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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oret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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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oret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95 무식 인증 甲 [새창] 2018-09-30 02:43:48 6/81 삭제
    하! 내가 시벌 새끼들아, 이 사이트에 두번 다시 실수로라도 오면 내 성을 간다. 개 쓰레기 같은 새끼들. 평생 그렇게 잔인하게 살아라.
    94 무식 인증 甲 [새창] 2018-09-30 02:30:00 3/63 삭제
    촌놈을 무시하는 도시 사람이 올바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요지는,

    과연 저 캡처 속의 도시 사람이 '정말로 촌놈을 무시했는냐'라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서술했던 문장을 마냥 좋게 보아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나쁘게 보이는 부분이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모르는 세태에서요. 왜 그렇게 너그럽게 볼 줄 모르고, 상상을 할 줄 모릅니까? 그 사람이 입으로 꺼내었던 발음은 예측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이 지었던 표정이나 제스쳐 그리고 그 상황의 주변 분위기까지 모두 알 수는 없잖아요. 만약에 모든 것이 저 사내의 기분 나쁨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는 환경이었다면, 저 사내의 섣부른 발언에 대히여 상대가 '지나치게' 나쁘게 반응한다면, 그렇게 반응한 사람의 인격이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르게 당위성 있도록, 촌놈을 무시했던 서울 사람을 평소에 싫어했던 것일 수도 있겠죠.

    또 다른 중요한 요지 중의 하나는, 여기 모든 분들이 정말로 단 한 사람도 주목하지 않고 있는 부분인데,

    "굉장히~~~~ 아주그냥 불 편!!"
    "싹바가지가 어찌나 없던지 기가막혀서"

    라고 표현한 부분은 왜 주목하지 않는 거냐는 겁니다. 형용사입니다, 형용사.

    그냥 기분나쁘게 반응했다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지나치게, 예를 들어서 길 가다 실수로 어깨 부딪혔는데 "야이 xxx야, 똑바로 보고 안 다녀!" 라고 대뜸 소리치는 돌아이처럼요. 왜 그 수사에는 주목하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계시냔 말입니다, 다들, 한글 모르십니까?

    물론 그게 그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일 수야 있지요. 그래서 말했지 않습니까?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촌놈 무시하는 발언이 기분나쁘다는 걸 왜 모르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런 무시하는 발언에 대하여, 설령 무시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대가 이상으로 지나치게 반응했을 수 있는 상대방이라는 가정은 왜 아무도 하지 않냐는 말입니다.

    당신이 기분 나쁜건 인과응보이며, 내가 기분 나쁜건 억울한 것이라는 태도이잖습니까. 타인의 괴로움은 모두가 다 똑같이 괴롭다고 비웃으면서 자신의 괴로움만 알아달라고 아름다운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질 않습니까, 다들.

    좀 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당사자라 상상하고 이 쓰레드를 보십시오. 여러분 한분 한분은 한 마디 한 마디 거들었을 뿐인데, 전체를 좀 보십시오, 전체를. 이게 무식한 것들의 마녀사냥이 아니면 뭡니까, 도대체?

    형용사를 인정하세 좀. 형용사를.

    당신들이 인생을 살면서
    "아, 저 사람 말 하는게 기분 나쁘더라." 라고 하는 것과
    "아, 저 사람 말 하는게 진찌 시벌 더럽게 나 참 기가 막혀서 기분나빠 미치겠네." 라고 하는 것이 같습니까?

    여러분들 자신은, 자신의 그런 언사들을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그만하세요, 좀. 추합니다, 정말로. 왜 그렇게 남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아, 착한 사마리아 인!

    정말 토나오는군요.. 정말 구역질나요.
    93 [본삭금]본체 200만 선으로 가게에 맡겨서 사려고 하는데요 조언 구합니 [새창] 2018-09-30 01:26:35 0 삭제
    아.. CPU랑 메인 보드랑 다른 것이었군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전 지금까지 내부 먼지청소 (입으로 살살 후후~ 하거나 청소기로 위잉~~)하거나 그래픽카드 또는 램을 뽑았다가 안경 닦는 천으로 노란 단자 부분(지우개로 닦으라고 하시는 부분, 근데 집에 지우개가 없어서) 살살 닦아서 다시 꼽을 때.. 메인보드 또는 시피유(같은 건 줄 알았음. 넓적한 판), 그래픽카드, 램, 파워, 시디롬, SSD(하드디스크 말고 그거 하나 꼽혀 있거든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ㅎㅎ..

    고맙습니다. 제가 지식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컴퓨터 세대다운 눈치는 있으니까요. 용어는 몰라도 알려주신 정보로 월요일 매장에서 상담받아 온 사양과 비교하여 검색하다 보면 대충은 느낄 수 있겠군요. 정확한 뜻은 몰라두요.

    조립은 동네 그 단골 가게에서 할 생각입니다. 총각이 참하기도 하고.. 평소에 성실한 듯 보여서 그런 사람이라면 이왕 쓸 돈 일부러 팔아주고 싶기도 하거든요. 보통 남자들이 그런 게 좀 있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여자들은 그런 거 전혀 없드만. 질투가 어찌나 심한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상담 받고.. 나름대로 검색해 보겠습니다.

    아.. 근데 여담인데, 저기 메인보드에 '박격포'라는 상품명은 꼭 중국산 같네요.. 정상적인 상품명인가.. 그렇게 강력한가..
    92 중고나라에서 본 사양인데 조언좀 해주세요. [새창] 2018-09-29 23:37:50 0 삭제
    실례합니다. 본삭금이 뭡니까? 본문글 삭제 금지입니까? 열심히 답변 달아놓았는데 본문을 삭제하여 댓글까지 사라져서 관련 분야 지식인의 노고를 허무하게 만드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뜻인가요? 그걸 달아야 답변 해주나요?

    지식인 검색하니까, 본인 글 삭제 금지 옵션인데.. 그거 맞죠? 제게는 상식이라서.. 생각도 못했네요.
    91 [본삭금]본체 200만 선으로 가게에 맡겨서 사려고 하는데요 조언 구합니 [새창] 2018-09-29 23:27:37 0 삭제
    아, 왜 댓글 수정이 안 된담? 지우면 지웠다고 흔적이 남고.. 장점이 많은 시스템입니다만 결벽증이 있어서 코멘트로 수정할게요. 요기 위에 같은 문단 2개가 반복되는 거 실수에요. 혹시라도 뭔가 지나치게 강조하는 뉘앙스로 보일까봐 남깁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워드로 쓰고 컨트롤 씨 브이 해서 옮기다가.. 실수에요.
    90 [본삭금]본체 200만 선으로 가게에 맡겨서 사려고 하는데요 조언 구합니 [새창] 2018-09-29 23:21:18 0 삭제
    그렇군요..

    근데 정말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말씀하신 것 중에 도무지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가까운 시기에 공개될 신작 게임 로스트 아크가 80만원 짜리로도 풀옵션이 넘치게 돌아간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게 풀옵션이 배틀 그라운드랑 비슷한 사양인가요?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의 스샷들 보면 그래픽이 굉장히 깔끔한데 제 컴퓨터로 찍으면(컴퓨터를 막 샀던 당시에도, 그 당시의 게임을 기준으로, 그때 본체가 80만원 정도였는데) 그런 스샷이 안 나왔거든요.

    다시 말해서,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새로 구입했을 때 80만원 짜리 본체랑 200만원 짜리 본체랑 같은 게임을 켜서 스샷을 찍으면 퀄리티가 같다는 말씀인가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는 지금까지 줄곧 속아온 것인데...

    예전에 아는 동생이 컴퓨터 엄청 비싼 걸 사길래, 실성한 넘이 뭐하러 그렇게 비싼 걸 사냐, 했다가, 하긴, 나도 술값 쓰는 거 보면 실성한 놈이지. 차라리 니가 낫다. 나는 하룻밤이고 너는 몇 년이고.. 다 자기 좋아하는데 쓰는 거지 뭐.. 했었는뎅.

    다시 말해서,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새로 구입했을 때 80만원 짜리 본체랑 200만원 짜리 본체랑 같은 게임을 켜서 스샷을 찍으면 퀄리티가 같다는 말씀인가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는 지금까지 줄곧 속아온 것인데...
    89 당신이 왜 사는지 모를때....서울대 출신의 조언 [새창] 2018-09-29 22:52:35 0 삭제
    글이던 영화던 미술이던 명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록 좀 찾아보겠습니다.

    아, 여기 있군요. 김기덕의 <<시간>>이 나왔을 때가 제가 스물 초반 때이군요. 그때 쓴 영화평의 앞부분을 옮기는 게 괜찮아 보입니다. 요즘 제가 과거 기록을 되새기는 것에 심취해 있기도 하고, 당시 나이를 고려하면 꽤나 잘 쓰기도 했고, 지금처럼 하이쿠와 같이 압축해서 쓰지 못할 시절이라 적당하게 설명이 잘 되어 있어 보입니다. 당시 인디영화 전용 상영관 카페 게시판에 남겼던 기록입니다. 몇 살이었지? 아무튼 어릴 때인데 영화 내용 부분은 빼고 서론만 발췌하겠습니다.

    -------------------------------------------------
    영화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감독의 메시지를 찾아야 할까, 영화의 경계를 모두 인식하려 노력해야 할까, 비평해야 할까, 반성적 아니면 감상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보아야 할까. 누군가는 이렇게 보아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요렇게 보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정답은 바로 그것이다. 지 맘대로 보면 된다. 남의 말을(그것이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말이라 할지라도) 믿을 필요 없다.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곧 자신의 괴로움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자신의 괴로움이다. 나의 괴로움이 부끄러운 것이든, 괴로워할 자격도 없는 괴로움이든, 선한 이유로 괴로워하든, 악한 이유로 괴로워하든, 내가 괴로워했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그 괴로움으로부터 열리는 시선에 들어오는 것을 곱씹어본다면 삶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비평은 비평이 목적이거나 실존적 수단인 사람들이나 하면 된다. 나는 어떤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가,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리 고상한 문화행위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동물과 다르지 않은 짓이 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공부를 하면 공부 자체를 신성시 하게 되고, 독서를 하면 책을 성물 다루듯이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허영을 채우게 되고, 지식을 가지게 되면 앎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앎에 쓰임을 당하게 되기 쉽다. 자신이 왜 공부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동물처럼 공부하다 교수가 되고, 작가가 되고, 유명인이 되어 책까지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아, 공부가 너무 괴로워요. 당신은 공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은 고상한 말들로써 대중의 존경을 받고는 한다. 예전에 <TV 책을 말하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목격한 찌질한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을 인용하겠다. “제가 생각하기에 책을 읽지 않고도 행복한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잔인한 폭력이다. 한 사회의 지식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뱉은 저런 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뒤처지는 초조함을 느끼게 하고, 목적에 대한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특수한 행위를 떠받들게 한다. 소위 예술영화라 불리는 것들, 사람들은 영화 앞에 달린 예술이라는 수식어에 압도되기 쉽다. 예술이라고 다 위대한 게 아니다. 사거리에서 반은 천사 반은 악마인 옷을 입고 로뎅의 자세를 취하며 차량 통행을 방해한다고 해서 예술인 것도 아니며, 진지한 주제를 담았다고 해서 근거까지 충실한 작품은 별로 없으며, 선하거나 혁명적인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것에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진짜 좋은 작품은 별로 없다. 예술영화 중에서도 대부분은 쓰레기다. 대부분의 시가 그러하듯이.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꾸만 그 모르는 것 속에서 뭔가 아름답고 위대한 것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발견해내지 못하면 자신이 남들에 비해 어리석다는 열등감에 빠지고는 한다. 그럴 필요 없는 것이 모든 작품은 특정한 대상을 겨냥하여 만들어지며, 만들어져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은 쓰레기다. 특정한 대상을 겨냥한다는 것은 특정한 경험, 즉 특정한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다. 실연의 아픔을 담은 영화는 실연을 겪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실연을 겪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를 겨냥하여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나를 겨냥하고 있는 부분들이 조금씩은 있을 것이다. 사람 사는 게 보편적이니까.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거기에 서서 나를 겨냥하고 있는 사실’이 있을 것이다. 그 부분만 느끼면 되고, 곱씹으면 더 좋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신에게, 무지한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 열등감을 극복해내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남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있을 테니까.

    이론은 내 경험이 아닌 것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필요하거나, 내 경험과 감상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비평가들이나 신경 쓰면 된다. 후자의 경우 그러한 서술능력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영화를 잘못 보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칸트는 이런 말을 했다. “이성의 용무 중 상당부분, 아마도 대부분은 이성이 이미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개념들을 분석하는 데 있다.” 관람객들의 마음 안에는 관람 전에는 없던 새로운 개념이 이미 싹이 터 있다. 그 싹을 묘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초조함이나 열등감 같은 건 느낄 필요 없으며, 자신의 삶을 분명히 인식하고자 하는 실존적 열망을 지닌 사람이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이 느낀 그것에만 솔직해지면 된다. 실연의 아픔을 담은 영화를 실연을 겪지 않은 사람이 보았을 때 그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 영화 잘 모르겠더라. 왜냐하면 나는 실연의 아픔을 모르니까.” 라고 말하면 웬만한 영화평론가들보다 훨씬 바르고 높은 발설을 한 것이다.

    여담을 덧붙이면, 날카로운 사유란 날카로운 언어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자신의 감상을 분명히 서술하고자 하는 목적은 가지고 있으되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우선 책 읽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글을 읽을 수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여기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문자를 발음한다는 뜻이 아님은 당연하다. 글을 쓰기 이전에 글을 읽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미안하게도 서론이 길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영화평” 게시판에 “관람에세이”를 쓰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이 게시판의 제목에서 사용된 평이라는 말과 내가 사용하는 평 사이에는 개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서 나 자신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켰으며, 나아가 (내가 생각하는) 이 게시판의 본연의 취지에 맞는 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고, 어설픈 평론이 비평 대접을 받는 대중의 풍토를 경계하고, 뭔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자꾸만 비평가가 되려고 초조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러한 형식을 취했다.

    나는 비평가가 아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서평은 써도 영화평은 잘 쓰지 않는다. 쓰면 죽는 병이 있는 것은 아니고, 평을 쓰려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은 관람해야 할 테니까. 내가 단 한 부분도 놓친 부분이 없을 것 같아도 공개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을 때까지 검증해야 하는 것이 내 원칙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다시 보려면 돈이 드니까 가난한 나로서는 돈 안 드는 내 마음이나 곱씹어야겠다.
    -------------------------------------------------

    자아, 모든 작품은 대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며 쓴 <<신곡>>은 누구를 대상으로 쓴 작품일까요? 베아트리체는 누구를 위한 희망이었을까요? 오로지 단테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대가들이, 제가 말하는 대가들이란 고전 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고전들이지만 아무튼, 수많은 대가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썼을까요? 조금 더 쉽게 설명드리면 그들은 어떤 상태에서 그 저서들에 도달했을까요? <<신곡>>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창작품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과 같이 이미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단테는 어떻게 그 별빛과 같은 높이에 이르렀을까요?

    흑구까만마음님께서 자녀가 있으신지는 모르겠으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단다.", "나이를 먹으면 알게 돼.",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알게 된다."고 말들을 합니다. 인터넷의 많은 화제글 중에는 뒤늦게 부모님의 레토릭을 떠올리며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눈물 흘리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진심이나 추억들이 많듯이요.

    다시 말해서, 특정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특정한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똑같은 이치로 대가들의 작품도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똑같은 높이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중적인 작품에서는, 최소한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어야 영화든 미술이든 글이든 그것에 비공감은 남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쉽게 말을 한다고 한들 같은 경험이 없다면, 그 경험은 인간관계와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적 수준일 수도 있는 그것이 없다면, 무엇으로도 당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자신있게 말씀드리면 저 정도로 직관적이며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수준의 시적인 명문으로도 공감하지 못하신다면 세상 그 누구도 당신에게 알려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교육으로 가능한 것이었다면 세상이 쓸쓸하지 않겠지요. 학문이란 오로지 스스로 혼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법이란 없어요.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익히며 나아가는 겁니다. 1년에 학비를 1조를 주어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쉬운 설명이라는 것은.

    당신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비도 오는데 좋은 밤 보내십시오.
    88 무식 인증 甲 [새창] 2018-09-29 13:50:26 6/71 삭제
    예전 생각이 나는군요. 4년쯤 전인가 논산에 갔다가 옆에 형에게 물었죠.(저는 군대 면제라서 그때가 논산이 처음이었거든요.)
    "행님, 제가 술 좀 마시려 그러는데 여기 읍내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무슨 소리야? 여기가 시낸데?"
    "허억! 그래요?"

    촌은 확실히 촌이더이다. 외가가 안동 OO리인데.. 논산 시내 보니까 아파트도 높고 들도 있고 좋더이다. 조그마한 곳에 노래방은 어찌나 많던지, 그런데 BAR는 뒤지고 뒤져서 딱 한 군데 있고.. 저녁에 바에서 먹다가 새벽에 혼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려 찾은 곳이 다방이었죠. 소주에 마른 안주 시켜서 멍하니 음악 들으며 마셨었죠. 계란 후라이 서비스로 주더이다.

    여러분들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지역을 들어보았습니까. 예를 들어서 전주비빔밥이 유명한데, 그 전주를 얼마나 많이 들어보았습니까. 누구나 알 만한 정도의 지명일 정도로는 들어보았겠죠. 그것을 누군가는 많이 들어보았다 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 전주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비빔밥 외엔느 별로 들어보지 못한 누군가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지역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신입과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안면을 익힌 후 얘기하다가 싱글싱글 웃으며
    "촌놈이구만, 거기 영화관이나 극장은 있냐?"
    라고 넉살 좋게 물어볼 수도 있고, 거기에 대거리하여
    "하, 부산 사람 정말 왜 그래요?"
    "나 서울 사람인데?"
    "말투가 완전 부산 말투인데요?"
    "아, 부산엔 잠깐 유학왔지. 원래 유학가면 네이티브 스피커 배우는 거 아니냐. 근데 술 마실 데는 있냐?"
    "없어요.. 별로."
    이렇게 담배 피우며 얘기 나눌 수도 있지요.

    얼굴을 보며 대화할 때는 말의 문리 구조보다 태도가 뜻에 더 영향을 끼치는데, 글로 대화할 때는 대부분 소설처럼 잘 묘사하지 않거나 못하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크게 지장이 없는 것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개똥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 때문이겠죠.

    물론 작금의 빛과 바람과 먼지들은 모두 가정입니다. 저 캡처 속의 사람이 정말로 잘못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이토록 무식하게 물어 뜯을 필요는 없으니 그만들 하라는 질책도 가정에 기반하고 있고, 여러분들이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있는 우쭐함들도 가정에 기반하고 있지요. 저 캡처 속의 양자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도 의미없는 일이고, 반대할 근거가 있음에도 찬성 쪽으로만 흘러가는 편견도 의미없는 일이지요.

    사람은 자신에게 예리할 수 있는 만큼만 타인에게 예리할 수 있습니다.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작은 일부터, 일기라도 쓰면서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자신을 알면 인간 전체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보편적이니까요.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늘 생각하며 합시다. 구체적인 예시로 제 어머니와의 일화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명절에 시장을 보고 짐이 많아서 택시르 타고 왔는데, 내릴 때 주리 몇백 원을 어머니께서 "그거 그냥 가지세요."라고 택시 기사께 말하더군요. 저는 어머니가 본의는 그게 아니나 말을 잘 못해서 그러는 줄 알고 있으니까 여상하게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어.. 잔돈은 괜찮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이렇게 말을 해야지, 몇만 원이라고 해도 그렇게 말하면 기분 나쁜데 몇백 원으로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같잖고 우습겠어? 나야 엄마 마음이 그게 아닌 걸 알지만 다른 사람은 안 그렇잖아?"라고 하니까, "미안하다. 니 말이 맞다."고 하시더군요.

    신사 숙녀 여러분, 그렇게 말을 하면 못 써요. 설령 자신은 단 한 마디에 불과 했다 할지라도 전체 맥락 속에서 내 한 마디가 얼마나 어떠한 파문을 더할 지도 생각을 해 보세요.

    그리고 한 사람의 일부가 그 사람의 전체인 것처럼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타인의 괴로움에는 누구나 다 괴롭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괴로움은 아름다운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는 사람들은 언젠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것이 주홍글씨가 되어버립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자신의 과오를 잊지 않는 것인데, 세상은 긴 생의 일부만 가지고 그의 전체를 규정해버리죠. 여러분처럼요.
    87 무식 인증 甲 [새창] 2018-09-29 11:15:29 14/164 삭제
    무식한 제목에 무식한 댓글들이군요. 처참합니다. 평소에 생각은 하고 사는지, 회사생활은 해봤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참 신기할 정도로 우르르 몰려들어 물어뜯고 있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않으며 루소에게 감명했던 한 사람이 어느 날 타지방에서 온 사람에게 그 지방에 대해 물어보면 "이 무식한 아싸야, 사교 활동도 안 하니? 무례하구나! 꼽추 새끼가 아직까지 독신인 이유가 있군!"라고 할 사람들이군요.

    가서 공부도 좀 하고 바깥 활동도 좀 하고 인간관계도 좀 겪고 이런저런 사람들 만나며 대화도 좀 하고 그러세요. 그리고 남을 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세요.

    전주가 어디냐, 라는 질문은 전주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봐서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주를 가보지 않아서 지리감각이 잘 없는데 서울 광주 대전 대구 부산 정도에서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라는 뜻이겠지요.

    그렇게 물어볼 수도 있고 그것을 상대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싹바가지가 어찌나 없던지 기가 막혀서"라고 느낄 정도로 상대가 기분나쁘게 대꾸하였다면 대꾸한 쪽이 무례하고 교양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걸 옆에서 보던 다른 직원 한 분이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한텐 그런 질문 하는 거 아니야(어이구, 깜짝이야. 저 사람은 되게 기분나쁜가 봐). 나중에 가볍게(별일 아닌데 왜 그럴까) 미안하다고 그래(야야, 둥글게 살자고. 니가 좀 이해해라)."라고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소한 질문 하나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질문한 그 사람을 평소에 싫어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별거 아닌 질문에도 짜증나게 대답한 것일 수도 있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고 계신 도시의 모든 동을 다 가보셨습니까? 전국의 모든 도시를 다 가보셨으며 지도 없이 찾아갈 수 있으십니까? 모든 도시의 발전상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일상의 모든 대화에서 어떠한 함축적 의미도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주위의 사람은 업무상 전국을 돌아다니거나, 자라나면서 가족관계 등으로 여기저기 많이 돌아본 경험이 있거나, 자가용 등 여유가 있어서 주말이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 뿐입니까? 일생 동안 여러분의 모든 말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게만 반응하였습니까? 반대로 세상의 모든 말에 여러분은 일생 동안 친절하게만 답변하였습니까? 그렇게 오가는 말들 속에 아무런 진의도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또 그 진의를 서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까?

    그만들 하세요. 그저 남을 헐뜯으면 자기가 유식한 줄 아는 꼴처럼 보입니다.
    86 당신이 왜 사는지 모를때....서울대 출신의 조언 [새창] 2018-09-27 23:42:12 10 삭제
    왜 사는지, 너는 꿈이 없는지, 어릴 때부터 산재하던 어른들의 질책같은 질문은 좋게 보면 무엇인가를 추구하려는 근원적인 갈망의 문화적인 표현이거나 하나의 도덕률과 같은 가치로서 어두운 지도에 한 줄기 선이 되는 방향으로서의 질문이라는 가르침으로 전해받는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보면 긴 역사에서 대중적으로 깊이 공감 받는 참된 스승의 말이 없거나 있어도 전해지지 않는 어리석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각하지 못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은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 많은 댓글에서 "왜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표현은 삶에 기쁨이 없다는 뜻의 다름이 아닐 수 있습니다. 모든 분이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갈망 하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요. 그 희망이 시가 되면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싶다 /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라고 최승자처럼 표현할 수 있겠지요. 아무리 회상해봐도 기쁜 일이 없었던 삶이었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고민하다가 "빛날 것 하나 없는 이 삶 속에서 / 눈처럼 쌓여 반짝이는 내 울음들"라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처럼 홀로 위로할 수도 있겠지요.

    2007년 01월 17일 [수] 18:57:21, 11년 전이면 스물네 살 때 저는 노트에 이런 말을 기록했군요. 전문이 아니라 일부만 발췌하면,

    "버릇처럼 쓰러지고 괴로움에 떠밀려 일어나며 저기 먼 곳에는 무엇인가 있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지평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서늘해지기 위해 필요한 건 나의 어제와 오늘과 먼 내일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기록했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가 보다 무엇에 괴로움을 느끼는가 이기에 단지 서늘하고 싶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설계만을 한 채, 통증까지도 아픔이 아니라 그것이 초래하는 數들로서 파악하려 했다. 모든 것을 수학적으로 인식하려 했고, 혼자서도 가능한 것만을 열망했다.

    詩와 같은 마음으로 도시를 걸을 때에도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회의했었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신은 외부의 것에 지나지 않았었다. 내 동력의 가장 큰 원천이었던 자존심에 지배되면서 이것은 나의 의지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어떤 결단도 없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것들은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욕망들 중의 하나일 뿐이 된 순간에도 강하게 운동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외롭다는 말을 꺼내도 되는 걸까."

    그보다 5일 전에는 이런 기록도 있었네요.

    "가능태로서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을 수학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통증이란 감각의 하나가 아니라 그것이 초래하는 數들이다."

    그로부터 1년 후 25살에 이런 에세이도 기록했군요.

    "사랑은 우연히 불가능했고 지금도 그렇다. 사랑만이 삶의 가치였고 지금도 그렇다. 참 괴로웠던 날들이었다. 지금도 구조적 불행 속에 있지만 내면의 질서로써 이겨나가고 싶다. 오늘보다 안 좋을 수 있는 내일을.

    삶을 이겨나가는 맹목은, 논증 없이 추구하는 건 나에게는 괴로운 짓이다. 체득한 시야와 인격으로 이론을 실천하는 견지에 평정이 있다. 성찰이나 예술이나 학 등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초조함이 목을 조르면 회상하고 싶다. 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일을.

    자신에게 만족하고 싶다. 어지러운 생이므로 인내와 절제를 한다. 작은 것을 이기는 마음에서 큰 것을 이기는 습관이 만들어지므로.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지라도 쓰고 싶다. 진리보다 대단한 것은 진리 앞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아름다운 數式을."

    數式은 동음이의어로 쓴 것입니다만, 세 기록 모두에 數가 있습니다. 결국 생은 그런 것이죠. 우리가 좋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도 그 대학에서 학문을 잘 배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인류사에서 현 시대에 생의 유용한 수단을 얻기 위해서이지요. 노력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도 가난이 주는 괴로움을 인간이 이겨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지요. 삶이란 그저 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니, 사랑은 개인적인 것이나 돈은 국가적인 것이라 정치에 참여하는 것인데 저는 단 한 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두껍고 높은 벽과 같은 양태로 손에 만져지는 세상의 공식이 너무너무너무 싫거든요.

    예전에 전단지를 돌리면서 아주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갔을 때 멍하니 느꼈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은 별로 없구나. 차창에 기대어 창 밖을 바라보면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죠. 학창시절, 동네사람들, 회사 생활, 취미 동아리 같은 것 외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은 너무나 적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바로 나이며, 이 한 사람조차 기형도의 시구를 빌리자면 "한 권의 책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요. 읽지 않은 책 말입니다.

    그런 행인의 굴곡에 밑줄을 긋고 싶어도 사회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두껍고 높고 단단하게요. 젊은 시절엔 열정 하나로 어떻게든 해보려다 몸도 다치고 마음도 다치고, 나이를 먹을 수록 열정은 시들어가고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이, 피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나 아름답기 위한 괴로움도 점점 의미가 없어져 갑니다. 삶에 새로운 것이 없으니까요. 모두 같은 종류의 슬픔이지요. 젊을 때나 늙을 때나.

    그러다 보면 삶이란 사소한 일의 연속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지요. 사소한 것을 잘 해야 하는구나, 그것이 사랑이구나, 주머니 속 손가락에 만져지는 몇 장의 지폐같은 느낌이지요. 그 다짐을 정규교육 과정에서 알 수는 없습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가 기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이듯 어떠한 위기 속에 처해 있지 않으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질문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또는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

    전혜린이었나요?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던 좋은 표현이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쓸쓸하게 추구하며 한없이 승화되어가는 정신은 극적으로 드물게 반짝이는 겁니다. 최승자의 시구처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그저 살아있자고만 생각하며 모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술을 마시며 살아온 날들을 가리켜 어찌 무식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슬픔이란 이겨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구나, 라고 증명하게 되듯이 삶의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못 배워서 또는 노력이 없어서가 아니겠지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 받고 싶다, 다들 그렇게 희망하실 겁니다. 불필요한 수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맑게 쓰지 못해서 맑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다들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진정한 재능이란 선한 마음과 강한 자존심뿐이라서가 아니라, 아무런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여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정도로 살기 좋은 세상이어서가 아니라, 벽이 너무나 두껍고 높고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늘 고민해왔던 저조차 이제는 늘 한구석에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만 돌아가시고 나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3세계로 가서 조용히 살다가 갈 생각을요.

    21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술을 마시고 있군요. 글에 두서가 부족한 점 미안합니다.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명문대 출신이 유식한 것은 아닙니다. 유머로서 쓰셨겠지만, 사소한 인식들 하나에도 저항하고 싶기는 합니다. 수많은 판사들만 보아도 무식하잖아요. 서울대 출신이라는 표현보다는 그 사람의 문맥적인 정체성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을 더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레토릭을 고민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85 평양냉면 맛대맛. [새창] 2018-09-25 02:10:00 0/11 삭제
    아니 시벌, 내가 다른 건 다 이해하는데 왜 냉면에 반대가 있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똥집이나 먹으러 다녔나? 인생을 왜 그렇게 사시나? 진짜 천박하네. 마치 어설픈 경제학과같아.

    아니, 왜 반대함? 3명 뭐임? 왜 반대함? 진짜 웃기네.
    84 평양냉면 맛대맛. [새창] 2018-09-24 15:48:36 0/11 삭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냉면이다. 하늘나라의 식탁에는 냉면이 있을 거야.
    83 평양냉면 맛대맛. [새창] 2018-09-24 15:37:39 0/20 삭제
    와우, 그런 걸 일일이 다 확인하시나 봅니다. 아주 꼼꼼해요. 한편으로는 친절하기도 합니다. 하인같은 직업이 잘 어울리겠어요.

    슬슬 가을이군요. 명절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등산이라도 하면서요. 북망산에 올라 향냄새 맡으며 탕국 한 사발 자시면 되겠네요.

    나는 이 사람을 처음 보고, 이 댓글도 유익한 정보입니다.
    82 아테네의 최후와 소크라테스의 죽음 [새창] 2018-09-23 03:34:48 0 삭제
    ㅎㅎ.. 진짜 도대체 대학 4년 동안 뭘 가르치고 배우기에 이런 거지?
    ㅎㅎ.. 진짜. 이해가 안 가네.. 병@신들..
    81 간만에 나온 초 명문 추석 칼럼...ㅎㅎㅎㅎ [새창] 2018-09-22 21:18:46 0/4 삭제
    질문이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질문 자체가 하나의 답이 되기도 하기에 질문을 목숨처럼 붙잡고 살아가는 겁니다. 사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런 걸 추구하다 보면 진리보다 대단한 것은 진리 앞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의미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싶다고 갈망하고, 누군가 지나가도 말없는 나무들이 대단해 보인다고 느끼다 보면 명절날 헛소리를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처럼 힐끗 쳐다보고 말없이 지나갈 수 있는 연륜이 생기는 겁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질문을 잘 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습니다. 질문하고 질문하다 보면 근본에 도달합니다. 철학의 대표적인 질문이지요.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왠지 일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상태요. 대표적인 체계로 칸트의 3대 비판서가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니체가 근거 없는 주장을 하기도 전에 독실한 종교인이기도 하였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체계적으로 신을 죽였습니다. 나의 인식이 어디까지인지 경계를 분명히 하였지요. 그렇게 오게 된 세계의 중심에 서서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구체적인 양태는 저마다 다르겠으나 추상적으로는 하나의 아름다움이며 그 추구에 확신을 주는 것이 <<판단력비판>>입니다. 삶이라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정언명령이지요.

    질문을 했는데 질문을 받은 것은 당신의 질문이 가지고 있는 불명료한 부분을 하나 제거한 답을 받은 것입니다. 거기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빡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였지요. 바로 당신같은 사람이요.

    지금이나 예나 그러한 사람이 많아서 플라톤이 대화편을 썼습니다. 대가들은 대가들만 알 수 있는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내용과 형식을 자유롭게 꾸미는 최고의 기교를 가지고 있는데도 대화라는 형식으로 썼습니다. 왜일까요? 그게 쉽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에서 당신같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쓴 교재이지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라는 강의 교재는 읽어보고 댓글을 쓰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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