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의 글을 보고, 오랜 시간 생각하게 되네요. 모니터 뒤에 사람 있는 거 압니다, 그래서 적어요. 아버지가 나를 때리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따님이, 딸에게 때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되는 아버지가 마음아파서요.
하루에 다섯시간 집에서 잠만 자는 부모님이 나의 잘못에 화를 낸다.. 많은 부모님들이 생계를 위해 정말 힘들게 일하고 있으신 것은 알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나를 혼낸다, 고 느껴야 하지 아이와의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는 없이 처벌만을 가한다면, 아이는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내 잘못을 처벌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것이며 나를 위해서 혼내는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거예요.
매일 한 번씩 꼭 안아주는 것만 해도 아이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아이가 자고있어서 얼굴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다가 깨도 괜찮아요, 한번씩 쓰다듬어 주시거나 안아주세요. 제 아버지는 한밤중에도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뺨을 치셨는데, 그냥 갔다올게 갔다왔어 인사하면서 안아 준다고 깨우면 아이도 좋아하겠지요. 아이가 잘못했을 때 때릴 시간이 있다면, 잘못하지 않았을 때 안아줄 시간도 있으시잖아요..
남의 자식은 그 집이 키우는 거니까 내가 때릴 일은 아니고, 내 자식은 내가 키우니까 때린다. 나는 남보다 시간적 환경적 여유가 없으니까 때릴 수 밖에 없다..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맞는다 해도 맞지 않는 가정과 자신의 가정을 비교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부당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누군가는 맞지 않고, 나는 맞아야 한다면 내가 맞는 처사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스스로가 잘못해서 혼난다는 죄악감 보다, 부당한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억울함과 분노만을 키울 수도 있어요. 육아에 힘들고 지쳐서, 내가 부당한 희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모님들이 있다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스스로의 의지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을 내가 만든 내 것이다, 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 은혜를 알아야 한다 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걸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불쾌히 여기실 분도 계시겠지만, 굳이 아이를 여유롭게 양육할 조건이 되지 않을 때 낳아서 부모와 아이 모두 힘든 시간을 겪느니,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아이를 천천히 낳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봐요.. 아이가 태어나고자 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계획과 그에 따른 결과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지요. 나는 힘든 환경에서 태어났고, 남보다 가지지 못하고, 피곤하고 지친 부모님을 가졌지만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어요. 아직 너무나 어리고, 사회의 불평등과 빈부격차 같은 것을 이해하기엔 배움과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요. 남과 비교하지 말고 가진 것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알아라.. 원숭이도 똑같은 행동에 다른 보상을 받을 때 차별을 느끼고, 어른들도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분노하는데,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라는 가르침은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많이 힘들고, 더 많은 시간이 들겠지만, 조금만 덜 때리셨으면 해요. 아이가 때리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몇 살부터 그랬나요? 말을 하기 시작할 때 부터? 아이의 지금 행동은, 과거의 모든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형태가 된 것입니다. 때려서 한순간에 고쳐지지 않아요. 사는 게 힘들어서 아이를 위한 시간을 만들기도 쉽지 않겠지만, 사랑으로 낳으신 거잖아요, 하루에 1분이라도 매일, 꾸준히 아이를 사랑해 주세요. 자신이 아버지에게 어느 때고 항상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세요.
제 모니터 뒤에 사람 있고, 글 보시는 분들 중에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힘들게 일하고 몸도 마음도 지치신 부모님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마음도 아프지만, 보시는 분들 모니터 뒤에도 사람 있어요.. 웃음만 나온다, 주제넘는다, 남의 가정에 참견질이라고만 생각하고 넘기지 말아주세요, 내 아버지는 날 때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며 자란 아이가 어떤 글들을 썼는지 한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저는 트라우마라 불릴 만큼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않아요. 아이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이가 바른 사람으로 자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 아이가 힘들고 아무도 믿고 의자할 수 없을 때, 부모님만은 내 편이 되어주시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거든요. 제 아이에게 행복할때, 슬플때, 힘들때 생각나는, 죽을 때 까지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해요. 그게 삶을 더 행복하게 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이에게 친구가 될지, 처벌하는 사람이 될지, 사랑하는 아버지가 될 지는 모두 아이의 입장에서 느끼는 거예요. 어른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인 평가 하에 얼마나 적절한 처벌을 했는지로 결정짓는 게 아니라,
1111 사람이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대상이 '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질 때 입니다. (거북하다고 표현하신 것이 동정심을 느낀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는 가정하에 작성해본 의견입니다) 위 작품은 '살아있는 것을 죽인다'는 개념이 요체이므로 '내가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는 이유' 가 무엇인지에 따라 휴머노이드의 '생존' 여부를 판단, 동정심을 갖기도, 아니기도 하겠지요.
물론 '휴머노이드를 생명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부수는 것은 옳지않아' 라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 외의 '나와 같은 점'을 찾았기 때문이겠지요. 아니면 아예 대상에 대한 이해를 배제하고 '재물 손괴의 행위는 낭비'라고 판단되어 '파괴행위는 좋지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동정심과 죄책감, 양심에 관련된 것이 아니니 여기서는 일단 응용 문제로 남겨두고..
ㅡㅡㅡ 쉽게, 저를 예로 들면 작품에 묘사된 휴머노이드의 '표정' '외부 충격을 고통으로 받아들임' 의 요소에서 동정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생명체의 최소조건을 '?' '뭐하는 거지' '~싶다' 의 요소로 이미 충족하였으하므로 제 기준의 '생명체' 카테고리에 해당하며 타의로 손상시키거나 죽여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내리게 합니다.
저는 현 시점에서 생명의 기준을 물체의 재료가 유기물이냐 아니냐, 생장과 호흡 및 세포분열을 하느냐, 어떠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느냐가 아닌 '의지가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라는 동일한 자아를 인식하느냐'로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 휴머노이드가 '살아있고' '회복 불가능한 손상에 의한 작동의 영구적인 정지 또는 유지되던 인격체의 상실' 은 죽음과 동일한 현상으로 여겨집니다.
만약 안드로이드의 표정 묘사나, 충격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묘사가 없었다고 해도 저에게 작품 내의 안드로이드는 생명체이고 죽여서는 안되는 대상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충격에 대한 고통과 표정 변화' 의 요소만을 갖추었다면 '어이쿠 때리기엔 미안한 반응을 보이게 작동하는 기계네' 라는 판단을 하겠지요.
저것이 기계다/인간이다 의 판단 과 생명을 죽이면 된다/안된다의 판단 등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완벽하고 사전적인 설명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요소를 더하거나 배제하면 동정심을 느끼고 느끼지 않을지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