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이는 잘 먹고, 생당근(익히지 읺은 당근)도 잘 먹는데 익힌 당근은 싫어하고(못먹진 않는데 웬만함 안먹음) 카레에 든 익힌당근은 못먹어요. 애 엄마다 보니 애들은 당근 먹여야 겠어서 카레에 당근 꼭 넣는데 먹고나면 제 접시에만 반듯반듯 카레옷 묻은 당근이 옹기종기 모여서 반상회 해요. 아마 당근 못먹는 절 비웃는 회합이라도 하고 있을 듯. ㅠㅠ
음... 하지말자 했어도 왔으면, 이건 상대방의 결례죠. 하지 말자 했고, 하지 못하는 상황 설명 했고(결혼할 정도면 신부도 신랑쪽 집안 상황 알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다고 들이미는 것만도 기가 찬 결롄데, 거기다 대고 내가 준 게 있는데 돌아오는 건 왜 없냐? 까지 나오면 이거야말로 시쳇말로 노답인 거죠.
못한다 했잖아요. 하지 말자 했잖아요. 하지 말자 했어도 일단 왔으면 갚는게 도리라는 건 대체 무슨 계산법이죠? 보답할 도리 없는 선물 받은 사람 부담스러움은 생각도 안하고, 답례 안온다 서운해하는 법이 대체 어딨습니까? 이건 횡포죠.
이래놓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 각방을 쓰게 만들 정도로 갈등을 만들어 놓고, 갈등 만든 사람은 답바지 안한 신랑측이다 우길 건가요?
대체 어른이 왜 어른입니까? 내가 서운한 게 있어도, 딸이 서운해 하도 그게 아니다, 하고 덮어주고 신혼부부 갈등안생기게 다독거리는 게 어른의 도리 아닌가요? 거기다 대고 딸 붙잡고 서운하네 마네... 어이가 없네 진짜.
새 신부 폐백 음식중에 육포가 꼭 들어갑니다. 시어머니는 그 육포를 받으면 손끝으로 서너번 다독거려준다 해요. 육포가 넓게 펼쳐진 음식이라, 새며느리의 허물도 그 육포처럼 넓은 마음으로 잘 덮어주십사 하는 의미랍니다. 결혼식 음식은 그런 의미예요. 하나하나 이유가 다 있죠.
그 잘난 이바지 보내면서 새식구 허물 감싸고 덮어주는 넓은 아량은 대체 왜 못가졌답니까???
전 딩크에 대한 고민을 한번도 해 보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임신해서 두살 터울로 둘 낳았고, 둘째는 참 힘든 아이였지만(그애 키운 이야기 하면 뭘해도 역대급 입니다 하. 하. 하. ) 첫째는 또 너무 수월한 아기여서(얘의 수월함도 역대급이었지요) 둘 합하면 대충 평균은 가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요, 육아가 즐거웠어요. 진심입니다. 건강이 많이 망가지기도 했는데 후회는 없어요. 둘째까지 초등학교 가고 난 뒤 (10년간의 전업 육아시절을 거친 뒤)좋은 조건으로 이전 직장 복귀도 했구요(비록 1년만에 그만뒀지만 육아 때문은 아니었어요)-제가 제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히 쓰는 이유는 내가 육아로 잃은게 별로 없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예요. 심지어 저는 외벌이였음에도 남편의 육아 가사 참여율이 높아 남편과의 갈등은 커녕 부부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기까지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참 행복한육아를 했고 아이로 인해 정말행복했지만... 시간을 돌이켜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이제와서 딩크에 대한 고민을 아주 진지하게 합니다. 아이들 다 키운 이 시점에서요.
아이는...인생의 필수요소가 아닙니다.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육아로 인해 잃은 것(일반적으로 커리어라든가, 부부간의 갈등상황이라든가 하는)이 별로 없었으니 잃은 것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 부담감이 너무 커요.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은 시간이 갈 수록 커지고요, 나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만도 벅찬데 아이의 인생까지 등에 짊어지고 가는 기분? 뭐든 다 내탓같아서 맘이 힘들어요.
두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행복한데요. 그래도 ... 이 아이들을 낳은 걸 후회한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로 전 다시 그때가 된다면 딩크하고 싶어요.
아니...벌초는 가는 건데 무슨 이발하고 세차하고..... 패션쇼 하러 가는게 아니라 벌초 하러 가는 건데요. 물론 집안 어른 뵙기도 하니깔끔단정이 맞겠지만 상황이 이런데...벌초를 위해 아픈 아내와 아이를 몇번을 팽개칩니까? 그러고도 그 자손 와서 시원하게 벌초 해 줬다고 좋아하는 조상이라면 거참....
티모확찍님 말씀 감사드려요. 변명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첨언하고 싶어서요. 제가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모두 단점과 장점이 있지요. 비율로도 따질 수 있겠고 양으로도 따질 수 있겠고... 비교를 한다는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남편과 저를 굳이 비교하자면 남편이 저에 비해 인격적으로 훨씬 나은 사람입니다. 단지 제 남편에게는 (원글님의 남편과는 좀 다른형태로 표출되는) 회피성향이 있고 '저는' 그걸 이렇게 이해하고 이렇게 풀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저의 조련? 아닌 조련을 남편은 어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고, 남편 역시 저를 조련? 하고 있는 부분이 있겠지요. 저는 제가 남편을 만나 많이 변했다 생각하고(친정식구들이나 2-30년지기 친구들도 그리 말하니까요) 나름 그 변화의 과정이 긍정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하구요. 제가 더 나은 인간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좀더 편안한 인간(스스로도, 남에게도) 이 된 것만은 맞거든요. 그리고 남편도 분명 변했구요. 변화의 크기를 굳이 비교한다면 제가 훨씬 크네요 ㅎㅎㅎ 전 교정 교화의 필요가 아주 많은 인간이었거든요. 아 물론 지금도 대단히 미숙한 인간이긴 합니다만.
제 말의 요지는, 포기하지 마시란 겁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 인간을 어찌 바꾸나...하고 손 놓지 마시고 어떻게든 부딪치고 노력하다보면 기본 심성의 문제가 아닌 한 인간은 조금씩 교화되고 상대방에 맞춰서 변화하는 존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사람이 잘못을 할 수도 있구요, 사람이다보니 이기적으로 굴 수도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항상 이타적으로만, 올바르게만 행동할 수 있겠어요. 성인군자가 아닌데요. 그리고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피해? 적어도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할 수도 있죠. 인간이라는 게 관계라는게 무 자르듯 똑 떨어질 순 없잖아요.
중요한 건 그 다음이죠. 의도가 뭐였건 나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마음이 상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사과해야죠. 그런데 남편분의 화법은 내가 너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일을 없는일로(안간다니까!!! 됐지?) 만들어 버림으로써 상대방이 정당하게 화를 내고 마음을 풀 길을 막아 버리는 거예요.
이런 타입들은 극단적 이기주의에 상대방을 완벽하게 무시해서(너따위가 감히 나에게 싫은 소릴 해? 닥쳐!! 내가낸데!!!) 그럴 일을 온전히 차단해 버리거나 또는 갈등이 일어난다는 것에 극단적으로 취약해서 무조건 회피해 버리거나 하는 쪽이에요. 일단은 이 자리를 피하고 보자 하는 식이죠. 보통은 후자예요. 잘못이라는 건 인지하지만 뒷감당이 무서운 거죠. 그래서 그 상황을 뭉개버리는 거예요. 잘잘못을 따지지 못하게 만들거나, 나도 기분이 상했으니 쌤쌤이야!!! 라고 퉁쳐버리고 싶은 거죠. 다 소심해서 그래요. 내 행동의 뒷감당이 무서운 거죠.
보통은 성장과정에서 단계적인 상벌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기 쉬워요. 예를 들어, 우리 법률에도 양형기준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만큼의 죄엔 이만큼의 벌이... 하는 식으로요.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도 그런 기준이 있으면 좋은데 보통은 그게 잘 안되죠.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야단을 친다는 것도 엄청난 관심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요. 아이의 잘못을 알아도 야단치기 귀찮아서 넘어가는 일이 있거든요. 그러다 어느날 부모가 다른 일로 기분이 나쁜데 아이가 뭔가 잘못을 했다... 크고 작고에 상관없이 쥐잡듯이 잡는 거죠. 그야말로 꼬투리 하나 잡아서.. 벌금형으로 끝낼일에 징역10 년을 때려 버리는 식으로요.
성정과정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극단적인 회피형 성격에 희한한 영비론자가 되어 버려요. 내 잘못을 드러내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도 안되고, 그러다 보니 무작정 그 상황을 회피하고 보는 거죠. 무서워서 그래요. 무서워서.
그럼 어쩔까요. 그리 자란 인간이니 그냥 둬요? 아니죠. 그 희한한 양비론을 깨야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회피할 방안을 주면 안돼요. 내가 안간다고 했지? 그러니까 나를 비난하지 마!!! 라고 그 상황을 회피해 버리면 안가는 걸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리면 되요. 물론 그 과정에서 원글님이 비난을 받을 수 있죠. 그럼 원글님은 차분히 원글님이 왜 못가게 했는지를 설명하시고 거기 따라오는 비난, 상대방이 맘 상한 것에 대해 사과 하시면 되요. 몇번만 반복하시면 좀 나아 질 거예요.
육아서에 많이 나오는 말인데요. 부모가 아이에게 10년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잘못했다고 해서 그 잘못을 돌이키는데 다시 10년의 세월이 걸리는 건 아닙니다. 진정성있게 노력하면 그 1/10 의 시간만으로도 아이는 얼마든지 좋아지고 관계도 개선이 된대요.
남편의 회피성향을 어찌하실지는 원글님의 몫이에요. 이제, 우리 모두 부모 탓을 할 나이는 아니니까요. 잘못자란 그걸 어쩌겠어요. 물건이면 as라도 맡기지만 물건이 아니니 구입처에 따질게 아니라 구매자가 고쳐 써야죠.
이상, 원글님 남편과는 좀 다른형태로 회피 성향 가진 남자 근20년째 어르고 달래가며 살살 고쳐 사는 사람이에요.
저도 저런 엄마 밑에 자랐는데요. 제 엄마지만, 죽을 때까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왜 저러면 안되는지, 그게 자식에게, 아니 한 인간에게 왜 해서는 안되는 짓인지 깨닫지 못해요. 머릿속엔 오직, 내가 너에게 어떤 투자를 했는데, 내가 널 얼마나 열심히 키웠는데, 난 정말 최선을 다했고 하늘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요. 자식이 상처받았다 하면 불같이 분노하고, 자식이 힘들었다 하면 니가 왜? 니가 대체 뭐가 힘들었니, 내가 힘들었지 라는 반응.
근데 가장 끔찍한 게 뭔지 아세요? 저런 비교급의, 조건부의 사랑은 만족이 없어요. 반에서 1등하면 전교 1등이 아니어서 불만족, 전교 1등이면 전국 1등이 아니어서( 모의고사는 전국석차가 나오기도 하고든요) 불만족, 전국 1들하면 올 만점이 아니어서 불만족, 소울대를 가면 법대가 아니어서 불만족, 설대 법대를 가면 수석입학이 아니어서 불만족, 설대법대수석입학을 하면 재학중 사시패스가 아니어서 불만족, 재학중 사시패스 하면 수석 패스가 아니어서, 또는 최연소 패스가 아니어서..... 결코 만족이 없는 욕망인거죠. 그 과정의 어딘가에서 아이는 결코 부모가 만족하지 못함을 알고 손을 놔 버리죠. 그럼 부모는 펄펄 뛰어요. 그때부터 엄마의 모든 불행은 아이탓이 되죠......
정말 끔찍한 형태의 아동학대인데, 절대 인정안하죠. 난 최선을 다했다, 난 너 키우느라 힘들었다.... 그 말의 무한반복. 아이가 무슨생각으로 어떤 아동 청소년기를 보냈는가는 전혀 관심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