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작품 자체와 크게 관계없는 논란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셔서 오유 연재를 그만 두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증 문제는 역사를 소재로 하는 이상 논란을 피해기기가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렇게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공자 수준의 역사 지식을 갖추고 작품을 창작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작가님께서 예로 드신 왕의 남자나 광해나 조선명탐정 같은 작품들도 역사적으로 자세히 따져 들어가면 고증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문화예술 작품을 떠나 심지어 한국학 관련 논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과거 사실을 온전히 밝혀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결코 복원해낼 수 없는 지나간 과거일 뿐입니다. 그런 작품 외적인 것들로 작품 내적인 요소들이 평가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작품은 작품 내에서 말이 되면 그만이고, 그것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으로 좋은 작품입니다. 조선후기 정조대를 모티프로 한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실제 조선 정조대를 기준으로 논단해서는 안되지요. 아직 본 회차가 많지 않기는 하지만 저는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보고싶네요 ^^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 관련 지식을 가진 많은 분들의 고견을 경청하는 것은 물론 좋겠지만, 혹 자신의 지식을 뽐내면서 '역사 왜곡'같은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대응하시는건 피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 대한 대응은 강가에 걸린 입수금지 표지판과 같은 차원에서 '본 작품은 실제 역사적인 사실과는 무관한 창작물임을 밝힙니다' 같은 안내문 한줄이면 충분할 것 같네요.
저도 어려서 한참 어렵던 시절에 어머니 손잡고 집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족발집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차마 사달라고는 못하고 '맛있는 냄새난다' 한마디가 새어나왔어요. 어머니가 족발집 앞에서 한참 고민하시다가 저를 데리고 들어가서 족발 오천원 어치만 달라고 하시더군요. 아마 당시에 족발 소짜도 만얼마는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먹은 족발이 제 생애 처음 먹은 족발이었고 이제 스물 아홉이 되도록 그때 그 족발보다 맛있는 족발은 먹어본 적이 없네요. 당신은 원래 비위가 약해서 족발같은거 못드신다고 하신 어머니 말을 그냥 믿고, 한접시를 혼자 다 먹은 철없던 제가 지금까지도 밉고, 다 먹고 꼬깃거리는 오천원을 내시던 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덕분에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네요. 집에 전화좀 해야겠습니다.
세대가 달라지면 언어도 바뀝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와 우리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우리 자식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와 우리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년을 주기로 세대와 함께 언어도 교체되는 것이고, 모든 번역도 30년을 주기로 재번역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당장 우리가 1980년대의 출간물을 보면 위화감을 느끼고 1950년대의 출간물을 보면 언어의 표현관습과 어휘들이 거의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 세대까지는 동시대인이기 때문에 동일한 언어체계 안에서 사고하고, 또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당장 90년에서 100년 전의 언어사용 실태만 보더라도 현대 한국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대적으로 윤문하지 않은 일제강점기 소설들을 보면 어찌 읽어내려갈 수는 있지만, 그 당시의 언어적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게 됩니다.
하물며 조선시대의 언어는 어떨까요? 오늘날의 한국은 서구 근대를 기준으로 나라를 완전히 재구성했고, 현대 한국인들은 서구언어를 메이지시대 일본어로 번역한 언어를 다시 중역한 언어로 재구성된 언어를 사용하고있고, 이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합니다. 조선시대는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진 시대로, 사용하는 어휘, 문법, 관습, 배경지식, 문화적 맥락이 완전히 다릅니다. 따라서 현대인은 조선시대로 돌아가더라도, 조선시대의 어느 계층의 인물과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동시대의 미국인과 의사소통이 원활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구려, 백제, 신라라면 어떨까요? 혈통이 이어져있더라도, 언어는 생각보다 금방 달라집니다. 특히 한반도처럼 문화적 맥락이 수차례 급변한 문화권에 속한 경우라면 그 변화는 더욱 급격합니다. 우리는 아마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사용한 언어의 단 1%도 사용하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어라는 것은 권력과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지배계층의 언어가 피지배계층의 언어를 통제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통일왕조를 세차례나 거쳤고,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대한민국까지 지배계급의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져왔습니다. 당연히 옛 삼국시대의 언어 요소를 보존하지 못할 수 밖에 없지요.
삼국시대의 각 나라들의 경우에도, 지배계층의 성격이 매우 다르고, 모두 오랜 시기동안 번영했던 나라들이기 때문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도 모두 한문을 사용했고 나라간의 교류도 활발했을 것이므로, 뭔가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야 있겠죠. 하지만 그것과 현대 한국어의 방언과는 애초에 경우가 다르고, 아마 외국어를 통역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당대의 자료들이 충분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면모를 온전히 확인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고, 영원한 미지로 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