포함여부와 관계없이 그라운드에 있는 모습을 한 순간이라도 더 보고 싶어하는 건 야구팬들 누구나의 소망이기도 할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무대가 다름아닌 한국 시리즈라는 것과, 단순히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해주기엔 그 선수가 벤치에 단순히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같은 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한 사실이란 거죠.

양신이 누구입니까, 지금 삼성의 상징적인 선수이자 모든 선수들에게 큰 형님 같은 존재입니다. 선수들 뒤에 그냥 든든하게 버티고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모두의 투지와 근성을 불러일으키고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그냥 지나가는 한마디로 스윙을 어찌어찌 하는게 좋다, 툭 던진 말로 후배들의 능력을 120% 발휘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이런 선수가 이런 큰 무대에 단순히 벤치 동석을 한다고 해도 승부에 미칠 영향은 상당하겠죠.

그러나 삼성 입장에서 양신을 엔트리에 포함시킬 수는 없습니다. 은퇴 발표 후 후배들을 돌보는데 집중하며 스스로 몸이 많이 굳었다고 표현하시는 양신을, 플옵에서 잔뜩 소진한 투수력을 보강해야할 삼성에서 엔트리 하나를 사용해가며 포함시킬수는 없죠. 양신 스스로도 고사하셨구요. (아래 SK팬 분, 화나신건 이해하지만 패전처리용이라뇨;; 혹사+부상+수술 테크로 무너져 아직 감 못찾은 상태라곤 해도 오승환입니다ㄷㄷㄷ 구자운도 선발/불펜 모두 가능한 자원이고 이 둘의 합류는 둘 자체의 전력이라기 보다 삼성 필승조에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인겁니다...) 그러기에 규정을 약간 어기더라도 그냥 상대방의 배려를 부탁해 동행하게끔 해온 것이죠.

SK의 김성근 감독님 반응도 당연합니다. 물론 은퇴선언한 전설적인 선수이자 아끼는 제자에게 그 정도 배려는 해 줄 수도 있지만, 단순한 배려 차원이 아니라 양신이 삼성 덕아웃에 엄청난 버프 효과를 주는 존재란걸 잘 알기에 이런 큰 승부에서 당연히 지적할 수 있는 문제고, 지적해야 하는 문제죠.

여기서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선동렬 감독이나 김성근 감독 둘 다 신경전에 능하고 언론플레이도 엄청 잘하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이번 건은 단순 신경전이라 보기는 힘든 일 같습니다. 그럴거면 김감독님 특유의 날카로운 말투로 "안된다. 은퇴한 선배 선수가 뒤에서 도움을 주는건 코치 하나 더 두고 있는 격이다"라고 지적을 했겠지요. 하지만 상대팀의 대선수에 대한 예우를 무시하거나, 애제자이자 야구계 레전드에 대해 서운하게 하거나 하기 싫어서 평소답지 않게 조심스레 말씀 꺼내신 것이 눈에 보입니다. 지적은 해야 될 문제이지만 단순한 신경전으로 비춰져 상대 팀과 레전드 선수에 대해 기분 상하지 않게끔 최대한 둘러서 '인간적으로는 둘 다 좋아하지만'...이라면서 '원칙'의 이야기만 살짝 꺼낸 것이겠죠.

근데 이건 삼성팬 입장에서 그리 기분 나빠해야만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도 예우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되니까요. 만약 양신이 삼성 선수들에게 그저그런 존재였다면 은퇴한 선수 하나 벤치에 앉혀놓든 말든 솔직히 별 신경 안 쓸수도 있는 문제죠. 그냥 거기 앉아서 구경하다 가쇼..할 수도 있는 문제고, 아니면 그냥 상대 신경 긁을 목적으로 "야, 쟤 빼"할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하지만 저렇게 정중하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양신이 삼성 선수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더 나아가 한국 야구계에서 얼마나 큰 선수였는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요? 엔트리에 들지도 않은 은퇴 예정 선수에게 신경을 쓰고, 그것도 무척 조심스레 말을 꺼내 지적한다는 것 말이죠.

결국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양신을 그냥 동행하도록 배려해준 김경문 감독님과 두산도, 양신의 위엄과 위력을 잘 알기에 조심스레 거절을 한 김성근 감독님과 SK도 양쪽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양신에 대한 예우를 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뭐, 삼팬으로서 양신을 벤치에서 더 못보는게 아쉽긴 하지만.. 아마도 시리즈 향방이 결정나는 6,7차전이라거나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경기 후반에는, 경기가 너무 급박한 상황만 아니라면 허락해주지 않을까도 생각됩니다. 삼성이 진다면 어린 선수들 위로를 해주기 위해, 이긴다면 함께 축하하고 축하받고 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 기대를 살짝 해보며, 너무 이 문제로 싸우지 말았으면 합니다.

삼성 선수들이 오히려 대선배가 관중석으로 나가게 된 것에 발끈해서 더 열심히 할 수도 있는 법이고, 김성근 감독님도 미디어 데이때 관련 발언 전문을 볼 때, 그리고 올스타전의 전례를 보건데(당시에도 아무리 올스타전 축제라 할지라도 전혀 김감독님 평소 스타일 스럽지 않은 결정을 내리며 양신을 데려가고 또 기용했죠 ㄷㄷㄷ) 단순히 양신을 무시해가면서까지 신경전 벌이려는 행동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선수 예우 겸 팬 서비스로 지나치기에는 "양신 버프"의 효과가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칠만큼 너무 커다랗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이죠 뭐...

이 문제로 너무 다투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만약 삼성이 이긴다면, 선수들이 관중 다 뚫고 들어가서라도 양신 모시고 내려와 헹가레 칠 거라는 거 알잖아요? 만약 삼성이 진다면, 그라운드로 내려와 분루 삼킬 후배 선수들 다독여 주고 선수신분으로서의 마지막 날에 모두에게 인사 드릴거라는 거 잘 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