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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lemnTruth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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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lemnTruth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820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30 20:29:21 0 삭제
    제가 이야기 하는 논변이 무의미하지 않은 이유는 저는 곧 "의미작용"이 바로 인식과 같은것이라는 것을 말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집안에서 공부를 하는데 잡음이 들려 집중이 안됩니다. 이 "잡음"이 "잡음"으로써 인식된 것은 그것이 "잡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보다 선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잡음"으로써의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나의 의미체계에서 무의미한 것이고 -현재 나는 공부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전혀 신경이 쏠리지 않고 공부에 몰입했을 것입니다. 즉 "잡음"이 들리기 시작한 순간은 곧 그것이 나의 공부를 방해하는 "잡음"이다 라는 의미가 부여된 것과 동치입니다. 그렇기에 님이 형식화 시킨 구조에서의 선험성 자체가 "의미"라고 할 수 있지요. 왜냐하면 전 인식과 의미작용이 분리되지 않음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요. 님이 자의적으로 분리시킨 후에, 제가 말하는 의미가 논변에 관련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님 스스로의 의미에 대한 관념의 반복에 불과하고, 제가 이야기 하는 의미개념을 이해한 상태에서 비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819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30 20:15:45 0 삭제
    즉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갖는 심상-그것이 꼭 명제화되지 않는 더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찌되었건 우리가 어떤 것을 "보았다" 라는 것으로 부터 촉발되었기 때문이죠. 인식론은 미학과도 연결시킬 수 있고, 그 연결시키는 매개는 바로 현상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이데거는 가장 시원적인 언어를 "시"라고 평가합니다.
    818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30 20:12:38 0 삭제
    그거야 님과 제가 속해있는 지적커뮤니티가 달라서 이겠지요. 굉장히 독단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의미가 무조건적으로 언어표현에 대한 것이라구요?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인생의 의미란 무엇일까?" 라는 말은 말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라는 거군요. 님은 일상적 표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실증주의에서 오는 폐단같은데요. 인식이 명제에 대한 것이라는 것도 이해가 안갑니다. 그러다면 '인식론'은 명제에 관한 학문이겠군요? 명제적인 내용을 갖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죠? 인식론은 칸트적인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 -칸트적인 의미에서라면 오감을 통해서-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것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은 현상학이나 해석학이 될 수 있을 거구요. 너무 영미철학쪽으로 몰고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817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9 13:45:23 0 삭제
    저의 의미에 대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왜 저의 논변에 의미의 역할이 중요한지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뜻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의미" 자체가 의식의 사태에 대한 본질직관이고, 이러한 의미작용이 선험적인 조건 하에서 가능해 진다는 것입니다. 즉 저에게는 "의미"라는 단어가 곧 "경험" 혹은 "인식" 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절대로 소위 말하는 '객관적' 인식이 아니라, 의식에게 나타나는 심상과도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별을 볼때 별의 밝기, 위치등을 판단하는 것과 별을 보며 그것에 대한 미적인 경험을 하는 것을 객관적, 주관적이라는 틀로 구분하는 것을 경계하고, 이미 둘다 의식에는 구분없이 현상한다는 것을 중심에 두고 사유하는 것입니다.
    816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7 19:45:12 0 삭제
    그래서 저는 현상학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중입니다. 후설, 하이데거, 레비나스, 부버 등 존재를 인간의 의식의 현상에 근거지어 설명하려는 해석이 마음에 가네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창문인 의식에 대해서 소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깨끗하게 오류없이 보려고 하여 결국에는 우리가 보는 세계에 대한 참된 상을 획득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자신의 들보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의 티눈을 보려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815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7 19:42:08 0 삭제
    asdfzxcvasdf/ 가능성의 측면이라기 보다는 아이에게는 이미 의미의 수용을 가르쳐 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미가 아이의 의식에 현상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직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지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능성에 의존한 논증이 사소한 참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가능성을 '양적인' 측면에서 보지 않고 '질적인'측면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헤겔식의 변증법에서는 고대의 인간안에 이미 미래의 변증법적 발전이 들어있는 것이겠죠. 그러한 가능성이 단순히 사소하지 않은 이유는, 말 그대로 아무거나 그런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수정란의 예를 든다면 인간의 수정란과 원숭이의 수정란이 유전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어도 결국에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현상되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실존화되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서 한 쪽에 너무나 큰 무게를 두어버리면 독단이 되어 버립니다. 이상만 추구하는 독단적 플라톤주의와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실증주의 모두 독단이라고 할 수 있겠죠.
    814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6 20:23:36 0 삭제
    http://hompi.sogang.ac.kr/sgriphil/articles_16_pdf/16_2.pdf
    813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6 20:23:09 0 삭제
    후설은 제6연구에서 이에 대해 설명한다.
    판단에 있어서의 반성에서가 아니고, 혹은 판단의 충족에
    있어서의 반성에서도 아닌, 오직 사건의 상태와 존재라는
    개념의 참된 근원에 놓여 있는 판단의 충족 자체 안에서이
    다 (연결의 의미에서). 대상들로서의 작용 안에서가 아니라
    이러한 작용의 대상 안에 있는, 문제시되는 개념을 현실화
    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는 이상적 토대를 우리는 지니고 있
    다.
    812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6 20:18:45 0 삭제
    하이데거는 우선 직관을 “나타나는 그 자체로 주어지는 사물을
    단순하게 포착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14) 그렇다면 이 직관이란
    말을 수식하는 ‘범주적’이라는 용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여
    기서 범주적이라는 말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범주
    (Kategories)의 의미를 지닌다. 즉, 범주적이라는 것은 실재물의
    성격을 알려주는 서술양식일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범주적 직관
    이라는 것은 존재자의 성격을 매개 없이 완전하게 포착하는 직관
    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811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6 20:18:12 0 삭제
    그런데 이 지향성
    개념이 앞에서 말한 사유와 인식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지향성이 사유와 인식의 출발점을 이룰 수는 있겠지만, ‘문제시되
    는 것 자체에로!’(zu den Sachen Selbst!)13)라는 현상학의 구호
    를 전적으로 구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지향성이 현상학적 반성의 출발점임을 인정하면서도 후설 현상학
    의 이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또 다른 개념으로 이행해 가는데,
    여기서 부각되는 개념이 바로 ‘범주적 직관’(Die Kategoriale
    Anschauung)이다.
    810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6 20:16:58 0 삭제
    익히 알려진 대로 지향성이란,
    우리의 의식이 언제나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
    다. 이 개념은 지향하는 의식 즉, 노에시스(noesis)와 지향하는
    대상, 즉 노에마(noema)의 관계적 구조를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후설이 이러한 지향성 개념을 “이성의 보편적
    구조로 인지”했다고 보면서, 그의 철학적 제안은 “정신에 대한 궁
    극적 설명이 아니라 정신, 의식, 생동하는 경험의 지속성, 이성과
    같이 전통적으로 정의된 실재들에 대한 무비판적 적용을 극복하
    기 위한 시원적 접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809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5 20:04:40 0 삭제
    진리를 술어적 차원의 밖에서 본다면 진리는 단순히 참과 거짓이 아니라, 진리는 인간에게 정열을 불러일으키고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저에겐 플라톤적인 빛의 비유가 진리를 논리적으로 보기 보다는 총체적으로 보게 해줍니다.
    808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5 19:48:31 0 삭제
    역시 다시 진리의 문제로 소급하는 것 같습니다. 진리를 논리적인 것으로 보느냐 아니냐의 문제같네요.
    807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5 19:00:26 0 삭제
    즉 참과 거짓이 개념화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라면, 참된 말을 좋아하고 거짓말을 싫어하는 반응은 참과 거짓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계산이 이미 끝난 후에나 나올 수 있는 반응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순서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806 언어에 대한 짧은 단상 [새창] 2013-12-25 18:58:20 0 삭제
    글쎄요. 개념화 되기 이전에, 우리는 참된 말을 좋아하고 거짓말을 싫어하지 않나요. 이런 반응을 미루어 보았을 때, 단순히 참과 거짓의 인식이 개념화를 통해서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조금 힘듭니다.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술어적인 세계의 경험이 아니라 선술어적으로 사태를 인식함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요. 사태자체가 하나의 의미 bedeutung로써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이런 경험은 어떻게 보면 참과 거짓이라는 개념적 범주가 아니라 미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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