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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을 올바로 해석하시는 분께..................
[새창]
2011-07-26 1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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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신심님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게 저의 한계이겠죠^^?
@아니쿠스님, 형광등의 고민
창조과학회가 지금은 많이 변형되어서 그저 진화론을 덮어놓고 까는 아집으로 뭉친 집단 밖에 되지 않지만
그 초기에의 순수성은 매우 건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면에서 제가 인문학도인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생각되지만,
과학적인 면에서의 저는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기때문에
어떻게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
워낙 미디어의 오도와 호도가 많아야 말이죠^^;
제가 말한 과학적 토대는 아마 미약하겠지만, 가져와서 "까이다" 보면, 저도 아마 좋은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22
세상에나, 오유에서의 첫글이로군요^^
[새창]
2011-07-26 16: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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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의 고민
^^; 사실 공부를 좀 해야할 분야이기는 했는데 잘 되었군요, 노력해보겠습니다^^
@한삶
창조과학회라면... 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것 같군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창조과학회는
성경에서 나타난 것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노력을 하는단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진화론을 덮어놓고 까기 위한
창조과학회가 아닌, 순수한 목적에서의 창조과학회를 생각하고있습니다^^;
21
세상에나, 오유에서의 첫글이로군요^^
[새창]
2011-07-26 15: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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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의 고민님
^^; 으음. 글쎄요오~ 창조과학회를 통해 창조설화에서 창조론으로 어느정도 과학적 토대가 갖추어 졌다고 생각합니다만^^;
20
세상에나, 오유에서의 첫글이로군요^^
[새창]
2011-07-26 15: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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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삶님
오, 맞네요.
제 의도는 상대방의 의도를 수용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비평이고
아무런 대책없이 상대방을 깍아내리고 마이너스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비난이라는 차이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었죠^^;
토론에서 사용해야 할 말을 잘못 가져다 사용한 것같네요^^;
아, 학문은 넓고 뇌는 짧네요 ㅋㅋㅋㅋㅋ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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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6 15: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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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시네요^^;
죄송해요, 오해해서~~~~~^^;
어디서 얼마나 변개되었는가에 대한 것은 당연한 고민거리이자 질문거리입니다.
그것때문에 성서비평학이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성서비평학자들은
성서비평학을 말이 안된다고, 서로 아귀가 안맞다고, 어디가 빠졌다고, 어디가 첨가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 성서의 "원문"의 "우리의 신앙에 지침을 내려줄" 완벽한 "원문"은 어떤 모양일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절대적 목적을 벗어난 성서비평학의 사용은 그야말로 목적을 잃어버린 학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제어장치를 잊어버리게 된다면,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비평하여
"모든 진리는 거짓이다. 내가 말하는 이것도 진리이다"라는 대단한 오류에 빠지는
철학의 한 흐름인 해체주의밖에 되지 않죠^^;
성경은 진리입니다.
산신령님께서 성경을 읽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경이 말도 안되는 진리라는 것을 전제로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진리라고 하던데, 도대체 어느것이 성경진리인가? 라는 성서 비평학자적 관점에서 접근하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몇번을 읽으라는 말이 아니라, 딱 한번만, 이 관점에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18
세상에나, 오유에서의 첫글이로군요^^
[새창]
2011-07-26 15: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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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님
ㅠ_ㅠ.. ㅠ_ㅠ;
정말.. 별반 다를 바 없는 글들입니다.
결론요약은 우리 싸우지 말고
각자 믿고 확신한 바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봅시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더 공부하고
창조론자들은 창조론을 더 공부해서 말이죠^^; 라는 글이었거든요^^;
아마 이 다툼은 우리의 후대, 그 후대의 후대, 까지 계속 이어질 것 같으네요^^;
17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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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6 15: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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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
자유의지를 그렇게 억압하시면 아니되지요^^;
그런 글은 그 카테고리에 써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 법이지 의무적 법이 아니니까요.
마치 요즘 오유 유머자료에 [유머X]를 달고 올라오는 글이 많은 것 처럼요.
비난과 비판은 의미있게 하는 사람이 되어요^^
본문비평에 대한 것은 잘읽어보고 있으신가요~^^?
16
성경이 여느 신화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계기.
[새창]
2011-07-26 15: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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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의 고민님
^^; 조언 감사합니다.
그러나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모더니즘의 텍스트 위주의 성경이해는 우리의 감정의 영역을 무시하게 만들었고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그런 부분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신앙적 감상주의, 낭만주의, 감정주의로 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한 믿음의 토대를 다져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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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여느 신화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계기.
[새창]
2011-07-26 15: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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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
다윗이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면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결과에 대한 비평보다 원류에 대한 비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세푸스에 대한 유대고대사는 오류가 있습니다.
이방민족이 비에 대해 언급할때는
"바알신이(혹은 다곤이, 혹은 아세라가, 혹은 제우스가) 우리에게 비를 주셨다."라는 본문이
수많은 문서가운데 버젓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의도적으로 이방민족이 비를 언급하는데서 주어를 제외하였습니다.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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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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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6 15: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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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
본문비평에 대한 또 다른 견해 입니다. ^^ 잘 읽어보시기를.
http://ssh4jx.tistory.com/175
그런데 답글이 달리는 속도나, 새글이 게시되는 속도를 보자면, 제가 드리는 자료를 읽지 않고
그냥 주장만 하시는 것 같은데
비평과 비난의 차이는 상대방의 의견과 요구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달린것인걸 잘아시지요^^?
비난보다는 비평을 하시는 분이셨으면 좋겠네요^^
신약의 의도적인 변개구절에 대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간음한 여인의 본문비평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http://blog.naver.com/holyhillch?Redirect=Log&logNo=60013571897
이것은 최근 본문비평의 동향이니 또 읽어보시면 본문비평의 한계에 대해 잘 아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본문비평의 출발은 기독교경전을 올바로 "해석해보자"가 목적이지
기독교경전은 "말도안되는 쓰레기의 짜집기이다"를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을 전치하지 마시고, 올바른 비평가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본문비평에 대한 이해가 잘 안되실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려운 학문이니까요^^;;;;
13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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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6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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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
그래서 아까 다른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경은 하나의 흐름이고 하나의 유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산신령님께서 그 하나를 의심하시고 부정하시기 시작하면, 모든 성경이 믿지 못할 환타지가되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라면,
산신령님께서 주장하시는 성경본문비평학도 사용하실 수 없지 않을까요^^?
권위있는 학자들이 "이 범위내에서 연구되어야 한다"라고 한계를 짓고 연구를 하는데
산신령님께서 그 비평학을 가져다가 범위를 넘어 사용하신다는 것은 당연히 오류이겠죠^^?
디모데서가 바울이 쓴게 아니라 후대가 쓴것이라는 주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주장을 "믿으시는" 산신령님이 볼때 그러하다는 것이지,
디모데서는 바울이 쓴것이며, 후대의 어떤 사람이 쓴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믿는" 저는 산신령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본문비평학도 알고, 성경무오설도 알고, 여러 학문들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려 노력하지만,
산신령님께서는 본문비평학만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비판하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은 과히 좋지 않습니다.
산신령님같은 분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신의 존재여부를 탐구해야 하는데
저같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신학이랍시고 끄적거리는 것도 조금은 모순인것 같기도하고요^^;
그러나 이 속담만큼은 생각해보시고 성경본문비평학을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오직 책한권을 읽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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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위키의 '예수쟁이' '개독교'
[새창]
2011-07-26 14: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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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숫님
재미있는 자료 잘 읽어보았습니다^^;
예전에 기독교 안티운동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안티크리스트 닷 오알 닷 케이알은
순수기독교가 아닌 기독교가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에 대해 안티운동을 진행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 안티운동은 저로서는 마음이 무거울 뿐입니다.
한국의 기독교, 아니 세계의 기독교는 썩었습니다.
혹자는 아직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니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믿는 성경의 경전에 의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썩어있습니다.
저도 매일 한숨만 나고, 매일매일 슬퍼하는 것이 일과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성경의 텍스트를 통해 그들을 설득하면 됐지만
지금의 안티기독교인들은 우리의 더러운 치부를 보고 마음을 돌이킨 이들이기에
이런 글로는 마음을 절대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내일 멸망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세상사람들이 다 욕해도 나만은 성경대로 살아보겠다라는 욕심이 제 안에 있습니다.
왜냐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틀려서 예수쟁이, 개독교라는 말을 들을지 몰라도
진리는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찌될지는 모르나, 저는 예수쟁이, 개독교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어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면, 그들만은 예수쟁이, 개독교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숫자숫이나, 산신령님같은 분들을 존경합니다.
올바른 비판을 통해 우리를 알아 갈 수 있게 해주시니까요.^^
감사합니다. 항상, 열린마음으로 준비하겠습니다~^^
@한삶님
저는 왜이리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매일매일 저 스스로도 한국교계와 교회와 성도를 비판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제 모습과 겹쳐 너무 아픕니다. ㅠㅠ
얼마나 우리가 못살았으면, 우리를 이렇게 미워하나, 마음이 아픕니다. ㅠㅠ
어떻게 해야 이 슬픔을 날릴수 있을까요. 언제나 이런 비판에서 우리가 당당해질수 있을까요..ㅠㅠ
회개와 쇄신이 필요한것 같은데 도무지 이 썩어빠진 교계는 요지부동이니, 어찌해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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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1-07-26 14: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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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
산신령님은^^ 신학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으시군요.^^;
성경을 샅샅히 뒤져 단어와 어원과 문맥까지 비교하실 수 있다면,
그 어떤 신학자와 내놓아도 논쟁할 만한 분이시죠.
도올 김용옥교수님 같은 분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언급하신 사항은 성경해석학 중 "본문비평학Textual Criticism"에 관한 부분입니다.
설마 그런 부분을 모르실리는 없지만, 관련 논문 첨부해드리구요^^;
http://blog.naver.com/shaek05?Redirect=Log&logNo=130003205085
위의 간음한 여인에 대한 부분은 본문비평학을 시작한 학자가 제일 처음으로 지적한 본문입니다.
맞습니다. 본문비평학은 성경의 본문을 좀더 진본에 가깝게 해석하기 위한,
성경 필사자들의 오류를 최소화 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된 학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간음한 여인의 본문은 본문비평의 주장이 적절합니다.
그러나 본문비평학이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성경이 존재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는 디모데후서 3장에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성경의 편찬자는 신입니다. 비록 인간을 통해 텍스트로 남게 되었지만,
그것을 주관하고, 이끈 것은 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때에, 간음한 여인의 본문의 건전성은
성경과 부합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을 필사한 사람이 삽입했든, 후대 수백년후의 사람이 삽입했든,
그것은 신의 편찬이라는 것이 본문비평의 한계입니다.
모든 성경해석은 신의 권위아래 진행되어야 하는데
산신령님께서는 본문비평의 절대선을 벗어난 해석을 통해 성서를 비판하고 있으십니다^^;
이런부분으로 볼때에, 산신령님은 어쩌면,
진보적 신학노선을 따르는 연세대나, 한신대의 신학을 공부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좀 더 추론해보자면, 그런 공부를 통해 어릴때의 신앙의 방황을 맞이하고 있으신 분일지도 모르구요.
너무 신학적 지식이나, 성경적지식이 방대하기에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주제 넘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급해보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러합니다.
성경본문비평이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학자들이 설정해놓고 있는데
그것을 인용하여 한계를 넘어 비판하시는 부분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10
성경이 여느 신화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계기.
[새창]
2011-07-26 14: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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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
그래서 기독교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입니다.
아무리 제가 논리적으로 답변해드려도. 그것이 산신령님의 관점에서는 전혀 논리적이 될 수 없지요.
왜냐하면 제가 믿는 것을 산신령님께서 하찮은 것 환타지 스러운 것이라고 "믿고" 있으시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믿는바가 서로 다르지만,
저는 산신령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산신령님의 믿는바에 대한 증거를 위해 노력하는 열정적인 모습이 그러합니다.
더 자극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옹호하는 대변가가 되어 보겠습니다.
9
성경이 여느 신화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계기.
[새창]
2011-07-26 14: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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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께
긴 답변을 쓰는 동안 또 한번 댓글을 다셨군요.^^
http://blog.daum.net/evd0719/10861999
여기는 에녹서에 대한 연구논문입니다. 연구본문도 다 적혀 있으니 다시 한번 정확히 정독해보시는 것도
기독교를 제대로 비판하고 비난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댓글을 통해 이제 기독교가 타인들에게 공격받는 이유가 드러나게 되겠네요.
다윗은 간통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충직한 부하인 우리아를 전장 가장 멀리 보내 죽게하기도 했죠.
다윗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삼하 7장을 읽고 이해하시면 더욱 좋겠네요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것이 있고, 다윗에게 하신 그 약속을 지키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구속사가운데 다윗에게 한 약속을 지킨것이라고 봐야 타당하겠죠.
간통으로 태어난 아들이 죽는 것 또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집행자로서,
그 죄에 대한 징벌을 선택적으로 집행할 권리와 이유가 있으십니다.
다윗에게는 그 자신의 죽음보다, 자기 자식이 자기의 죄로 인해 죽는 것이 더 큰 고통이고 아픔이었을 것이고,
구속사적입장에서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위한 징벌이었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다윗에게 알려주기 위한 집행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슬피 울며 뜻을 돌이켜 달라고 통곡하지만, 또 그 뒤 그 뜻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때 당연히 기독교의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신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의 주권적 권리행사며 당연하다라고 그것이 선한 것이다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 것이구요.
말씀드리지만, 기독교경전은 기독교적으로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개념과 논쟁들이 어떻게
산신령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더 굳게 기독교를 거부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또 댓글을 다신 말라기에 대한 부분만 해도 그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이 삐치신 것 맞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삐지신 것입니다.
아니 무슨 신이 그렇게 속이 좁냐고 비판하고 비난하실 수 있지만,
정경에의하면 태초이래로 오늘날까지 인간은 신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아왔습니다.
인간의 창조목적인 사랑의 교제가 계속 실패하자
하나님께서 결국은 말라기에서 말하신 것처럼
내 목적은 너희로 경배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으로 함께 교제하고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의 사랑에의 표현이
먹다 남은 것, 흠집이 난 것 밖에 되지않는
귀찮은 것밖에 되지 않으니 내게 그런 것들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삐침의 표현이 말라기의 상황입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의 표현이 없는 제사를 싫어하셨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창조목적인 사랑의 교제가 빠진 제사를 싫어하셨다는 것이지요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