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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뽁이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1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로 소설쓰기를 친구에게 시켜보았다 [새창] 2014-07-16 19:20:41 12 삭제
    [ 가 ]을이 찾아오자 그 여자는 기어코 떠나버렸다. 우리는 지난 밤에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다. 나는 내내 화산처럼 헐떡이다가 간신히 한 차례의 분출을 끝마쳤다. 하지만 그 여자는 내 가슴 안으로 파고들며 울기만 했다. 나는 이 여자가 와인을 너무 마셔 감상적으로 변했구나, 하며 그 흐느낌을 자장가 삼아 잠들었었다.

    [ 나 ]는 아직 온기가 채 마르지 않은 침대를 내려다보며 그동안 우리 둘의 관계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 다 ]람쥐 한 마리가 창문 턱에 앉아 방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 경직되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밖으로 떨어질 뻔 했다. 그러나 내가 아몬드라도 줄 거라 생각했는지 코를 벌름거리면서 금방 경계심을 풀었다. 녀석은 그 자리에서 함참을 떠나지 않았다. 그 여자도 이 녀석과 같은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지난 6개월 동안 묵묵히 내 곁을 맴돌았던 건 지난 밤에 내가 준 사랑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내가 졌다. 그 여자는 끝내 내게서 갈증을 채웠고 미련 없이 떠난 것이다. 그래, 조그마한 다람쥐처럼.

    [ 라 ]디에이터 안에 뱀이라도 기어들어갔는지 그것은 높은 음으로 쉭쉭대며 울고만 있었다.

    [ 마 ]을은 고요했다. 나는 이른 아침의 평온함을 사랑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 바 ]람은 거칠게 불며 모든 걸 흔들어 깨웠다. 파도는 두꺼운 커튼처럼 방파제를 넘어가기 위해 들썩이며 솟구치다가 포기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잿빛 구름 사이를 뚫고 가을비가 마치 이슬처럼 떨어졌다.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파고웰 교수의 장례식이 엄숙하게 치뤄지고 있었다. 나는 오늘 거기 참석하지 않았다.

    "[ 사 ]람들의 죽음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지." 파고웰 교수는 살아생전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자네가 서울에서 여기 *낭트(프랑스 서부, 루아르아틀랑티크 데파르트망의 수도)까지 온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그림을 배우러 왔노라고 했다. 그 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우린 결국 죽기 직전에 남겨놓고 갈 무용담을 위해 사는 거라네."

    [ 아 ]버지와도 같은 분이었지만 죽음만큼은 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편안한 기분이었다. 이 역겨운 세상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 분을 만나러 올라가신 게 아닌가.

    [ 자 ]동차가 숨을 껄떡이며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는 게 보였다.

    [ 차 ]는 끝내 공기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버렸다. 패배를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씩씩대다가 타이어에 발길질을 해댔다.

    [ 카 ]카오 나무의 큼지막한 잎사귀들이 아이스크림 차를 쫓는 강아지처럼 자꾸만 *루아르 강물(프랑스 중앙부를 거쳐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강)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우직한 나무뿌리가 목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 타 ]자 소리가 성난 말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아래층에 사는 브르타뉴 씨가 드디어 다음 작품의 긴 구상을 끝마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는 뜻이었다. 나는 거울 앞에 걸어가 섰다.

    [ 파 ]랗게 질린 남자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그 여자가 매춘부였는지 아니면 수녀였는지는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선녀였을지도 모르고 악녀였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내가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선물해 주었다. 지난 밤에는 내 손을 꼭 잡고 설탕가루처럼 뿌려진 은하수로 데려가주질 않았던가.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파고웰 교수의 말씀처럼 사람들의 죽음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결국 무용담을 위해 사는 것이다. 앞으로 그 여자는 내 무용담에 빠짐 없이 등장하리라.

    [ 하 ]지만 그 여자는 여기 없다. 방금까지 창문 턱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다 지쳐 가버린 다람쥐처럼...... 나는 서랍을 열고 권총을 찾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총구를 정확히 관자놀이에 가져다 붙였다. "고마웠어요, 다람쥐."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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