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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갈수있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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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갈수있나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45 법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되어 만드는 일반적인 오류들. [새창] 2014-10-28 21:37:21 0 삭제
    1.과 4.의 관점은 법의 관점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이 법의 관점에 침투해 들어간 과정을 검토하면 될 것 같아요.

    푸코 전도사인 제가 또 푸코 이야기를 하는데 1.의 부분에 대해서는 푸코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하루 날 잡아서 강의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작 법학 쪽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 임오유님 말씀이 맞는 것 같으나 법학 비전문가인 푸코는 전문가의 안일함을 뛰어넘어 그 전제조건에서 놀고 있죠.
    그런데 정작 푸코의 독일 신자유주의, 미국 신자유주의 비판만 미친듯이 읽고 이 부분은 대충 읽어서 설명하기에는 제 지식이 부족하네요. 시간나면 읽었다가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으면 정리해볼께요. 불행히도 조만간은 아닐 듯 합니다.
    궁금하시면 이 강의안 11강 이후 읽어보세요. 불어번역 중에서는 어느 정도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어번역보다 안좋은 것은 사실이죠. 읽으시는 것을 추천하나 사실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정작 읽으셔도 저처럼 독일 신자유주의와 미국 신자유주의 내용이 더 재미있어서 정작 11강 이후 잘 안 읽게 됩니다.

    4.는 꼭 경제적 관점의 법관점 침투만으로 해석해야할 이유는 없는데, 경제적 관점이 다른 학문에 침투하면서 부각된 것이 '비용' 문제잖아요.
    법, 특히 사람을 감금하고 처벌하는 형법에서도 '비용'이란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 경제학이 모든 학문에 침투하고 지배하는 근거라고 볼 수 있죠.
    이 말만 하면 아시겠지만, 구조적 관점의 접근은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경제학적 관점을 통해 보면 돈 많이 들고 효용성은 적은 구조적 관점의 해석은 할 필요가 없게되죠.

    3.의 부분은 꼭 법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읽어보니 뉘앙스는 형법, 처벌을 가정하고 쓴 듯 한데, 이는 법의 특징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꿔서 단지 한 개인에게 모든 짐을 주고 처벌해버리는 일종의 '재물'로 보는거죠.
    어떤 의미로는 4.에서 제가 판단한 형법에서의 '비용'문제라고도 할 수 있고, 이 이론을 확장해보면 '재물', '희생양'이론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꼭 법 고유의 문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네요.

    2.의 부분은 형법의 '고의'와 '과실'에 대한 문제와 결과반가치와 행위반가치의 문제, 즉 결과가 나쁘냐 행위가 나쁘냐 하는 문제가 섞인 것 같군요.
    그런데 동양과 서양의 관점으로 나누는 것은 글쓴이님이 간단하게나마 논증을 하셔야 할 것 같네요. 꼭 동서양의 문제는 아닌 듯 해요.
    예를 들어 살해라는 결과에 대해 고의로 죽였을 수도 있고 과실로 죽였을 수도 있겠죠.
    사람의 마음을 알긴 힘들기 때문에 당연히 그 결과를 시작으로 해서 그 동기, 마음을 알아내는 방향으로 수사를 하겠죠. 이건 동서양 다 마찬가지겠죠.
    이 과정에서 과학수사를 통해 고의성 또는 과실가능성을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강압수사를 통해 증거고 뭐고 필요없이 협박하면서 자백만 강요할 수 있겠죠.
    자기가 안했다고 잡아땔 수도 있겠지만 경찰서나 검찰청 가는 것도 무서워하는 풍토상(누가 만들었는지 우리 모두 잘 알겠지만 말 안하겠습니다.) 할 말 안할 말 다 해서 경찰이나 검사가 좋아하는 자백 다 하고 진술서 알아서 다 써주는 게 우리나라 분위기잖아요. 그러면 경찰 검찰은 땡큐하고 그냥 처벌해버리죠.

    글쓴이 님이 적은 "동양은 행위 자체에 좀 더 비중을 두는거 같고." 란 말이 이해가 잘 안가네요.
    저 나름대로 생각해서 말 만들어보면 결과를 기준으로 바라봐 고의범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으로 하신 것 같은데
    이는 공안정국의 편안함에 젖어들어 수사능력이 퇴화해 협박에 의한 자백 중심으로 처벌했던 우리의 어두운 단면이란 현상을 이론적으로 해석하신 것 같네요.
    꼭 우리나라라고 이렇게 하진 않아요. 증거수집이 잘 안되거나 고의입증이 잘 안되면 살인이란 결과를 가지고 살인죄로 억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폭행치사를 자주 써먹어요.
    폭행치사는 입증하기 편하잖아요. 때린 것은 고의 입증이 편하고 죽었단 결과는 있으니 과실 뒤집어 씌우기 편하잖아요.
    그래서 예전에 뉴스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경찰, 검찰이 너무 편하게 폭행치사로 갈려고 해서 공소시효 지나버렸다고 하는 방송도 종종 나왔죠.

    어차피 법이란 것 자체가 순수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이 논의는 법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경제학 등 타 학문이 법학에 녹아들어가 기본원리로 작동하는 것에 대한 문제와
    신념을 가지고 일해야 할 집단이 안일하게 활동하는 한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인 듯 하네요.
    뭐 뒷이야기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대안을 세워야겠죠.
    그러나 이 부분 손댈려고 하면 뭐 헌법상 원칙인양 으르렁거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헌법에는 정작 없는데 말이죠.
    뭐 여기도 관습헌법 가지고 오려고 한다면 그 창의성에 그냥 찌그러져 있어야 할 수도 있죠.

    원래는 더 자세히 적고 푸코 이야기는 제가 전도사니 읽고서라도 정리해드려야 하는데,
    이 게시판에서 생긴 황당한 사건에 머리가 정지해버린 것 같습니다. 저도 참전해야 하는데 제 머리가 블루스크린 떴군요.
    아무튼 불친절한 이야기지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제 지식도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니 지적해주시면 겸허히 받아들이죠.
    44 궤변인지 아닌지 헷갈려서요 [새창] 2014-10-17 14:35:40 1 삭제
    글쓴이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제가 여기 처음 적었던 글에서도 지적한 이야기인데
    글쓴이는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당연한 한계를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타인은 바보다'로 승화시킨 것이고
    이 근거를 통해 '자신은 위대하다'란 착각에 빠지게 된 것이죠. 성찰과 고민이 부족하다보면 항상 이런 식으로 빠지게 됩니다.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당연함에 대해 다 의문을 가져보세요.
    먼저 글쓴이는 사르트르의 말에 의문을 가졌지만 그 전에 자신의 지식과 지혜에 한번 의문을 가져보고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기 내부를 한번 바라보는거죠.
    데카르트도 그렇게 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발견했다 잖아요.
    물론 거기까지 오는 과정 속에서 생각하기 귀찮아서 슈퍼스타K에서나 나올 슈퍼패스 몇번 썼다고는 하지만요.
    데카르트의 슈퍼패스가 아닌 진리를 향한 데카르트의 태도를 한번 따라해보는거에요.

    지금 답글에서 쓴 내용을 유치원생도 알아볼 수 있는 글로 한번 바꿔보세요.
    완벽하게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가급적 쉽게 써보고, 쉽게 써지지가 않으면 보충설명을 통해서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로 한번 만들어보세요.
    이 과정을 하다보면 본인 스스로가 단지 파편화된 개론적 내용만 어렴풋이 알고 지껄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에요.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뿌옇게 흐려져보이는 것이고 뿌연 부분을 어떻게든 보기 위해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채우다보니 학자의 생각과 본인 생각이 뒤죽박죽 되어있는 경우일 수 있는거죠.
    물론 학자들의 생각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에요. 아무리 읽어도 죽을때까지 이해못할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거든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근거가 있는 타인의 생각이고, 어떤 것이 타인의 생각으로 발전시킨 나의 생각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이죠.
    손자병법에 나온 '지피지기'의 상태로 한번 만들어보는거에요.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야 타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버무릴 수 있는거죠.
    결론은 같아보여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자신이 어떤 것을 공부할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죠.
    동어반복적 이야기지만 허세의 목적은 자기잘난척이죠. 맞는 말이든 틀린 말이든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인상만 주면 충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가 되든 안되든 지식을 쑤셔담고 단지 내뱉을 뿐이죠. 그럴듯한 고유명사가 있을 때 가장 좋아하죠. 한번 말해주면 끝이니깐요.
    그렇듯 글쓴이는 이런 허세를 버리고 허세의 근원까지도 한번 바라보는거에요.

    이 과정은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삶의 태도죠. 평생 함께해야할 삶의 자세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진행해보면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죠.(공자가 한 말이라고 하던데 노자는 아는 것도 모른다. 모르는 것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한발자국 더 나아가더군요. 일단 논외로 합시다.)
    이런 자기인식 자체가 지식과 지혜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꺼에요.

    글쓴이가 쓴 글이 왜 궤변으로 갔는지에 대해 써볼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작업을 하러 가봐야겠군요.
    시간되면 이 부분도 써보겠습니다.
    43 윤리와 법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새창] 2014-10-17 13:36:19 0 삭제
    답글을 보고 글쓴이가 나아간 결론은 성급하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어떠한지를 바라보는 과정이 중요하죠.
    글쓴이는 사회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가 차이가 날 때 개인의 가치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회의 가치가 무엇이고 개인의 가치가 무엇인지 완벽한 정의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죠.

    제가 블루스크린 운운한 이유는 문제해결을 위한 전 단계인 문제를 바라보는 단계에서 글쓴이의 오류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양심과 신념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윤리'란 단어로 바꿔 쓰셨습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쓴 내용을 보면 양심과 신념이란 뜻이 윤리란 단어에 완벽하게 흡수, 대체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양심과 신념의 뜻을 나는 윤리라고 부르겠다.'라고 선언하셨지만 국어사전이나 철학적 의미와는 별개로 우리가 주로 쓰는 윤리란 단어, 사회적 가치를 담아 사실상 힘을 가지는 도덕의 뜻은 같고 표현만 다른 말과 기능적으로 혼동을 가지면서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고,
    일단 법과 도덕과 양심의 차이에 대한 구별이 필요하다고 해서 답글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았을 때, 단어의 혼동에 따른 의미의 혼동, 생각의 혼동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버리죠.

    그런데 글쓴이는 이 개념의 정리만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고 성급하게 나가버립니다.

    개념을 정리했단 이야기는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완성했다는 이야기고,
    이 관점을 통해 현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논의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논의를 '이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었단 것이죠. 막상 이 준비과정 자체로 세상이 확 바뀌진 않을 것이고, 실패하면 또 다른 준비를 하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과정이 되겠지만, 1차 도전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 개념 정리로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법은 사회적 가치를 담은 것이기 때문에 소수의 입장에서는 다수의 입장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의 다수도 주권자인 소수의 입장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소수의 가치가 지켜질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가는데 노력하여하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법학자들이 정치범에 대해 관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은
    엄벌주의 정책으로 죽이거나 가두는 방식의 배제적인 형사정책보다
    사회 내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사회정책을 통해 접근해들어가야 하고
    이런 정책이 만들어지기 까지 형사처벌을 중지하거나 가급적 자제하여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죠.
    이런 논의의 기본 방향은
    현실인 법이 양심과 신념을 억압한다 그 현실인식 자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당한 현실을 인식하고 어떻게 개선해나갈까란 생각이 맞는 것이죠.

    글쓴이가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로 여러 사람들의 댓글의 내용을 이해하신 것은 일부분만 맞는 내용입니다.
    일단 글쓴이의 짧은 글에서 현실인식이란 1단계 과정의 오류가 보였고, 1단계 과정을 바로 잡은 것일 뿐이죠.
    이후 2단계로 함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또 1단계 과정을 다시 해봐야겠지만요.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썼는데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것이 '당연하다.'란 이야기를 예전부터 적어왔고,
    당연함이란 말 속에 당연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진 않았는지 하는 두려움에 당연한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덧붙이는 말 : 글쓴이가 사회적 가치 속에 개인의 양심이 희생당하는 면에 대해 의문을 가지셨는데
    제가 살펴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던 양심적 병역거부나 국가보안법 같은 문제에서는 오히려 처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약간 실망스러울 것 같습니다.
    다 같은 문제거든요.
    42 윤리와 법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새창] 2014-10-15 02:04:44 0 삭제
    글을 쓰고 나니 블루스크린이란 단어를 쓰면서 제가 너무 막말을 했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제가 잘못 한 부분이니 글은 남기고 사과드리겠습니다. 제 흑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죠.

    그러나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하자면
    양심적 병역거부나 국가보안법 사건이 글쓴이가 말한 내용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있으니 한번 읽어보면서 생각해보면 괜찮을 듯 합니다.
    41 윤리와 법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새창] 2014-10-15 01:59:46 0 삭제
    글쓴이는 윤리란 단어의 의미에 대한 혼동을 하였고
    여기에다 법과 윤리를 성급하게 연결하여, 컴퓨터로 표현하자면 블루스크린이 뜬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걸 해결하는데는 큰 이론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간단하게 혼동되는 부분만 바로 잡으면 됩니다.

    일단 글쓴이는 법을 사회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 객관적인 것으로 정의했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윤리는 개개인 인간 내의 주관적인 요소로 정의한 듯 하군요.
    제가 국어사전적 의미를 따지는 것도 아니고, 저도 단어 막 쓰고 있긴 한데
    보통 글쓴이가 말한 윤리는 윤리가 아니라 양심 또는 신념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개인의 양심 또는 신념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내용은 글쓴이는 윤리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일단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언이 있습니다.
    법과 도덕과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말이죠.
    법과 도덕 둘다 공통점은 사회 구성원이 규칙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죠.
    이 도덕적 내용 중 법적 강제성을 부여할 일부 도덕만 법으로 만들고 강제하고 처벌한다는 뜻입니다.
    법과 도덕은 위의 법언과 같이 전체집합, 부분집합 관계로 표현할 수 있겠죠.
    이 법과 도덕과의 관계, 더 나아가 법적 강제성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한 것이 유명한 '사회계약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글쓴이의 윤리를 양심 또는 신념으로 바꿔서 논의하겠습니다.

    사회 구성원 전체를 구속하는 법과 도덕과 개인의 양심 또는 신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내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생각하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이 이론이 옳고그름을 떠나 이런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징병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양심 또는 신념에 따라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죠. 이런 사람들은 징역 1년 6개월을 살고 나옵니다.(1년 6개월 이상 징역살면 군대를 안가도 되기 때문에 대다수 사례에서 이렇게 판결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과자로 평생 제대로 된 취업을 못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약한 처벌이라고는 볼 수 없죠.)
    형법학계에서도 대다수 학자들은 정치범 등 신념을 가진 범죄자에 대해서는 관용의 자세를 보여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률에 대한 착오에 대해서도 형법학계에서는 '위법성의 착오'란 이론으로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논의를 다 끝내놨습니다.
    그리고 책임능력이 없어 형벌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치료감호 등 보안처분을 통해 사실상 감금효과를 노리고 있고, 법무부에서는 2005년 폐지했던 보호감호제를 보호수용제로 이름만 바꿔서 다시 도입하여 범죄자를 가둬버릴려고 노력하고 있죠.

    글쓴이의 혼란스런 단어 사용을 약간만 정리하니 이미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부분이고,
    심지어는 글쓴이도 잘 아는 논의가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데 비트겐슈타인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40 궤변인지 아닌지 헷갈려서요 [새창] 2014-10-15 01:38:57 1 삭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본문의 글 자체는 완벽한 궤변입니다.
    '자유'란 단어 자체로 글쓴이가 장난치고 있는 것이죠.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유롭다고 느낄 자유는 존재하는 것인가요?"

    자유롭지 않다는 상황과 자유롭다고 느끼는 인간의 인식의 괴리, 차이, 간극에 대한 물음이 글쓴이의 의도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상황에 대해 다르게 느끼는 인식의 차이에 대한 물음인 것이겠죠.
    현대 사회에 대입해보면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 내에서 전제군주제와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는 점을 느끼는 사람과 민주주의 가치가 잘 유지된다고 믿고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상황도 이와 유사하겠죠.

    그런데 글쓴이는 뭔가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 질문에 이상한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
    자유롭다고 느낄 '자유'가 뭐죠?
    이 문맥 속에서 왜 또 자유가 들어가야 하죠?
    글쓴이는 어떤 상황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 상황을 모두가 똑같이 인식해야 하는 것을 가정하고, 다르게 인식할 자유가 있는 것을 물어본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런 인식에도 자유란 단어를 써야하는 것입니까?
    자유가 들어갈 필요가 없는 곳에 뭔가 있어보이려고 자유란 단어를 억지로 집어넣어서 글쓴이는 간단한 질문 자체를 궤변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글쓴이는 뿌듯해합니다.

    지적 허세가 만들어낸 자충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함정에 자기가 빠져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의 본문만 보았을 때에는 지적 허세란 저의 판단은 근거없는 매도에 불과해보입니다.
    그러나 글쓴이의 답글 내용과 함께 봤을 때, 비록 불충분한 근거긴 하지만 허세가 있다고 판단해도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무식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글쓴이도 단어 자체의 의미를 잘 모르고 막 갖다 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본인 지식의 과시를 위한 글쓰기,
    20세기 글쓰기의 가장 위대한 성과인 홍정욱의 7막7장 속의 허세의 지존 부분,
    온갖 사상의 학파와 사상가의 이름만 주욱 나열 되어있고 간단한 설명조차 없는, 본인이 알지를 못하니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허세는 부리고 싶어서 그냥 다 갖다붙인 그 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분석한 글쓴이 질문의 의도는 상대적인 인식론에 관한 이야기인데(철학을 부분적으로만 독학해서 인식론 이런거 잘 모르긴 합니다.)
    정작 글쓴이가 다른 분과 답글로 토론할 때에는 상대적인 인식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시다가
    다시 답글을 보니 이 상대적인 인식론을 질문한 자신의 이론을 논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봐서
    이거 지적 허세 때문에 자기가 만든 함정에 깊게 빠져버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39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창] 2014-10-10 23:06:38 0 삭제
    글쓴이님 오래간만입니다. 요즘 저도 바쁜 일이 있었고, 기분나쁜 일도 있어 눈팅만 하다가 글을 안썼는데 글쓴이님 글 오래간만에 보고 글 남깁니다.

    이번 글은 정말 짧게 글쓴이의 글에 대한 반박보다도 글쓴이의 생각의 근원이 어디서 나왔는지만 간단히 밝히는 불편한 글로 적겠습니다.
    또 이런 말 적고 길게 쓸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오프라인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 지을 때가 되어서 제 나름대로는 간단히 적어보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세한 설명보다는 논지나 책 제목 몇개 툭툭 던지는 식의 글이 될 듯 합니다. 그래도 남들보단 길겠죠.

    글쓴이가 처음부터 자신의 글을 자본주의에 걸맞는 주장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이 게시판에서 장문의 글을 적었고 그 중 가장 많은 주제가 신자유주의 이야기였습니다. 글쓴이의 내용은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다보니 글쓴이가 여기서 논쟁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제가 예전 글에서 눈에 눈꼽이 끼여 눈이 안보일 정도로 많이 이야기 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과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를 기회되실 때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원서로 읽으셔도 되지만 번역이 깔끔하게 나온 책이라서 번역본을 읽으셔도 될 듯 합니다. 글쓴이의 생각과 완벽하게 똑같기 때문에 읽으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중간고사 끝나고 학교 도서관 가셔서 앉은 자리에서 두권 다 읽고 나오실 수 있습니다.

    글쓴이 본인이 하는 이야기가 신자유주의 이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시면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발견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2012년 월가 시위 등 다양한 이야기도 나오겠죠. 제가 여기서 쓴 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이야기니 제 글 읽어보는 것도 이 이야기의 도입이란 의미로는 괜찮을 듯 합니다. 뭐 저도 잘 적지는 않았고 오류는 많지만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로 말을 끝내자면 글쓴이의 이 글은 신자유주의 이론의 교육의도를 Ctrl + C, Ctrl + V 곧바로 한 것과 마찬가지며 신자유주의 이론이 전 세계에서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거뒀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8 에세이스트의 개똥철학 2 [새창] 2014-09-20 11:53:18 2 삭제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인데요.
    사도마조히즘적 논의를 약간 섞으면 이 사례가 재미있어질꺼에요.

    참여정부에는 검찰에 관심을 가져주면서 검찰의 독립성을 강조했죠. 그 결과가 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과의 대화에서 평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증절차를 거치다가 만 의혹을 다 가져와서 TV 방송 중인데도 그걸 읊어버렸죠. 이런 무례함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두고두고 남을 명언을 남기셨잖아요. 자기 같은 존재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기어오르는거죠.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예전 문학작품을 보면 군신관계가 남녀관계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신하는 여인이 되고 임금님은 남자가 되어서 쳐다봐주지 않고 떠나버린 남자를 위해 끝까지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죠. 그 당시 왕정이란 제도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이 신경을 써줬다면 그런 판단을 했을지, 오히려 신하인 자기가 싫다고 가버리진 않았을지 키득키득거렸던 추억이 있네요.

    전문가나 일반인이나 쉽게 느낀 사실이 있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는 검찰을 독립시켜주려고 했고 검찰입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입장이 달랐을 때에는 공식적인 발표 등을 통해서 입장 차이를 인식하고 조절하려고 했던 것 같았죠. 독립을 보장하고, 개입을 하려고 시도해도 그 기록을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남겨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마자 확 달라져 버렸죠. 검찰 독립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는데 자발적으로 복종해들어간다는 인상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기록도 없고 입장발표도 없고 일만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버렸죠.

    이런 검찰의 변화에 대해 사도마조히즘적 관점을 붙여보면, 자신의 인격과 독립을 보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만만한 존재로 사디즘적 경향을 보이고, 자신을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배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마조히즘적 경향을 보이는거에요. 심지어는 이런 지배가 체계화되다보면 관심을 안가지고 당연히 명령만 하겠죠. 가끔씩 주시는 이 위대한 명령의 꿀맛을 기다리는 방치플레이의 절정을 마조히즘적으로 즐기고 있을 수도 있죠.

    사도마조히즘적 경향이 상대적 경향이다. 아니다.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제가 뭐 그정도 판단할 정도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지금은 농담조로 풀어서 써봤습니다.
    37 만약에 범죄자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새창] 2014-09-20 11:38:34 1 삭제
    방식만 바뀌었지만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풍부하게 있는 사례에요.
    인간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나온 것이 우생학이잖아요.
    인간 유전자에 따라 앞으로 뭘 할 녀석인지 판단해버리는거죠. 최근 개봉한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보면 주인공이 폭탄을 터뜨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자 주인공이 젊은 시절이었던 20세기 초, 그 당시 정신병원에서는 누가봐도 순도 100% 백인인데 흑인의 후예라서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고 결론짓고 불임수술을 해버리죠.
    우생학적 관점이 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관점과 똑같죠. 단지 과학적으로 세련되어졌다는 것 뿐이잖아요.
    이 관점이 커나가면 어떻게 될지는 간단하잖아요. 인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사법제도의 심판을 받고 3심제도를 거치죠.
    그러나 인간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되면 단지 행정조치로 처리될 뿐이죠. 사형이 아니라 단지 청소가 되겠죠. 나치의,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재국가에서의 인종청소작업을 보면 글쓴이의 사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요.
    유전자의 영향으로 앞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 것인지 왜곡된 판단을 하던 당시 우생학이
    양자 컴퓨터의 100% 예측력으로 한 인간의 행동을 예언해버리는 사례로 방식만 바뀐 것 뿐이에요.
    결론은 인종주의로 가는거죠. 그들은 인간이 아니게 되고 배제되는 거에요. 그리고 행정조치로 처리될 뿐이죠. 단지 목숨만 붙어있는 존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회적 인간의 자격은 박탈당한 존재가 되어버린거죠.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동물원에 전시되었던 그런 시대가 돌아오겠죠.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시리즈 추천합니다. 이 게시판에서 이 책 몇번 추천했는지 셀 수도 없을 것 같군요.
    36 글세요. 인터넷에서 관심받고자 글을 쓰는걸가요. [새창] 2014-09-20 11:27:02 0 삭제
    lastlaugher // 몸살기운 있는 상태에서 글을 써서 너무 나간 면이 있긴 하지만, 남들은 가지고 싶어도 못가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자기합리화에만 빠져서 능력을 낭비하고 있다는게 안타깝기도 하고 열받기도 해서 적었네요. 저정도 능력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둔감하더라도 능력과 현실의 불일치때문에 본인이 엄청 괴로웠을텐데 어떻게 참아냈는지 제가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선배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 개념을 참고하지 않고 본인이 낑낑거리면서 맨땅에서 헤딩하듯이 발명했겠죠.
    35 글세요. 인터넷에서 관심받고자 글을 쓰는걸가요. [새창] 2014-09-19 21:10:31 3 삭제
    글쓴이님 글은 천재들이 글을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관념이나 통념따윈 다 부셔버리죠.
    그런데 이런 글쓰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지식 또는 지혜를 어느 정도 가진 다음에 써야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탕이 안된 상태에서 이런 글쓰기를 하면, 글쓰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 사실 생각하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글과 답글에서 나타난 글쓴이의 태도는 '우매한 것들아. 난 잘났다.'라고 밖에 읽혀지지 않습니다.

    원래 글이란 글 쓰는 사람과 글 읽는 사람의 소통이죠. 제가 글쓴이가 생각하는 우매한 수준의 사람이라 글쓴이의 고명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왜곡에 글쓴이의 잘못이 단 1%도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왜곡되더라도 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제가 왜곡하였다고 하더라도 왜곡의 증거가 이 답글로 남겨져 있기 때문에 누구의 잘못인지는 저나 글쓴이나 제3자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원문 요약 : 난 주류의 의견과 반대되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글을 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이러한 관점이 나 자신을 가다듬게 하고 성숙하게 만든다. 요즘 글쓰기, 특히 일베의 글쓰기는 자신을 위한 글쓰기가 아닌 자기가 타인에게 잘보이기 위한 글쓰기, 인정욕구 추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요나 추천같은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글쓰기는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한 글쓰기며, 글이란 결과물은 성장을 위한 도구, 사라지거나 지워지더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난 이렇듯이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한 글쓰기를 한다.

    억지로 요약하다보니 매끄럽지 않은데 대충 이렇게 보이는군요. 이왕 한김에 글쓴이 답글도 다 요약해볼께요.

    답글 1 요약 : 독선적인 경우를 만났을 때에는 난 주로 그 관점과 반대관점을 취한다. 독선적인 경우 중 순수한 경우는 그도 나를 이기기 위해서 발전하고 나도 그의 순수한 면을 흡수하면서 동반성장한다. 그의 성장을 위해서 난 내 관점과 그의 관점에 대한 반대관점 두가지 경우를 다 가지고 그에게 사용한다.

    답글 2 요약 : 나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의 자기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표층의식'과 표층의식이 쌓여감에 따라 형성된 장기간의 자신의 행동인 '심층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난 지금 나 자신이 판단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심층의식 속에서의 행동의 평균값이 표층의식인 척하면서 나오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개념을 난 8~9년전에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혼자서 만들어냈다.

    답글 3 요약 : 세상은 서로 상반된 것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특성을 가질 수 있고, 인간의 의식, 성격, 지식 등도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형성된다. 나 자신만 가지고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 자신 내부에서 끊임없이 어떠한 관점과 반대관점으로 토론하여 2가지 관점을 다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답글 4 요약 : 심층의식과 표층의식에 대한 답글 2의 보충설명

    답글 5 요약 : 양 극단의 관점이 있을 때, 성찰이 없는 경우에서, 얕은 수준의 관점에서 보자면 극단적이고 융화되지 못할 것으로 보이나, 이 양자의 관점을 함께 바라보았을 때에는 각자의 분명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이런 수준에서 보다보면 단점이 있더라도 큰 장점이 있어서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거 답글 하나에 다 반박하려고 했는데 원글하고 답글만 정리했는데 머리가 핑핑 도네요. 몸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쓴이가 다른 사람을 어떤 수준으로 평가하는지가 이 정리 하나로 다 나타나버려서 그것 때문에 더 머리가 핑핑 돌고 있습니다. 일단 결론만 말하고 좀 쉬었다가 아니면 내일이나 다음 기회에 근거 이야기하겠습니다. 글쓴이는 수많은 사람들과 논쟁을 하고 이겼다고 하는데 여기서 잠시 드러난 글쓴이의 글쓰는 방법을 보면 상대를 이해시킬때까지 끝까지 밀어붙여버리는군요. 그러다보면 인터넷 논쟁에서 최종 승자는 오래 앉아있어서 글쓰는 사람이겠죠. 글쓴이랑 논쟁을 하려면 몇날 며칠 밤샐 각오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일단 글쓴이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자신만이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당연한 것이 위험한 것이라는 글을 종종 했는데 당연한 것 중에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게 들어와서 당연해진 것과 정말 당연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죠. 표층의식과 심층의식 같은 경우도 이렇게 본인이 발명했다고 자랑하는데,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사람은 자기가 겪고 느낀대로 행동하잖아요. 이 당연한 것을 우물에서 두레박을 가지고 끌어올리느니 어쩌니 구질구질하게 설명한거죠. 이건 발명이 아니라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는 글쓴이의 능력을 발명한거죠. 그리고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상반된 것과의 비교 대조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발전해간다.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논쟁이 됩니까. 전 글쓴이가 수많은 사람과 논쟁을 했고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향상시켰다고 하는데 이런 뻔뻔함 때문에 논쟁의 상대방들이 어떻게든 피해볼려고, 도망칠려고 하는 것을 이겼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가 두려움 또는 무서움까지 느껴집니다. 만일 글쓴이와 제가 논쟁, 인터넷이든 직접 만나든 논쟁을 하면 제가 140% 집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글쓴이가 남의 이야기 안듣고 자기가 새로 발명했다는 개념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슨 논쟁이 되겠습니까. 저도 한두시간 어떻게 논쟁을 해볼려고 하겠죠. 심지어는 글쓴이랑 말을 하기 위해서는 글쓴이의 모든 개념을 이해하려고 하겠죠. 이해해봤자 글쓴이는 자기 말만 하다보면 전 한숨쉬면서 "그래 당신이 이겼소!"하면서 전 논쟁에서 빠지겠죠. 글쓴이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발전시켰다고 하는데, 이 글이나 예전 글을 통해서 보면 글쓴이가 다른 논쟁 상대방들에게 이해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 번 글에 천재성이 있다고 답글을 쓰면서 글쓴이의 내용이 '패러다임'이란 기존 개념에 대한 본인만의 설명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본인만의 개념을 만들기 이전에 '내가 패러다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고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합니다. 전 아직 정신분석학 공부를 시작하진 않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표층, 심층의식같은 개념이 있다면 본인이 발명하기 전에 '프로이트는 이런 말을 하나?'라면서 찾아보는 과정을 먼저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융'도 알고 '라캉'도 알고 하다가 찾아보고 하면서 실력이 늘겠죠. 그런데 글쓴이의 글에서는 이런 면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 못 알았을 수도 있죠. 제 답글을 본 이후로는 글쓴이의 글에 수많은 학자들의 이름과 인용문구가 도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글쓴이의 글은 차라리 인용문구로 도배를 한 글이 훨씬 낫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 적겠습니다.

    글쓴이는 글을 통해서는 자신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글을 쓰기 때문에 관심받고자 글을 쓴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런데 글쓴이의 글 자체가 관심을 받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제가 요약한 글쓴이의 글을 보면 항상 자기 자랑만 적혀있습니다. 내가 나의 성숙을 위해 글을 쓰니 이 가설은 틀렸어, 난 심층의식, 표층의식이란 개념을 만들었어, 난 양 극단의 모든 관점에 대해 처절한 고민을 했고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논리를 향상시켜주기 위해 일부러 스파링 파트너를 하고 있어, 우매한 보통 사람들은 양 극단은 합쳐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위대한 깨달음을 얻어 양 극단도 장단점이 존재하는 단순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지 등등, 남들이 모른다고 가정하고 자기만 안다고 가정하고 자신이 깨달은 위대한 개념을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글쓴이는 "넌 얼마나 잘났냐."라고 물어보시겠죠. 전 인정합니다. 제가 배우고 익혔던 지식과 지혜가 얼마나 통하는지 알고 싶어서 여기에 글을 씁니다. 인정욕구 맞습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자신이 인정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뭐 부수적이란 말에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실수도 있죠.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폄하시키고 자신을 우월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제가 오유 처음 글 쓴 내용에 '자신의 생각은 자신만이 안다.'라는 인식론적 한계는 어느 순간 '세상의 진리는 자신만이 안다.'로 바뀌고 이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바보 멍청이일 뿐이다.'라는 가설의 어이없는 근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글쓴이가 바로 이 이야기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전 당당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글쓴이가 심층의식, 표층의식 이상한 이야기하는데 전 학술적인 의미의 단어를 제 마음대로 쓰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는 있는 개념으로 써보겠습니다. 글쓴이도 무의식에는 자신이 잘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독특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면 먼저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책을 뒤져봅니다. 나만의 독특한 생각이 아니라 살다가 어느 순간 들었던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깐요. 그러나 글쓴이는 이런 기본적인 작업조차 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학창시절에 시험 못쳤으면 어떻하나 걱정하고 벌벌 떨면서, 선생님이 정답지 나눠줬는데도 답 메기지도 않고 어디 구석에 쳐박아둔거랑 똑같죠. 그러다 하루이틀 가다보면 시험점수에 대한 생각은 잊고 룰루랄라 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즐기고 살아가는거죠. 학창시절같이 정답이 곧바로 나오는 경우에는 오히려 나을 수 있죠. 그러나 우리 인생처럼 정답이 없는 곳에서 이런 행동은 평생 현실은 보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게 됩니다.

    글쓴이가 발명한 개념으로 글쓴이를 정의해보겠습니다. 글쓴이는 표층의식에서는 자신이 세상의 많은 논리를 깨달은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심층의식 속에서는 정답이 나오면 어떻하지 벌벌 떨면서 답을 찾지 않는 어린아이랑 똑같은거죠. 그러다보니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 벌벌 떠는대로 행동하고 있지만 본인은 많은 논리를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자기합리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발명하고 깨달은 내용의 근거, 전제조건이 되는 내용을 보면 정말 빈약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답글의 극단에 대한 설명은 노장사상을 그냥 어디서 듣고 온 것에다가 아저씨의 인생론이 가미되어버린 내용으로 파악되는군요. 삼국지를 좋아하신다고 하는데 정사 삼국지는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김원중 교수 번역은 배송지주 같은 것을 번역하다 말아버렸다고 해서 국내 최초 완역본이지만 사서 읽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지긴 하죠. 그러나 인터넷에 삼국지 오타쿠들 많잖아요. 심지어 김원중 교수 완역 전에 아마추어들이 정사 삼국지 다 번역해놨더군요. 저도 심심하면 가끔 들어가서 읽습니다. 제 군대시절 저랑 가장 많이 싸웠던 일베 병사가 삼국지 광팬이었는데 걘 삼국지 게임 광팬이었죠. 사람의 능력치를 수치로 매겨서 이야기하더군요. 자기를 지력 90 정치력 80으로 매기길레 넌 농민이나 황건적일 뿐이다 라고 이야기했었죠. 오히려 글의 내용을 계속 보다보면 글쓴이가 삼국지 게임만 광팬은 아닐지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물론 많은 것을 배워야 좋은 지식과 지혜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배움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와 수준을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배움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글쓴이의 글에는 고민, 사색, 자랑만 나와있지 배움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글 속에서도 배움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즉 자신의 위치와 수준을 모르는 상태, 태평양 망망대해에서 수평선만 보이는 아득한 바다에서 튜브 하나로 표류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랑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물론 배움만 있고 고민, 사색이 없는 사람도 많이 존재합니다. 이 게시판에도 많이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글쓴이는 그들과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글쓴이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죠.

    예전에 글쓴이의 글을 읽고 천재들의 글쓰기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글쓴이의 글에는 기존 배움의 고정관념이 없었고, 글쓰기의 고정관념도 파괴하는 것을 보고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하면 분명히 창조적 책읽기를 할 것입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나 이런 사람 중 대부분은 공부를 잘 안할려고 합니다. 제 군시절에도 글쓴이와 같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복지시설장교였던 1년 동안 미용병 1명이 있었는데,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 않았지만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녀석이었죠. 제 밑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다 있었지만 걔보다 창의력은 떨어졌습니다. 즉, 걘 제가 화두만 던지면 그것을 가지고 그럴듯한 결론을 내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했지만, 뭐 책읽는 것을 싫어해서 제가 한 이야기만 듣고 외울려고 하더군요. 어떻게든 써먹어보려고 했나 봅니다. 전역해서 뭐먹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쓴이도 이 녀석같은 능력을 가졌는데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면 아마 몇 년안에 남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불충분하고 허술하지만 이야기, 이론을 만들어내지 않습니까? 1을 넣으면 100이란 결과물이 나오는 기계가 글쓴이라고 하면 지금까지 0.000000001이란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결과물을 만들었습니까.
    만일 제대로 된 재료를 집어넣는다면 어떻게 될지 기대되지 않습니까? 두근거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글쓴이는 왜 가채점을 하지 않고 벌벌 떠는 어린아이처럼 있는거죠?
    그러면서 자긴 잘났다고 이런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기합리화를 하고 계신거죠?
    전 분명히 능력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가지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계시면서 자기합리화만 하고 계신 모습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제가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글쓴이와 제가 논쟁을 하면 분명히 제가 집니다. 그건 글쓴이의 지혜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글쓰는 방식이 이길 수 밖에 없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양 극단의 모든 것을 자신이 관점을 스스로 바꿔가면서 까지 다 겪어보고 자신이 완벽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정작 자신이 논쟁의 상대방이나 글을 읽는 상대방에게 보호받고 계시단 사실을 모릅니다.
    논점의 양 극단만 오고갔지, 논쟁의 양당사자로 오고가지 않았다는 가장 큰 증거죠. 오히려 이 증거로 말미암아 글쓴이가 논점의 양 극단을 오고갔는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전 글쓴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뭘하는 분인지도 모르고 나이도 모릅니다. 그래도 인생의 실패자인 저보다는 훨씬 더 나으신 분이신 것 맞겠죠. 저만큼 실패할 수는 없으니깐요.
    제가 저보다 나이 많은 연장자에게 큰 실례를 범했을 수 있죠. 그러나 큰 가능성이 있으신 분이 이러고 계시면서 자기 감정이 뭔지 모르고 자기합리화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글을 적습니다.
    글쓴이는 어마어마한 능력자십니다.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바라보고, 활용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분명 몇년 안에 이 게시판에서 글쓴이 따라 올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전 자부합니다.
    글 다음에 적는다고 했는데 쓰다보니 다 썼네요.
    오히려 글쓴이의 글의 내용을 보고 저도 오유 철학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제 글을 읽어주고 계신 분들의 관심과 배려로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 자신을 다시 되돌아봤습니다.
    긴 글이 짧아지진 않겠지만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글쓴이께 너무 안좋은 말로만 도배를 했지만 이건 진심입니다. 글쓴이는 뛰어납니다. 제발 본인을 바라봐주세요.
    34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9 14:37:17 0 삭제
    책을 사볼까 했는데 절판된 책이군요. 도서관으로 가서 또 작업해야할 것이 늘어났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33 장자 평전 읽던 도중에 질문 드립니다. [새창] 2014-09-19 14:36:19 0 삭제
    호유씨님 // 노자와 장자는 중학교때 읽은 것 가지고 아직까지 써먹고 있긴 한데, 소 뒷걸음치다 쥐잡듯이 큰 논점을 잡아버렸군요. 점쟁이나 되어야겠습니다. Phil님 해석이 맞으니 제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세요. 책에도 명가 사상을 비판한다고 하니 제 설명보다 더 자세히 나와있겠군요.

    숲속의당나귀 // 힌두철학은 환갑이 되기 전에는 공부해야 겠다는 결심만 했지 아직 무슨 책이 있는지 검색도 안했습니다. 그러니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어서 유감스럽습니다.
    32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9 14:31:49 0 삭제
    다음날 쓴다고 했는데 하던 일이 1차 마무리가 되어서 그런지 긴장이 확 풀려 가벼운 몸살이 있었네요. 지금도 겔겔~~ 거리긴 하지만요.
    글을 처음 봤을 때는 할 말 많겠다고 생각했는데 아픈게 좀 나아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떻게 써야 길게 쓰지 하는 두려움이 앞서네요. 이성적인 글이라고 하더라도 감정발산의 방법 중 한가지가 맞는가 봅니다. 이성적으로 가장한 감정적 글이란거겠죠.

    그래도 쓴다고는 했으니 긴 글은 아니더라도 쓰긴 해야할껀데... 쓰면서 어찌 써야 하나 생각밖에 안드니...^^;

    다른 분들도 자주 말하셨지만 우리 사회가 철학적인 생각과 이야기에 대해 필요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였고, 철학없는 사회란 결과를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보니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과 유사하게요. 그렇지만 철학을 접하고 다루는 방법에 대한 연습은 전혀 거치지 않았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생각을 표현할 방도를 찾지 못하다보니 세련되지 못한 말과 글로, 속칭 개똥철학으로 나오게 된 것이겠죠. 물론 철학에는 일정한 방식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철학은 일정한 방식이 없다란 사실도 저를 포함한, 글쓴이 님의 어린 시절에도, 지금 여기 글을 쓰는 수많은 사람들도 모르고 살아왔고,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잖아요.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시도를 반복하고, 실수를 하게되고, 현실의 철학이 자신이 꿈꿔왔던 철학과 다르단 생각에 실망하고, 그렇게 열정이 사그러들고... 그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네요. 이런 고민과 열정이 단지 '중2병'이란 단어로 폄하되고, 사라져버리는 게, 이 좌절에 순응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성숙'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어느 정도 학식을 쌓으면 '중2병'의 발병과 치료에 대해 사회적인 것에 대한 도전과 좌절이란 관점에서 글 또는 책을 쓰고 싶어요. 먼 미래의 일이 되겠죠.

    이런 현상 속에서 철학 전공자들은 비전공자들에게 단지 '중2병'의 발병이 아닌, 발전적인 고민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몇천년 간 '중2병'걸린 사람들의 지껄임의 모음이 철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만 위대하다는 자신감은 위대한 다른 사람들도 많다 겸허함으로, 내 머리속에서만 나온 지혜라는 오만함은 많은 학자들도 고민을 했다는 동질감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교정해주고 검토해줘서 좀 더 나은 생각으로 발전시키는데 전공자들의 역할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잖아요.

    아직도 머리가 멍~ 하니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일단 이미 늦었더라도 약속 지킨다고 쓰긴 하는데 차라리 안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무튼 커피콜라카페인님과 제 생각은 상당수 면에서는 유사하지만 다른 상당수 면에서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곳에서 함께 하면서 인연과 악연을 함께 느끼면서 지내고 싶네요. 하시는 일 잘 하시고, 앞으로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급한 일부터 마무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글 올리시면 태클 크게 걸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1 장자 평전 읽던 도중에 질문 드립니다. [새창] 2014-09-17 11:33:01 3 삭제
    숲속의당나귀님 말도 맞는데요. 그렇지만 이 문구는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그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라고 알잖아요.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병가 등등 100여개 가까이, 100여개가 넘을 수 있는 학파가 등장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죠.
    사상같기도 하지만 병가는 우리가 아는 손무, 오기 등 손자병법, 오자병법 쓴 사람 즉 장군이나 군사들이죠. 구체적인 전쟁방법을 전파해서 혼란을 막는다는 것도 학파로 인정할 정도죠. 묵가는 겸애설로만 알고 있는데 겸애설을 발전시키다보니 결론적으로 전쟁 중 방어전의 달인이 되어 용병으로 활동했대요. 이렇게 백가지 학파 속에는 상상도 못할 학파들도 많이 있었대요. 음양오행의 기본인 음양의 논의도 이때 정리가 되어 음양가로도 나왔다고 하고, 내용은 잘 모르지만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농가도 있었다고 하죠. 이거 자료는 얼마 없겠지만 연구해보면 깜짝 놀랄 사상의 발달을 알 수 있을꺼에요.

    장자가 있었던 시기 가장 인기있었던 학파가 '명가', 즉 말과 논리를 중요시여긴 학파라고 해요. 이 명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 장자 책 속에 맨날 나와서 장자한테 털리고 돌아가는 '혜시' 즉 '혜자'와 장자에는 안나오는 '공손룡자'가 있다고 해요. 지금 많은 것은 생각나지 않지만 명가의 대표적인 논리는 공손룡자의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어요. 백마는 말이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말의 일종이죠. 즉 상위개념과 하위개념의 관계죠. 그러나 공손룡자는 이 관계를 비틀어서 백마와 말을 동일관계에 놓고 백마의 특징을 말의 특징이 설명할 수 없으니 백마는 말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해요. 완벽한 궤변이죠. 그러나 이 논리를 펼쳤을 때 그 순간 사람들은 대답할 수 없잖아요. 벙~~ 쪄버렸으니깐요. 그래서 특히 명가의 학파가 중요한 이유는 외교술 같은 곳에서죠. 순간적인, 단판승부 같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안죽고 세치 혀로 많은 이득을 얻고, 심지어는 천하통일까지 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능력으로 평가받았나 봐요. 그러다보니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가장 인기있는 학파가 되었던거죠.

    이 인용한 문구 중 뒷부분을 보니 이 명가의 '백마는 말이 아니다' 논리를 가지고 와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비판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한 해석을 앞부분에도 가져오면 앞부분 내용도 명가가 주로 쓰는 논리가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죠.
    좀 다른 이야긴데 장자 내편에 보면 혜자가 장자를 찾아와서 내가 선물받은 박씨를 심었는데 박이 너무 크게 자라 국자로도, 물건보관용으로도 쓸데가 없다. 장자 너의 주장도 이렇게 쓸모 없는거 아니냐. 라고 말하니 장자는 큰 술통 만들어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면 되는거지 그걸로 물건 못담는다고 징징거리냐. 고 오히려 반문하고 혜자는 또 벙~ 쪘죠.

    노자나 장자나 인식, 규범 등 우리가 만들어 놓은 기준과 제도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왜 장자평전이란 글을 쓴 글쓴이는 수많은 좋은 사례 놔두고 명가의 사상을 비판하는 느낌이 담긴 이 글을 굳이 가져온걸까요? 남들이 이미 다 써먹어서 새로운 해석 발굴한다고 한 것일까요?
    물론 이 글쓴이가 말한 글도 이런 장자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긴 하지만, 굳이 이걸 가져오다니... 좀 아쉽다는 생각은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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