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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읗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223 현대인에게 철학이 전과 같을 수 없는 이유 [새창] 2014-02-07 10:21:31 0 삭제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20595241
    222 현대인에게 철학이 전과 같을 수 없는 이유 [새창] 2014-02-07 10:10:50 0 삭제
    기술의 추격으로부터 쫓기듯 술래잡기를 하는 것은 단순히 철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기술과학과 산업의 문제, 그리고 경제적 고용창출/수요창출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철학이 홀로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애초에 아닌 것이죠.

    여튼 이것과 연결된 글을 지금 쓰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올리겠습니다.
    221 헤겔사전 : 행위하는 이성 에 대해서 질문 드립니다. [새창] 2014-02-07 08:44:11 0 삭제
    일단 본인이 끌어오셨던 성장기 심리나 성적 쾌락, 중2병, 인간의 사회적 본성, 현대사회의 탈집단/탈사회적 일탈 등등은 각각 중요할 뿐만 아니라 통찰력 있는 비판을 끌어낼 수 있는 주제들입니다. 약간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헤겔은 여기서 다만 극히 사변적인 논리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을 뿐 현상 분석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헤겔을 비판하는 맥락이 이렇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정치철학/사회철학이 구체적인 내용을 완전히 겉돌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척"하는 면을 걷어내보면 결국 헤겔은 자신의 논리학 책을 그대로 다시 쓰고 앉아 있을 뿐이라며 비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구체적인 현상들이 저 내용에 잘 맞아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시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헤겔이 여기서 의미한게 그런 현상을 분석하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하고, 한편으로는 헤겔이 다만 자신의 논리에 현상을 끼워맞추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20 헤겔사전 : 행위하는 이성 에 대해서 질문 드립니다. [새창] 2014-02-07 08:22:50 1 삭제
    일단 정신현상학 원문을 (한글본이라도) 독해하는 중에 이걸 참조하고 계신건지 아니면 이것만 따로 뚝 떼어서 보고 계신건지를 모르겠어서 약간 설명에 한계가 있을 수 있는데요. 어느 경우이든 먼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이 내용을 "이성"의 여러 다양한 속성/측면을 나열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해에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성의 다양한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성은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다"라는 식으로 묶인 설명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관찰하는 이성"과 "행위하는 이성"의 관계를 보면 이 내용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성은 일단 "관찰하는 이성"으로서 존재합니다. 이 내용은 본문 중 "A. 관찰하는 이성" 부분과 그 바로 전의 부분에서 먼저 정립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헤겔은 이성이 단지 세상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서있을 수 없고, 한편으로는 행위하는 이성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논증합니다. 이 논증을 통해 "관찰하는" 단계에 있던 이성이 필연적으로 "행위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단계의 이행이 바로 변증법적 과정입니다.

    지식백과에서 인용하신 내용은 이제 이 "행위하는" 단계에 접어든 이성이 다시금 겪게 되는 변화의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이렇듯 정신현상학의 서술방식 자체가 이렇게 의식이 변증적인 발달과정을 거쳐가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먼저 확실히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쾌락 추구
    "관찰하는" 단계에 있던 이성이 능동적인 실천으로 자신을 세계 속에 산출하고자 하는 이성이 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자아실현과 연결되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상황에서, 그 답을 "알아내려는 (발견하려는)" 태도에 임했던 이성이 태도를 반전시켜 세상 속에 자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태도로 변화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아직 "자아실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헤겔은 먼저 "쾌락의 추구"의 단계부터 진입한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세상에 나의 뜻을 구현하고자 할 때에 나와 세상이 맺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가 쾌락 추구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대상이자 장으로 삼았을 때, 가장 원초적인 단계는 세상에서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쾌락은 성적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의미의 쾌락, 즉 모든 욕구/충동 등등을 포함합니다. 즉 이 단계의 의식에게 세상이란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물에 불과합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 역시 하나의 쾌락 추구라고 할 때, 사랑에 애태우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되는 것이죠.

    3. 법칙과 사회성
    이 지점에서 "제멋대로의 법칙"을 내걸고 세계 일반이 이 법칙에 등을 돌리고 비난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자기 나름 "이것이 정의다"라는 기준을 세워놓고, 세상이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비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세상은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실제로 세상이 그렇지 못하니 세상은 불의로 가득차있다,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이죠. 이 맥락에서 정의의 기사 내지는 권선징악을 연결시킨 것입니다. 쾌락에서 자만으로, 자만에서 자기만의 정의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니 세상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정의에 매몰되어 자신만이 의로운 사람인양 생각하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렇게 사회를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도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인 행위라는 것이죠. 만약 정말 사회성이 없다면 자신에 맞서 있는 세상에, 타인들에 정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질 것도 없고, 더 나아가 그들을 비난하고 말고 할 이유도 없을테니까요. 애초에 자신의 정의를 세계/타인에 투사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이라는 의미입니다.
    219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2-05 04:43:57 0 삭제
    우월감이나 교만보다는 지루함과 권태가 더 큰 것 같군요. 교만은 어느 정도 열정을 동반하니까요. 냉소도 열정을 동반합니다. 열정 혹은 의욕의 부재는 물론 유사한 측면은 있을지언정 교만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것이죠.
    218 우유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 [새창] 2014-02-05 04:40:42 0 삭제
    하나 더 첨언하자면 "우유 섭취가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해가 된다"는 것과 "우유는 본디 송아지의 것이니 송아지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실용주의적이고 후자는 의무주의적이죠. 이것도 섞여버리면 논변의 초점이 흐려집니다.
    217 우유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 [새창] 2014-02-05 04:39:22 0 삭제
    "우유를 반대할거면 육식을 비롯해 다른 것들도 모두 반대할 것이냐?" 라는 식의 비판이 많이 보이는데, 분명히 유효한데가 있는 비판이지만 그 비판의 핵심이 잘 소통이 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두 가지 논점이 섞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유를 반대하는 이유가 A라고 할 때, 다음의 두 가지 논점이 있습니다.
    1. A가 정말 우유를 반대할 이유가 되느냐?
    2. A가 우유를 반대할만한 이유라고 할 때, A가 육식을 비롯한 다른 문명의 산물에도 적용되지는 않는가?

    1에서 출발할 때, 1에서 A가 어느 정도 정당한 근거라고 일단 받아들여야 2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A가 애초에 정당한 근거가 아니라면 2로 넘어갈 일이 없습니다.
    이 때 1은 A가 그 자체로 정당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유 외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것은 논점을 이탈하는 것이 되죠.

    반면, 1의 답을 보류하고 2를 먼저 논하는 경우도 가능합니다.
    이 때는 A가 그 자체로 정당한 근거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A가 어느 정도의 강도/극단성을 가진 논변인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2에 대해 답변할 때, 만약 A를 정당한 근거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문명을 전부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제 이러한 2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1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A의 정당성을 A 그 자체를 두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A의 실질적/실용적 의미를 두고 논하는 것이죠.

    1을 먼저 답변하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칸트식의 윤리관 - 원칙주의나 의무주의 - 으로 칭해지는 관점이고,
    2를 먼저 답변하려는 것은 흔히 말하는 공리주의/실용주의적인 관점입니다.

    이것을 조금 깔끔하게 구분하고 어떤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인지 - 1을 먼저 답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1을 일단 보류하고 2를 답변하는 것인지 - 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216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2-03 00:59:50 0 삭제
    사랑은 무조건 선이고 폭력은 무조건 악이라고 생각하시는건가요? 폭력적인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것은 왜 허용되어서는 안됩니까? 또한 성욕은 무조건 악은 아닐텐데요. 집착하는 사랑에서 비롯된 스토킹은 어떻습니까?
    215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2-02 21:06:20 0 삭제
    괜찮은 분석들이 있지만 대안으로 제시된 방안은 크게 회의가 듭니다. 고립화를 더 심화시키고, 엘리트주의로 빠지면서도 무책임한 이미추어리즘의 합리화라는 역설적 양면을 지니게 되며, 또 결정적으로 그러한 기구를 유지할만한 재원 확보는 고려되어 있지 않군요. 결국 이런 측면들을 보완하려다 보면 철학 단과대학과 유사한 구조와 형태를 갖추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애초에 대학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수뇌부가 철학을 지지하는 새로운 대학을 새로 만드려는 시도였다는 것이죠. 결국 핵심은 철학의 가치를 몰라주는 대학 지도부에 대한 불만인 것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재원의 부재입니다. 거액을 기부하는 스폰서를 구해야만 성립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또 어떤 거부의 재단에 종속되는거죠. 이 대안은 쉽게 말해 철학자들 입맛에 맞는 대학을 만들어보자는 얘기인겁니다.
    214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2-02 20:58:28 0 삭제
    글쓴이가 혼동하고 있는 포인트는 사실 지극히 단순합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말로 외도를 묘사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정당화를 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생각해볼 논점은 두가지입니다.
    1.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해서 그것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고 할 수 있는지? 누군가에게 분노를 느껴 모욕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나 성욕을 느껴 겁탈하는 일 또한 자연스러운 욕구의 발로라고 얼마든지 말해볼 수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허용되어야 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단지 감정이나 욕구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만으로는 허용되어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2. 자연스러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결혼 후에도 다른 사람과 연애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결혼제도의 배타성의 근간이 되는 소유욕, 안정에 대한 욕구, 질투심, 책임감, 헌신, 신의, 충실함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있는지? 만약 둘다 자연스럽다면 애초에 이는 자연스러운 감정끼리 서로 투쟁하고 경쟁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 중 외도의 연애감정만 존중할 근거는 없죠. 하지만 결혼제도 쪽을 보다 존중할 근거는 다양하게 있습니다. 물론 외도의 연애감정도 완전히 억압만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혼이라는 제도도 있죠.
    213 '인문학의 자기계발서화'가 무엇이고,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새창] 2014-01-29 21:35:44 0 삭제
    강당철학은 강단철학을 오인하신 것 같군요. 강단철학과 자기계발서화는 서로 좀 다른 것들이긴 한데 둘 다 철학의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참되게 구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곤 합니다. 물론 다소 결벽증 내지는 순혈주의, 순수주의적인 아집에서 나오는 비판이라고 또 역으로 비판 받을 수도 있구요.
    212 평소에 쓰던 글과 다른 글이지만, 철학게시판 쪽에는 아무래도 서양철학에 [새창] 2014-01-29 21:32:20 0 삭제
    서양철학도 직접 들여다보면 생각만큼 합리적이지만은 않고 동양철학도 직접 들여다보면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동양에는 과학적 사고나 논리적 사고가 없었다는 식의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는 지나치게 서구중심적-유럽중심적인 역사관으로 동양을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물리학으로 과거의 서구 자연과학 -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갈 것도 없이 - 을 보면 비과학적/비합리적인 정도는 주역보다 전혀 나을게 없습니다. 실제로 춘추전국시대면 소크라테스를 전후한 고대철학의 시대인데, 엠페도클레스나 데모크리토스를 보면 주역과 같은 동양사상과 합치하는 부분이 있을뿐더러 오히려 주역에 비하면 한참 미약하죠.
    211 중독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요? [새창] 2014-01-28 02:31:06 1 삭제
    중독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느냐, 라는 문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중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중독을 그 중독의 대상에게 완전히 주권을 빼앗기고 종속되는 것, 다시 말해 그 대상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말해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자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주권을 자기 자신이 아닌 대상에게 완전히 빼앗긴 상태, 자신이 아닌 외부의 무엇의 노예가 되어버린 상태를 행복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느냐? 만약 행복에 자립성과 자유가 필수적이라고 본다면 중독을 통해 행복해질 수는 없다고 말하게 되겠죠.

    마찬가지로 쾌락과 행복의 구분도 행복을 특정하게 정의하는데서 비롯되는 구분입니다.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학파 등에서 쾌락과 구분되는 행복의 정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에서는 쾌락이 곧 행복의 본질로 설명되기 때문에 그러한 구분이 좀 다른 형태로 나타나죠.
    210 "지능"이란? 인공지능의 가능성은? [새창] 2014-01-27 03:18:23 0 삭제
    엄밀하게 말해서 데이터의 양만으로 지능을 구성할 수 없습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1. 실질적으로 보통의 사람은 현재의 빅 데이터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양의 데이터를 경험하고 보유하고 있음에도 통상적인 수준의 지능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즉, 데이터의 압도적인 양적 증가는 지능 구성의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2. 반면 보통의 사람을 한참 능가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보유한 어떤 컴퓨터 시스템도 아직까지는 모든 측면에서 인간 수준의 지능을 구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데이터의 압도적인 양적 증가는 지능 구성의 충분조건 역시 아닙니다.

    데이터량과 지능의 구성, 더 정확히는 데이터와 지능의 구성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점은 물론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단순한 양적 증가만 이루어진다고 해서 인간지능에 준하는 인공지능이 구성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위와 같은 이유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양적인 차원이 아닌 질적인 차원의 개발이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러한 질적인 차원이 바로 인문학, 철학 등등으로 소급되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학이나 컴퓨터 과학, 전산학의 알고리듬 등등도 모두 질적인 차원에 해당합니다. 이를테면 데이터가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패턴이 드러날 것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그 주체가 패턴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 전제하고 있으며, 이 주체가 컴퓨터에 해당하는 경우 컴퓨터에 그러한 패턴 인식을 구현하는 것은 전산 알고리즘, 즉 질적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 사고의 모든 질적인 패턴을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패턴 자체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죠. 어린 아이가 학습을 하는 과정과 비교하자면, 그 학습의 내용을 컴퓨터에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가능케 하는 "학습 능력"을 프로그래밍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하기 위해선 인간의 "학습 능력"이라는 것 자체를 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파악이라는 것이 뜬구름 잡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전산 알고리즘/프로그래밍으로 번역/구현될 수 있는 형식, 다시 말해서 논리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의 학습 능력을 논리학 기호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먼저 인간의 학습 능력을 논리학적 언어로 파악하고, 그 내용을 컴퓨터에 구현하고, 그 다음에 컴퓨터는 그 구현된 능력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스마트폰 키보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자동고침/순간검색 등등은 이러한 "학습 능력" 자체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전반적 언어능력을 전부 구현한 것과는 거리가 멀으나, 인간의 언어인지/학습/활용 능력의 일부를 효과적으로 구현한 알고리즘이라는 것이죠. 그 "효과"의 정도는 실제로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인간이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지능적이라고 느끼는지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이구요. 이 측정 방식은 기본적으로 앨런 튜링의 튜링 테스트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209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1-26 00:04:56 0 삭제
    http://ko.wikipedia.org/wiki/%ED%8A%9C%EB%A7%81_%ED%85%8C%EC%8A%A4%ED%8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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