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이라는 큰 맥에서는 모두가 한가지였지만 그 방법론에서는 결국 분파가 갈렸던 것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역사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 민주공화국으로의 자주독립이 아니라, 유림 등을 중심으로 왕정복고를 목적으로 하던 복벽론자들 또한 있었을 법한데요. 저렇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하고 대부분의 독립운동계파가 일단 그 임정으로 통합되어갈 무렵, 그러한 복벽론자들은 어떻게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을까요? 시대가 확실히 바뀌었음을 받아들이고 복벽론을 포기하여 임정에 참여하거나 혹은 임정 조직체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큰 틀에서는 결국 임정과 결을 같이 하는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을지, 아니면 고집스럽게 복벽론에 근간한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을지, 아니면 그저 낙향하고 은거했을런지...
뭐 결국 그 유림들의 결말을 보면 총독부에 회유, 포섭되어 친일 기득권자가 된 것 같습니다만 :(
이 말을 생각할 때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우리 측의 첩보공작 역량의 정예 육성이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일개 민간인이 인터넷으로 쉽게 저런 글들을 퍼나르며 반쯤 상식으로 알려주고 또한 알아갈 정도라면 이미, 수뇌부까지 올라갈 것도 없이 중공군 대거 역시 저런 이야기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술 더 떠, 그래서 혹여라도 추후 국운을 건 한중 결전이 벌어졌을 때 우리측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내부에서부터 자중지란을 거듭하다 자멸해서 흩어지게끔 별별 수작을 부릴 것이라 봐요. 정보를 탐지해 빼내오는 첩보전은 기본일 것이고, 평화, 인권 등을 가장해 염전의식을 조장한다든지, 자국민 스스로가 자국군을 혐오하고 능멸하며 공격하도록 만든다든지 하는 여론전, 대민심리전이라든지... 단결력을 흩트릴 방법은 다양하겠죠. 이미 오래 전부터, 어쩌면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직후부터 중공 수뇌부에서 오랫동안 그럴 기회를 암중모색해오며 공작을 해 왔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념, 진영 가리지 않고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관료들, 군부, 특히 국회와 청와대(이제는 '대통령실'이라고 해야 하나요? 여하튼간에) 등에 따져 묻고 싶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야만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무기를 들고 중공에 항전하여 우리의 자유와 주권, 국익을 수호할 준비가, 각오가 되어 있는가?"
"중공을 도륙하고 육살(戮殺)하여, 최종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심장부에 비수를 찔러넣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독기와 살기를 품고 이 질문들을 단호히 긍정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면 그게 어느 당의 어느 누가 되었건 막론하고 양복 옷깃에 금뱃지를, 태극기를 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도 겨우 피했더니만(사실 완전히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문화재 수습 및 피난 과정에서 온데간데없이 증발해버렸거나 북으로 강탈되어 사라졌다든지 모종의 이유로 해외로 밀반출되어 사라졌다든지 하는 문화재도 있었다는군요. 어떤 전시물은 그대로 서울의 박물관이든 수장고든 방치되어 있다가 그대로 폭격맞으면서 소실되기도 했다는 소문도 있더이다.) 옛 부산역사까지 집어삼킬 정도의 대화재로 인해 모두 소실되어버린... 참으로 통탄스러운, 통곡할만한 일입니다. 듣기로는 실제로 태조 이성계가 사용했다던 활 등도 그 때 소실되었다지요?
필름영화는 오래 전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설국열차가 마지막 국산 필름 영화라는걸 보면 그래도 비교적 최근까진 살아남아 있었네요.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필름영화 특유의 감각? 감성? 뭐 그런 것 때문에 여전히 필름영화를 고수하는 감독들이 해외에 몇 있다고 알고 있고 이러한 사유로 인해 소비되는 영화용 필름의 양이 아직은 만만찮게 많은지라 당분간은 필름영화가 사라질 일은 없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전해들은 기억이 있긴 합니다만, 저렇게 직업으로서의 필름영화 관계인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이제는 시대의 바람에 풍화되고 있는 게 맞긴 하구나 싶긴 해요.
필름사진은 그래도 어찌저찌 인화해 줄 수 있는 사진관은 남아있는 것 같지만요 ㅇㅇ...
+ 영화 필름의 경우 제가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영화의 음성 부분, 그러니까 사운드트랙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사기에 필름 테이프를 놓고 돌리면 영상이 나온다는 것은 대강 이해가 될 듯 말 듯하긴 해요. 헌데 그 음성 부분은 어떻게 소리가 재생될 수 있는 건지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고요.
레코드판은 미세한 간격의 각기 다른 홈으로 새겨진 음성을 역시 미세한 탐침이 읽어들여 소리로 변환해 재생하는 것이라고, CD-ROM 등은 역시 원판에 새겨진 홈을 레이저로 읽고 그것을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읽어들여 그대로 전자기기에서 음성 신호로 변환해 출력한다 뭐 이런 것은 그래도 이해는 되겠는데, 필름영화에서 음성은 어떻게 출력되는지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따로 사운드트랙만을 새긴 부분은 없어 보이는데... 그리고, 영사기라는 것도 필름을 비춰서 영상을 출력하는 기계라고 직관적으로 이해는 되는데 어느 부분에서 음성을 읽어들이고 출력하는 건지 역시 이해가 안 되고 신기하기만 하더라고요.
음. 하기사, 세상 돌아가는 물정까지 내팽개칠 정도로 철덕질할 때가 제일 행복했던 때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ㅎㅎ
남들이 이룩해놓은 성과, 성취, 남들이 발굴해놓은 자료들을 헤치고 파고 들어가며 점차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 영역 속을 내가 발굴한 자료, 내가 이룩해가는 성과, 성취로 채워갈수록 그 희열감도 비례해서 커져가요. 이거, 정말 한번이라도 해 본 분 있으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가령, 옛 철도차량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 '한국철도차량 100년사'라는 책이 필요했는데 이 책은 국회도서관 같은 곳에나 존재한다길래 뒤도 안 돌아보고 곧장 지하철 타고 여의도로 가서 일일 패스 끊고 들어가 책을 신청해 창구에서 받은 뒤 원하는 페이지를 복사실에서 복사료를 주고 복사해가지고 나온다든지 이랬는데, 그 땐 정말 세상 모르게 행복했었어요 ㅎㅎ
약간의 변호를 해 보자면, 만약 원래 계획대로 5호선까지 지어졌다면 그 오명은 상당수 상쇄할 수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헌데, 1호선이 착공되어 한창 진행중인 상태에서 IMF를 맞아버려서, 이미 실행 중인 계획을 제외한 나머지 건설 계획들은 전부 재검토 혹은 파기되는 와중에 당초 2 ~ 5호선과의 환승연계가 전제된 저 1호선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라고 하네요.
현재, 새롭게 2, 3호선 등이 검토되어 한창 실행 중이라고는 합니다만... 과연 얼마나 1호선의 접근성 부족이 커버될런지는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바닷가에 인접해서, 혹은 아예 바닷가에 지은 건물이라면 제일 걱정되는 게, 소금기로 인한 건물 내구성 약화 문제예요.
요새 대형 건설업체들이 지어올린 아파트들도 슬슬 부실공사 이슈가 왕왕 터지는 판인데, 그렇게 약한 건물들이 소금기까지 뒤집어쓴다고 생각하면, 왠지 무서워지는데요 이거 ㄷㄷ 영상 속에서 안내해주는 건물 말고도 현재 바닷가에 세워진 건물들, 특히 최근에 신축된 건물들은 염해 방호대책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엘리베이터' 편을 보니... 어젠가 그젠가 영화 채널에서 틀어준 한국 영화 '돈'에서 본 장면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증권 브로커 역 류준열과 작전 주도자 '번호표' 역의 유지태가 한낮의 도심 공원에서 주가 조작 공모 관련으로 접선하고 있는 장면이었어요. 어떤 아이가 엄마 핸드폰으로 갖고 놀다가 우연히 그 둘을 사진 찍었는데, 류준열은 곤란해하고 유지태는 사람 좋은 미소로 너그럽게 허허 웃으며 '괜찮아. 더 찍어.' 이러면서 스무스하게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어우. 잘 찍혔네.'라고 싱긋 웃더니 그대로 휴대폰을 땅에 떨구고는 발로 지긋이 밟아뭉개서 깨뜨려 부숴버립니다. 그리고선 한 뭉텅이의 돈을 아이에게 쥐어주고는 '자. 이제 엄마에게 가렴. 응.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