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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관한 근본 질문드립니다.
[새창]
2017-07-25 1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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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진솔한 답변에 정말 큰 감동 받습니다. 실은 나 또한 그런 난관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 처음에는 불교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내 역할인줄 알았는데, 관심을 보인 매체에서는 기왕이면 내가 갖고 있는 답변을 작성해 주십사 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해야 하며 불교계에 큰 그림 또한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처치 곤란한 입장이 충분히 공감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구도의 삶을 살았다고 개인적으로는 주장할 수는 있는 자이나, 적어도 정규 철학, 불교학, 불교철학 석사나 박사 코스를 거친 사람은 아니기에 불교 철학, 역사 등에 대해 실은 잘 모르고 있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기준에서, 또 소비자의 권리를 확보한다.는 입장에서 의문을 제기한 것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종단을 상대해야 하고 관련 학자분들을 상대해야 하게 생겼으니 ^^ 이 기준에서는 매우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교와 인연있는 여러 학자분들께도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미국 대학의 어느 철학과 교수는 <보내주신 메일 잘 읽었습니다. 좋은 질문들입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하나가 충분히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것들이어서, 메일로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질문 모두에 대해 좋은 답변들이 가능하다고 봅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선생님께서 직접 어느 대학이나 불교단체에서 개최하는 불교강좌 같은 곳에서 시간을 충분히 두고 강사와 참가자들에게 하나 하나씩 문제를 제기하시면서 오고가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의 답을 찾으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주어진 정답같은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할 테니까요.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결과로서의 정답같은 것에 매이지 마시고, 오히려 그렇게 선생님의 답을 찾는 구도의 과정을 즐기시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라는 답변을 주었고,
또 국내 유명 대학의 어느 명예 교수는 <우선 선생님의 구도열정과 진지한 태도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불교계의 상황에 대해 선생님께서 여러모로 실망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불교 자체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시게 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데, 저도 선생님의 강렬한 비판의식과 의문점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질문 내용을 접하면서 역설적으로 한국불교의 희망을 봤습니다. 우리 불교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인데, 그래도 선생님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분이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저로서도 그러한 생각을 완곡하게나마 여러 기회를 통해 표명해 왔습니다만, 불교교단 뿐만이 아니고 불교학계에서도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28개의 질문에 대해 이메일을 통해 일일이 답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함께 토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부처님의 실체와 불교의 근본 교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오늘날 불교계나 승려들의 설법 내용과 무엇이 다른지를 구분해 보실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불교계의 문제는 오늘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불교사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데, 명색이 불교사를 연구한다는 저희들의 이해수준이 낮아서 충분한 해답을 드릴 수 없는 점이 안타까울 분입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답변들과 한 불교 매체에서 연재를 게재해 주겠다는 답변을 들은 것과 한 분의 저명한 교수께서 공론화의 장이 마련된다면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 표현 이 정도가 내가 지금까지 얻은 수확이라면 수확물의 전부입니다. 게다가 한 인간된 자로서 다소 두려움과 불안도 느끼고는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불교계 방송에서 나를 불교 아닌 다른 분야의 전문가로 섭외한 바 있었는데, 그 때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내 쪽에서 적절한 사유를 대고 거절한 바 있습니다. 헌데, 이제 내가 불교 및 불교계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니, 이거 이러다가 불교계 매체나 방송 쪽과는 영영 인연이 끊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밥줄 걱정 부터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kbs,mbc, sbs 등 다른 방송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한 10년 전부터 방송에 일절 출연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고, 그나마 불교계와 내 삶과는 적잖이 좋은 인연이 있는 터라, 그 마지막 남은 끈 마저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 정주영 회장의 말씀 마따나 <해보기나 했어?>라는 자세로 오유 과게나 철게에도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나로서는 일단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입장에서 글을 올린 것입니다. 선생님의 진솔한 의견에 진심으로 거듭 감사드립니다.
41
불교에 관한 근본 질문드립니다.
[새창]
2017-07-25 13: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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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m 선생님께 선생님의 고견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불교에 관해 많은 공부와 연구, 진지한 사유 및 성찰을 해오신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어떤 특정 시기의 불교를 기준으로 답변해 주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개인적 느낌은 받았습니다. 이를 테면 석가 생존 시대의 원시 불교를 기준으로 하고 계시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먼저 위 질문을 하는 취지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합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여전히 대승 불교를 비불이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승 불교에서는 여전히 상좌부 불교를 지칭해 소승 불교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개 각국의 불교에서는 실제로는 여성이 깨달은 사례가 단 하나도 없으며, 여성 출가를 허용하지 않는 곳도 있고 여성 출가자가 깨달을 수 없으니 다음 생애 남자로 먼저 태어나라.고 주장하는 승려들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깨달음이니 해탈이니에 관해 전세계 불교계가 공동 논의 및 연구, 합의 과정을 거쳐 이것이 <깨달음>, <해탈>, <열반>, <윤회> 이란 말의 바른 정의다.고 딱히 공동 결론에 이르지도 못한 것으로 압니다. 불교계 밖의 사람이 보기에 불교계와 불교인들은 여전히 좋게 말해 논쟁중이고 나쁘게 말하면 서로 자기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전세계의 관련 소비자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 밖에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아예 이런 문제 자체를 공론화해서 소비자들도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취지가 매우 큽니다. 저 질문들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것입니다. 정말 불교를 신앙으로 선택해도 괜찮을까? 정말 내가 읽는 책이 내가 다니는 절이 내가 만나는 불교 지도자가 바른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에 관한 세계 불교계 공인의 기준이 없는 게 현실이라 생각되기에 극히 소비자의 권리 차원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공론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점 부디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링크 글과 답변들도 소중하게 또 감사하게 또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출처 등도 언급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야 나 또한 확인이 가능하고, 나 또한 이를 근거로 관련 학자, 불교 각 종단 및 각 지도자분들께도 나름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테니까요. 감사합니다.
40
불교에 관한 근본 질문드립니다.
[새창]
2017-07-25 13: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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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소중한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얼마든지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으시겠다는 생각입니다.
39
불교에 관한 근본 질문드립니다.
[새창]
2017-07-25 1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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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소중한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참고가 됩니다.
38
어떤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5 12: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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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사유 과정과 그에 따른 결론, 존중합니다. 이것은 관찰자나 검증자 입장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 중 하나라고 받아들입니다. 이 기준에서는 분명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의 자체는 사고실험처럼 가설을 설계하고 연구 및 탐구, 실험, 관찰 등을 통해 추론하고 검증하고 피드백을 통해 어떤 결론에 이르는 그 자체도 매우 중요하나 실제로는 그 현실에 처한 당사자가 나라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기준에서 저 난제를 증명하거나 해결해 나갈 것인가? 라는 관점이 더욱 더 중요한 영역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좀 더 구체적인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고,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나를 증명해 주지도 못한다면, 나는 가족, 직장, 관계 등 일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세계를 사는 어떤 사람도 나에 대한 기억 조차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대 사회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정체성<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가족관계록부 등>이 있을 때 자기를 확인 받고 나서야 은행, 경찰서, 소방서 등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정체성 자체가 없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대체 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혹은 그녀는 나이, 이름, 고향, 주소 등도 타인에게 납득할 만할 정도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타인들은 이 낯 선 존재를 쉽게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며, 구체적으로 그 신원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이런 처치 곤란한 상황을 상상해 보시면 위 문제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확 와닿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을 하려고만 해도 최소한의 신분증은 요구하는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생명 자체로서의 생존, 사회적 존재로서의 생존, 경제적 존재로서의 생존 등 조차 쉽게는 확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증명할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시는지요?
설상가상으로 더욱 더 어려운 점은, 설사 그 혹은 그가 이러한 현실을 큰 틀에서 이해할 정도의 지성을 갖추었고, 그 지성을 기반으로 상황을 어느 전도 파악한 이후에도 난관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제아무리 검도 이론과 검도학문 검도의 역사에 통달한 자가 있다고 해도 그가 검도의 고수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과학의 역사, 이론 등을 줄줄 꿰는 자가 있다한들 그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의 발견을 이뤄내기에 충분하고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연애나 결혼에 관한 온갖 이론과 사례 등을 자기 손바닥 보듯 훤하게 꿰고 있는 자가 그 자체만으로 실제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도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지식이나 정보로 아는 것과 실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에는 정말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관점에서 내가 실제로 존 내시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나는? 이 기준에서 문제에 접근해 보시면 어떨까요? 선생님 자신이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처한 당사자이며, 그러한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위 난제들을 바라보시면 또 다른 사유 과정이 펼쳐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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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5 09: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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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델 선생님의 소중한 의견과 결론 감사히 읽었습니다. 충분히 공감가는 결론입니다. 다만, 만약 선생님께서 검증하는 자의 입장이 아닌 그것을 자기 삶을 통해 스스로 입증해야만 하는 자라면 어떠할지요? 이 기준에서 저 문제들은 선생님께 전혀 새로운 시야를 제공해 줄 수 있을것입니다. 스스로를 존 내시의 경우에 대입해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자의 기준에서 저 문제들을 새롭게 인식해 보시면 어떨까요?
36
어떤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5 09: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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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저 질문이 선생님께 확 와닿으려면 상상력과 연기력이 좀 필요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존 내시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선생님께서 존 내시라는 입장이라면 어땠을까요? 선생님께서 만약 존 내시를 관찰하고 검증하는 입장이라면 어땠을까요? 선생님께서 존 내시를 정말 아끼는 가족이나 친구라면 어땠을까요? 선생님께서 존 내시가 <리만 가설>등 인류의 난제를 풀어주기를 학수고대하는 어떤 선견 지명 있는 당대의 석학이라면 어땠을까요? 이렇게 다양한 기준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접근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겁니다.
영화에서는 존 내시는 자신이 사는 현실이 가상 현실(정신 장애, 정신 분열, 무의식이 발현 된 세계 등등으로 불릴 수 있는 바로 그 세계)라는 것을 인지하는데만 수십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당대 지성인 존 내시가 그 사실을 인지하는데만 수십년이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즉 현실의 자신은 늙었는데 그들은 전혀 늙지 않음을 보고서야 겨우 그들이 가공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면(벗어난 것도 아니고 벗어날 실마리를 얻는 데 수십년이 걸린 셈이지요.) 존 내시와 같은 이들은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요? 이 주제는 아주 아주 흥미롭답니다.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인식론, 존재론, 능력, 선택과 책임, 삶과 죽음 등등의 영역)들이 총체적으로 복잡계를 이루는 분야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만큼 해법 또한 복잡할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퍼즐조각(충분한 조건) 중 단순히 극히 일부를 아는 것과 그 현실에서 실제로 그 작디 작은 앎을 활용해 전체 퍼즐 전체를 맞춰나가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존 내시처럼 똑똑한 인물 조차도 그 세계에서는 적어도 수십년 세월을 보낸 후에야 겨우 겨우 벗어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정말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이것 부터 의문이 듭니다. 정말 보이는 것을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이것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인지요? 가상 현실 세계(물론 그 당사자에게는 현실 그 자체로 느껴지고 받아들여집니다. 다만 편의상 이렇게 이름 부르는 것입니다.)에서는 인간이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이 실제로 가능합니다. 실제 사례와 현실에서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조차 끝 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 조차 철저히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이 점이 이해가 되십니까? 숨 쉬는 것도 끝 없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십니까? 한걸음 내딛는 것도 삶과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문 하나 여는 것에도 생사가 오갑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진정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자만이 아주 실낱같은 단서를 포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것이 탈출지점이 아니고 그저 본격적인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주 전체 지구 전체가 전쟁터가 되어버린 세계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군과 아군을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의 전장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 어디에 적군 스나이퍼가 은닉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이 나에게 독을 먹일지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없습니다. 맞다, 틀리다.나는 감히 단정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나 연인 조차 섣불리 믿을 수 없습니다. 내 욕구와 감각, 생각, 느낌, 무의식 조차도 섣불리 믿을 수 없고 또, 그리해서도 아니 됩니다. 이것이 가상 현실 세계의 어려움입니다. 게다가 인체는 사실이든 가상 현실이든 간에 그것을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게 생겨 먹었기에 그 공포, 두려움, 불안, 생명의 위협은 고스란히 그 개체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선택이 그 개체의 생명을 얼마든지 앗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가상 현실 세계의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보이는 그대로를 믿자니 나는 내 손에 수 없이 피를 묻히는 끔찍한 살인자가 될 수 밖에는 없고, 저항하지 않자니 과도한 공포와 불안, 의혹 등이 내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스트레스를 불러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존 내시가 멍청하고 바보여서 수십년간 가상 현실 세계에 갖혀 있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상상 그 이상의 거대한 공포, 두려움, 불안, 생명의 위협, 의혹과 의심 등이 실제로 존재하기에 그 무엇하나 섣불리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나는 봅니다.. 즉 이 거대한 공포, 불안, 생명의 위협, 의혹, 혼돈이 전제되지 않은 논의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그 개체가 최고도로 끔찍한 공포와 불안, 두려움, 의혹을 불러일으키게끔 스스로 설정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 때의 극심한 혼란과 두려움, 공포, 불안 또한 더해집니다. <그 무엇하나 안심하고 선택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끔찍한 상황>이야 말로 가상 현실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고 난제를 다시 살펴보시면 전혀 새로운 시야로 바라보게 되실 겁니다. 불교에서 대체 왜 부처를 일컬어 자기를 이겨낸 위대한 승리자. 라고 하는지도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실 겁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습관이 있는 자요, 그저 진리와 깨달음의 길을 실제로 걸어온 자입니다. 헌데 그러한 자의 기준에서도 <아! 이런 의미에서 부처가 실제로 존재했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으며 마왕 파순 이야기와 같은 가상 현실을 실제로 겪고도 이를 극복했다면, 바로 이 기준에서는 능히 <자기를 이겨낸 위대한 승리자. >라고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공감에 이르게 합니다. 인류의 절대 다수는 존 내시의 경우에 처하거나 부처의 경우에 처하면 거의 거의 평생 동안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위 난제들은 적어도 인류에게 생과 사를 가르는 중대한 현실 문제로 작용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개인의 망상은 정신병, 집단의 망상은 종교, 민족이나 국가 단위의 망상은 통치이념이다.는 말이 이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주제의 끝에는 개인이 과연 주체적으로 자기 신념과 사상, 종교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시대에 인류가 진입했는가? (이것이 가능한 시대라면 자연히 인류는 차원이 다른 인격과 지혜, 용기 등을 두루 두루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고차원적 인공지능과 연계된 고도의 가상현실 세계가 펼쳐지면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술, 마약 중독, 도박 중독, 대중매체, sns 중독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 인류에게 닥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밝혀내는데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겠지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굉장한 어려움이 따르곤 합니다. 이 측면에서 바라보시면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35
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5 09: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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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진 선생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 관련 논의를 공론화 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살해 위협도 있을 수 있고, 실제 살해 기도도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욕 몇 마디 쯤 들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 정도 각오하지 못하면 진리와 깨달음의 길을 걸어간다.고는 감히 세상을 향해 드러낼 수 조차 없을 겁니다. 물론 선생님의 지혜로운 충고는 정말 감사합니다. 나 또한 불필요한 언쟁이나 갈등은 되도록 피하고자 합니다. 허나, 나에게는 자연히 겪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된다.고만 말씀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하나 뿐인 생명이고 단 한번뿐인 삶이기에 소중하게 여길 것만은 분명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34
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5 09: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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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 문제를 보고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저 질문이 선생님께 확 와닿으려면 상상력과 연기력이 좀 필요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존 내시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선생님께서 존 내시라는 입장이라면 어땠을까요? 선생님께서 만약 존 내시를 관찰하고 검증하는 입장이라면 어땠을까요? 이 기준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접근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겁니다.
영화에서는 존 내시는 자신이 사는 현실이 가상 현실(정신 장애, 정신 분열, 무의식이 발현 된 세계 등등으로 불릴 수 있는 바로 그 세계)라는 것을 인지하는데만 수십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당대 지성인 존 내시가 그 사실을 인지하는데만 수십년이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즉 현실의 자신은 늙었는데 그들은 전혀 늙지 않음을 보고서야 겨우 그들이 가공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면(벗어난 것도 아니고 벗어날 실마리를 얻는 데 수십년이 걸린 셈이지요.) 존 내시와 같은 이들은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요? 이 주제는 아주 아주 흥미롭답니다.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인식론, 존재론, 능력, 선택과 책임, 삶과 죽음 등등의 영역)들이 총체적으로 복잡계를 이루는 분야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만큼 해법 또한 복잡할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퍼즐조각(충분한 조건) 중 단순히 극히 일부를 아는 것과 그 현실에서 실제로 그 작디 작은 앎을 활용해 전체 퍼즐 전체를 맞춰나가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존 내시처럼 똑똑한 인물 조차도 그 세계에서는 적어도 수십년 세월을 보낸 후에야 겨우 겨우 벗어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정말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이것 부터 의문이 듭니다. 정말 보이는 것을 실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이것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인지요? 가상 현실 세계(물론 그 당사자에게는 현실 그 자체로 느껴지고 받아들여집니다. 다만 편의상 이렇게 이름 부르는 것입니다.)에서는 인간이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이 실제로 가능합니다. 실제 사례와 현실에서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조차 끝 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 조차 철저히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이 점이 이해가 되십니까? 숨 쉬는 것도 끝 없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십니까? 한걸음 내딛는 것도 삶과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문 하나 여는 것에도 생사가 오갑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진정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자만이 아주 실낱같은 단서를 포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것이 탈출지점이 아니고 그저 본격적인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주 전체 지구 전체가 전쟁터가 되어버린 세계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군과 아군을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의 전장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 어디에 적군 스나이퍼가 은닉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이 나에게 독을 먹일지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없습니다. 맞다, 틀리다.나는 감히 단정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나 연인 조차 섣불리 믿을 수 없습니다. 내 욕구와 감각, 생각, 느낌, 무의식 조차도 섣불리 믿을 수 없고 또, 그리해서도 아니 됩니다. 이것이 가상 현실 세계의 어려움입니다. 게다가 인체는 사실이든 가상 현실이든 간에 그것을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게 생겨 먹었기에 그 공포, 두려움, 불안, 생명의 위협은 고스란히 그 개체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선택이 그 개체의 생명을 얼마든지 앗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가상 현실 세계의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보이는 그대로를 믿자니 나는 내 손에 수 없이 피를 묻히는 끔찍한 살인자가 될 수 밖에는 없고, 저항하지 않자니 과도한 공포와 불안, 의혹 등이 내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스트레스를 불러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존 내시가 멍청하고 바보여서 수십년간 가상 현실 세계에 갖혀 있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상상 그 이상의 거대한 공포, 두려움, 불안, 생명의 위협, 의혹과 의심 등이 실제로 존재하기에 그 무엇하나 섣불리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나는 봅니다.. 즉 이 거대한 공포, 불안, 생명의 위협, 의혹, 혼돈이 전제되지 않은 논의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그 개체가 최고도로 끔찍한 공포와 불안, 두려움, 의혹을 불러일으키게끔 스스로 설정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 때의 극심한 혼란과 두려움, 공포, 불안 또한 더해집니다. <그 무엇하나 안심하고 선택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끔찍한 상황>이야 말로 가상 현실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고 난제를 다시 살펴보시면 전혀 새로운 시야로 바라보게 되실 겁니다. 불교에서 대체 왜 부처를 일컬어 자기를 이겨낸 위대한 승리자. 라고 하는지도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실 겁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습관이 있는 자요, 그저 진리와 깨달음의 길을 걸어온 자입니다. 헌데 그러한 자의 기준에서도 <아! 이런 의미에서 부처가 실제로 존재했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으며 마왕 파순 이야기와 같은 가상 현실을 실제로 겪고도 이를 극복했다면, 바로 이 기준에서는 능히 <자기를 이겨낸 위대한 승리자. >라고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공감에 이르게 합니다. 인류의 절대 다수는 존 내시의 경우에 처하거나 부처의 경우에 처하면 거의 거의 평생 동안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위 난제들은 적어도 인류에게 생과 사를 가르는 중대한 현실 문제로 작용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개인의 망상은 정신병, 집단의 망상은 종교, 민족이나 국가 단위의 망상은 통치이념이다.는 말이 이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주제의 끝에는 개인이 과연 주체적으로 자기 신념과 사상, 종교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시대에 인류가 진입했는가? (이것이 가능한 시대라면 자연히 인류는 차원이 다른 인격과 지혜, 용기 등을 두루 두루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고차원적 인공지능과 연계된 고도의 가상현실 세계가 펼쳐지면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술, 마약 중독, 도박 중독, 대중매체, sns 중독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 인류에게 닥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밝혀내는데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겠지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굉장한 어려움이 따르곤 합니다. 이 측면에서 바라보시면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특정 종교나 사상(공산주의 등), 신념 등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 세계관을 절대시하는 인류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전쟁도 불사합니다.(인류의 크나 큰 재앙이지요.) 이들은 자기가 진리로 믿는 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초개와 같이 내던질 수 있습니다. 인류가 가진 이 능력이 가상 현실 세계와 만났을 때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 부작용이나 역기능은 대체 그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부처 당대에도 이미 신을 내세워 인간을 통제하는 기성 현실은 존재했고, 부처는 인간 중심의 자력 구원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리고 평생 그 길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그 길을 걷는 것이 능히 가능함을 삶으로 입증했다.> 나는 이 정도 역량이 가상 현실에서 벗어나는데 충분한 조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선지자 마호메트를 기본 인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마호메트란 인물 자체가 정신분열적 과정을 거쳤으나(이 기준에서는 위 문제에 딱 맞는 모범 모델과 같은 인물입니다.) 기본적으로 제정일치의 국가주의를 꿈꿨고 자기 신념을 펴는 과정에서 전쟁조차 불사했기에 현대인들에게는 모델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살인 행위를 저지르면 감옥에 갈 수 밖에는 없을테지요.) 또 선지자 예수는 그 역사적 실존 여부 조차 미심쩍기에(신앙의 대상이라면 몰라도) 논의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습니다.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여 연구하고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할테니까요.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기에 현대인들이 모델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인슈타인,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 양자, 묵자 등도 가상 현실적 일화를 전혀 남기지 않았으므로 논외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본 모델로 하여 연구하고 논의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는 부처, 장자, 존 내시 정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최소한 이들은 가상 현실과 관련 된 이야기를 남겼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이들이 가진 공통점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저마다 태어난 시대의 한계를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다 새로운 길을 열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상 현실을 체험했거나 체험했다고 믿어지거나 관련 일화를 남긴 인물들입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과도한의 뇌 사용(뇌 혹사),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 발생(단식, 살해 위협, 적대 세력의 테러 내지 그럴 거라는 확신 등) 등은 가상 현실을 발현시키는 중대한 한 조건이 됩니다.(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 자기를 학대하지 않습니다. 이는 시대의 고뇌인들 특유의 뇌 활용 습관으로 보여집니다. 어떤 한 주제에 꽂히면 식음을 전폐하고 생사를 도외시하며 그 궁극적 진리에 도달하려는 성질과 고도의 집중이야 말로 천재가 단명하기 쉬운 원인 중 하나로 보여집니다.)놀지 않고 공부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격언도 괜히 나온 것은 아니지요.) 이는 시대의 고뇌인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공통 요소 중 하나입니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난제 해결에 적합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나 그 내막이 자세히 알려져 있기 않기에 논외로 하였습니다. 워렌 버핏도 가정사를 통해 큰 혼돈과 정서적 혼란을 겪은 것은 사실이나 일찌감치 불가지론을 선택해 숫자, 돈, 주식 투자 등에 전념하였고 수잔 버핏이라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를 배우자로 하여 모난 부분이 상당 부분 상쇄되었으므로 그 고뇌가 인류의 영역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고 보고 논외로 하였습니다. 이 정도 고려해 보시면 이 난제가 대체 왜 미해결이며 대체 왜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껴지실 겁니다. 왜냐하면 위 난제 관련한 영역이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게 지배하는 온갖 사상, 신념, 신앙, 종교, 통치 이념, 철학, 교육 등의 기본 뼈대가 되고 그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류의 선구자들이 미지의 세계(원리, 법칙, 이치, 어떤 가능성 등을 기초로 하는 새로운 길)를 발견하고 이를 개척해 나가야만 하기에 이들이 걸어가는 그 길이 필연적으로 당대의 주류 세계와는 극명하게 대비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가상 현실>과 조우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때의 가상 현실이란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으나 먼 미래에 인류가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세계나 이미 존재하기는 하나 아직은 인류사에 큰 길이 아닌 좁은 길이나 세계>를 말함이며, 이 과정에는 정신 분열이라고 말하는 정신 장애도 환각, 환청, 환시 등도 얼마든지 그 개인이나 집단에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인류 중에는 남이 쓴 책, 남이 걸어갔다고 믿어지는 길, 진리를 조직했다고 믿어지는 단체나 종교, 학파, 유명인, 역사상 위인, 부모나 교사 등 주입하는 철학, 세계관, 신념, 종교에 관한 지식과 정보 등을 믿고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세계에 진입해 <가상 현실>에 빠져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에 처하기도 하는 것이 인류가 처한 적나라한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인류 중 극소수는 이렇게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에 <가상 현실>과 조우하기도 하고, 인류의 절대 다수 증 그 누군가는 남이 걸어간 길을 무작정 따라가다 자기도 모르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치 곤란한 상황 - 정신 장애)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위 문제가 인류 실존의 난제 중 하나라고 감히 단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 난제와 관련된 그 누군가에게는 정말 처치 곤란한 현실(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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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5 08: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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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존재론으로 풀어나가면 주관적세계와 상대적세계 사이의 움직임 즉 나(의식.무의식.초의식.진아)와 타(세계상.물리적 현상.자연법칙.사회문화구조)사이에서 교류 또는 마찰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현상들 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동화되거나. 새로운(?) 세계관을 찾아 길을 떠나거나 그것은 철저히 개인 자신의 몫입니다 ==>아주 훌륭한 접근이요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정말 정말 크게 공감합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이 정도의 사유 능력과 실제 현실에서의 실천 능력을 가진 자는 생각 보다 찾아보기 힘듭니다.
선생님이 언급한 기준에서의 고도 문명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철학, 종교 등 정신 분야에서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가 라는 것은 위에 간략하게 적었습니다. 절대 다수의 인류는 미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보다는 남이 이미 대로로 만들어 놓은 쉬운 길 편한 길을 빨리 걸어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절대 다수의 인류는 어떤 분야의 선구자나 깨달은 자, 선지자 정도의 출중한 능력을 갖추기가 거의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또 이들이 걸어간 흔적(철학, 삶, 원리, 이치, 법칙 등등) 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기 삶을 바로 세우고 살찌우는 이들도 극히 드문 형편입니다. 후대에 이르면 이미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이라는 찌꺼기를 통해서만 그들의 삶과 사상, 철학 등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실제 그 정수요 알멩이를 고스란히 접하는 자체도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충분한 지혜와 용기 등을 갖춘 이들 보다는 남에게 의지하고 의존해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한 인간이 모든 분야에 대해 전문가적 지식이나 정보, 관련 능력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인들은 대개 많은 것을 타인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며 살아갈 수 밖에는 없습니다. 헌데, 이렇다 보니 한 선구자나 선지자, 깨달은 이들이 걸어간 길, 이들의 말과 행적 등을 기록한 책 등을 그저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그것만이 절대 진리라는 생각에 수십억의 인류가 집착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식적 차원에서 만이라도 이 틀이 깨질 수만 있다면(물론, 생각 같아서야 실제로 그러한 출중한 능력을 갖추면 더 좋겠지만,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나는 그 자체로 인류가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다고. 보는 겁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사상, 철학, 신앙, 종교 등의 자유가 실제 현실에서 인류 각 개인의 삶 속에서 펼쳐지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류는 아직 이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각 개인이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단계에 인류가 과연 도달했는가?> 라는 것이 저 문제가 품은 핵심 의도 중 하나입니다.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으나 아주 먼먼 미래에 인류가 도달할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그 하나를 믿고 이 문제를 고안한 것입니다. 이 정도가 해결되면 인류 사회의 많은 부분이 변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것이 당장 이루어지거나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아니고, 그저 관련 씨앗을 뿌려 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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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5 08: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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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제 자체가 난제라기 보다는 저 문제가 여전히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인류에게는 난제로 여겨지는 인류의 실제 현실 그 자체를 나는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통해 관련 논의를 공론화 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공연하게 밝히지 않아 선생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나는 이런 논의 자체가 충분히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딱히 답을 도출해 내지 못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답을 도출해 낸다면 그것은 어떤 기준에서 어마어마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존재론적으로 접근하신 것은 매우 현명한 판단이이요 선택이십니다. 존재론적으로 접근하면 이론적으로 충분히 접근이 가능한 문제입니다.(이걸 몰라서 저 문제를 낸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과 논의하고 싶은 의도가 있기에 저 문제를 고안한 것입니다.) 다만, 실제 현실에서 선생님께서 위에 언급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이론을 가지고 그 상황이나 현실 등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검도 철학이나 이론을 통달했다고 하여 그 자체로 검도의 고수가 되기에 충분한가? 라는 질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불교 철학이나 이론을 통달했다고 하여 깨달음을 얻기에 과연 충분한가? 라는 질문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입증을 해야 하는 자인가? 나는 그저 타인이 주장 등을 검증하려는 자인가? 저 글에서 언급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나라면 대체 어떻게 하겠는가? 등등 다채로운 입장과 기준에서 접근해 보실 여지를 문제 자체에 남겨두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실은 저 글 전체가 하나의 문제입니다.
석가가 그 당대 인도의 주류적인 세계를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브라만 사상을 깨뜨릴 새로운 지평 <연기, 무아 등>을 열었을 때, 석가 그 자신에게야 이것이 현실이지만 석가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미친자의 헛소리>로 치부되기 딱 좋았을 것입니다. 석가가 말하는 가르침은 어느 먼 미래에 인류에게 도래할 가능성 자체는 있으나 당대의 주류 세계와는 너무도 동떨어졌다고 여겨지거나 망상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거의 거의 <가상 현실>과도 같은 그 무엇이었을 겁니다. 이런 기준에서 석가의 예도 넣고 존 내시의 예도 넣고 마호메트의 예도 넣었습니다. 즉, 선구자가 선구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선구자(선지자)가 선구자(선지자)이기에 충분한 조건은 그 무엇인가? 선구자나 선지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요 전략인가? 라는 질문도 저 문제를 통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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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4 13: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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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선생님의 말씀처럼 현실 세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요, 각 국가와 민족은 저마다 미개척 분야 및 새로운 표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 나가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과학의 발전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십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주장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주장한다고 하여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하고 합리화한다고 하여 갈등이나, 피해, 피해자 등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겸허히 현실과 그 가능성과 한계 등을 두루 두루 논의하고 인정하려는 자세가 더욱 더 필요한 것은 아닐는지요? 선생님의 말씀 또한 하나의 선택이요 결론일 수는 있어도 나에게는 자기 선택을 합리화한 포장된 결론에 불과하다고 여겨집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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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7-24 13: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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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감사합니다. 현실 세계에 이 난제들을 공론화하기 전에 이렇게 다양한 논의를 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며 유의미하다는 생각에 글 올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고견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몇 몇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는 매우 탁월하고 상당한 의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삼인행 필유아사>라는 말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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