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읍내 정육점 아저씨는 조악리에 거주하시는 분이세요. 맨날 고기를 사가는 사람만 사가서 파리만 날린다고 투덜거리시는데 정작 마을을 떠날 생각은 안 하시는 분이시죠. 태어나서 마을 밖으로 나가보신 적이 없으시다나. 쨌든 아저씨가 어느 날은 고기가 다 상하게 생겼다며 삼겹살을 뭉텅이로 가져오셨어요. 덕분에 마을 사람들 모두 다 오랜만에 고기를 포식했죠. 먹다가 신이 나신건지 어떤 분이 소주 몇병을 가져오셨는데, 어른들은 잔을 기울이시면서 그걸 드시더라고요. 저는 미성년자라 주스 조금 마시고. 근데 파티 끝나고 소주 가져오신 그 어른분이 말하시더라고요. 자기 실수로 농약 넣어뒀던 걸 같이 가져온 거 같다고. ...근데 뭐, 지금까지 탈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학교 생활이 생각보다 바쁜 것도 있고 웹소설 계약 관련해서 여러 대화도 나누다보니 한동안 공게에 오질 못했네요ㅠㅠㅠ웹소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고(공게에도 올린 적 있던 글입니다ㅎㅎ) 시험은.....조금 망했지만.....(분명 열심히 했는데....왜 C.......) 쨌든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영춘의 외침이었다. 아이돌 대신 배우를 꿈꿔왔다며 노래 연습 대신 연기연습에만 매진하던 19세 소녀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우가 될 날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아이돌에 머물기에 자신은 아까운 존재라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현실은 짧은 소절에도 음이 흔들리고 춤은 목각인형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 구석에서 나오는 일이 없는 그저그런 아이돌 그룹 멤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연기를 잘하냐 물으면 그것도 아닌 것이 간신히 따낸 드라마 단역에서조차 대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래도 영춘은 자신감이 넘쳤다. 몇 안되는 팬들이 ‘배우상’이라 떠받들어 주는 것 때문일까. 이도 저도 못하지만 여전히 영춘의 꿈은 온갖 시상식을 휩쓰는 배우였다. 참 속도 편하다고, 같은 그룹 소속의 멤버 유하는 생각했다.
“인기도 없는 이 아이돌 짓 하기도 질렸어! 나 이제 진짜 배우로 전향할거야!” “영춘아...” “영춘이 말고 세라! 그 촌스러운 이름 말고!”
영춘이 속한 그룹의 전담 매니저인 미영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매니저 언니,나 사장님한테 가서 따질거야. 왜 5명 있는 그룹에서 나 뺀 4명은 일이 있는데 나만 일이 없어?” “영춘...아니, 세라야....” “정유하는 화보 찍고, 강미미는 드라마 주연 들어가고, 윤지선은 예능 돌고, 최시아는 광고 많이 돌잖아! 왜 나만 아무것도 없는데?”
그걸 몰라서 묻는건가. 한쪽에서 화장을 하던 미미가 코웃음을 쳤다. 용케도 그것을 눈치챈 것인지 미미를 홱 째려본 영춘이 이내 가방 안에서 썬글라스를 꺼내 썼다.
“매니저 언니, 잘 들어. 이번달 말에 우리 재계약 협상가잖아. 나 마땅한 행사 하나라도 안 꽂아주면, 여기 나갈거야!” “여,영춘...” “세라! 그리고 나도 여기 아니어도 오라는 데 많거든?”
미영이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는 사이 고개를 치켜들며 코웃음을 친 영춘이 대기실 문으로 걸어갔다. 일부러 또각거리는 소리를 크게 내며 걷는 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걷다 문을 쿵 하고 닫고 나가자 대기실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풉 하는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쟤 되게 웃긴다. 이러다가 4인조 개편한다고 기사 뜨면 울고불고 난리 날거면서.” “언니, 오늘 회식해요. 4인조 개편 기념으로. 쟤 자존심상 다시 못 돌아올걸?” “나 좀 많이 웃겼잖아. 화보 촬영할 때 지만 예뻐보이려고 하다 감독님한테 쫓겨난 애가 무슨 화보야? 그리고 예능은 지가 이미지 관리 한다고 거절하다 끊긴거면서.” “대배우? 차라리 내가 칸 영화제 갔다 오는게 더 빠르겠어!”
모든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깔깔대며 영춘을 비웃는 사이 미영만이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80~90년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동네 바보가 조악리에도 있어요. 귀신 때문에 미쳐버린거 말고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그런 애요. 연로한 홀어머니랑 같이 살던 앤데, 가장 인상깊은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쥐포에요. 그 애 어머니가 매번 걔 먹으라고 쥐포를 구워주셨고 걔는 그거 먹으면서 마을을 돌아다녔거든요. 가끔 다가가면 걔가 나눠주기도 해서 조금씩 얻어먹은 적도 있어요. 근데 몇달 전에 그 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동네 어른들이 장례를 도와주셨고 이제 걔도 쥐포 먹을 일은 없겠구나 했는데, 뭔가를 먹긴 먹더라고요. 문제는 쥐포가 아니어서 그렇지. 장판 이라던가, 나무 껍질이라던가, 무언가의 가죽이라던가....
조악리 근처의 읍내에 위치한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은지 오래인데 그 문 닫은 가게들 중 하나가 바로 악기상이에요. 급하게 떠나버린건지 피아노랑 클라리넷이 전시된 상태 그대로 놓여있어요. 나름 값비싼 악기로 아는데 저라면 일단 팔고 갔을거 같기도 하지만...쨌든, 예전에는 마을에 들리는 악단들이 주로 악기를 사갔대요. 근데 갱도도 무너지고 산사태도 일어나고 마을이 음기로 가득차니까 결국 망했다고 해요. 근데 책방 아저씨 말로는 악기상 주인장이 떠나기 전에 죽은 악단들이 악기를 사러 온다며 겁에 질려 있었다고 해요. 물론 진짜인지 과장이 섞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조악리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사람을 꼽아보자면 이 부부가 아닐까 싶어요. 남편은 사진가고 아내는 화가인 예술가 부부인데 나름 친해져서 얘길 들어보니까 사랑의 도피를 했다 하더라고요. 이 마을 사람도 아닌데 젊은 분들이 여길 어떻게 알았나 싶기도 하고...그래도 두분 사이는 꽤 좋은거 같더라고요. 아내분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남편분이 사진찍고 있는 것도 자주 봤어요. 아,맞다. 아내분이 여길 올 당시 만삭이셔서 이곳에서 아일 낳으셨어요. 조악리에선 정말 오랜만에 태어난 아이라 동네 주민들이 부부네 집 근처를 지날 때마다 기웃거리고 가는데...사실, 애기를 본 적 있는데 귀엽더라고요. 난 어렸을 때 이렇게 안 귀여웠는데... 근데 요새 남편분이 조금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세요. 애기 사진을 찍으면 인화했을때 자꾸 애기 어깨에 손이 올려져 있는 형상이 같이 찍힌다네요? 아내분이나 남편분 본인도 이유없이 많이 피곤하다 하시고 자고 일어나면 아내분 그림에 이유 모를 손자국이 남아있고...조금 걱정되지만 그래도...별 일은 없겠죠. 아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