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부의 시작은 암기에서 시작합니다. 우선 자기 손에 가지고 있는 조각들이 많이 있어야 다양한 모습으로 꿰어볼 수 있듯이, 암기를 선행하지 않은 이해와 습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우는 걸 먼저 시도하시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원글님이 토로하시는 문제가 뭔지 짐작은 갑니다. 언어학이나 인지과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로 나타내는데 한계가 있겠지만, 결국 관건은,
어떤 언어의 처리 능력이 뇌에 얼마나 내재화 (internalization) 이 되있느냐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언어를 계층으로 대략 나타내자면 lexical (어휘) -> syntax (구문조합) -> semantic (의미체계) 순으로 올라갑니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개념 - 대략 그림이라고 하죠 - 을 언어라는 체계를 통해 표현할 때, 저 세가지 계층을 통해서 우리는 의미를 전달하고, 전달 받습니다. 문제는 언어를 배울 때, 저 세가지 계층을 물샐틈 없이 갖춘다는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적용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특히나 이미 다른 언어 체계라는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 그걸 차용해서 어떻게든 의미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급조한 방안 (ad-hoc solution 또는 stopgap 이라고 할 수 있죠)으로 표현하게 되면, 원래 "그림"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림이라는 불리는 말랑말랑한 찰흙을 언어라는 틀에 넣고 모양을 만드는데, 영어는 삼각 기둥을 만들고, 한국어는 원통을 만듭니다. 만약 어느 한 틀을 넣어서 나온 모양을 다시 다른 틀에 넣어서 모양을 바꾸려고 하면, 찰흙이 모자라든지, 아니면 깎여나가는 찰흙이 존재하구요. 저는 이게 보통 말하는 "lost in translation", 번역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최대한 외국어로 언어 체계를 계속 연습해서 다른 언어를 차용하려는 무의식적인 필요성을 애초에 차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피나게 연습해야 한다는 거죠.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말이 전 사실 크게 공감가는데, 제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됐을때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습하느라 정말 고생했구요. 하지만 연습하다보면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80%까지는 영어로만 생각하는 버릇이 길러집니다. 그걸로도 살기 충분할 뿐더러, 영어로도 논쟁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관심이 있다면 psycholinguistics, language acquisition, bilingual bilateralization, language familiarity effect 등의 키워드로 찾아보면 재밌는 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솔한 글 감사합니다. 이런 글이 정말 좋은 글이지요. 저한테는 공감이 많이 되는 글입니다.
미국은 우리 나라처럼 겸양의 미덕이나 자숙하는 모습을 가지기 않기 때문에, 어떨때는 정말 뻔뻔하게 사는 것이 권장된다고 느껴지는 때도 있죠. 특히나 그런 모습이 조직 구성을 할 때 많이 나타납니다. 같은 문화권 애들끼리 뭉치는 경우가 많고,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아주 당당하게 영어로 디펜스 하는 것을 카레 사람들이나 춘장 사람들이 정말 잘합니다. 그럴 때 언어가 정말 중요한 거 같습니다. 물론, 혼자서 일을 할 때는 언어의 중요성이 떨어지는데, 조직을 구성하려면 결국에는 리소스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upper management와 "거래"를 터야하는데 이건 결국 언어로 수렴되는 문제거든요.
카레나 춘장이나 그들은 인구가 상상 이상으로 많고, 경쟁이 정말 치열한 곳에서 오기 때문에 그 쪽에서 곧바로 온 애들은 굉장히 잘 납작 엎드립니다. 삐딱하게 보자면, 아시아의 "악습"을 미국으로 수입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미국 토종들도 보면, 잘 엎드리는 애들은 잘 엎드려요 ㅎㅎ 대다수는 아닌게 함정이긴 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쓰면, 미국에 오신 한국 분들은 보통 한국에서 "서로 끌어주는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반감을 갖고 오시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cronyism을 피해서 왔는데 여기서 까지 그 꼴 봐야 하느냐" 라는 생각이 있으신 경우가 많아서, 보통 어떤 사람을 통해 라인을 결성하는걸 기본적으로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해요. 물론 개개인의 능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단계나 직종에서는 상당한 경지에 오르시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만, 조직 단계라는 문제에 직면하면 많은 분들이 어려워 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이건 언어만의 문제는 아닌거 같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미국에서 tech 쪽은 전통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꾸준이 유입되는 곳이고, 점점 그 share를 늘려갔기 때문에, 그 위에 있는 management는 점점 외국인 그룹에게 맡기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흑묘백묘" 같이, 누구든 product delivery 잘하고 loyalty를 보이는 그룹에게 한 자리 주고 냅두는 거죠. 로마 제국으로 비유를 든다면, 속주는 이민족에게 맡겨도 상관 없다는 뜻이겠죠. 대신 management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미국인 (백인, 아인, 흑인 막론하고) 중심이고, whitewash를 암암리에 지향합니다 (물론 예전보다는 줄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