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날 며칠을 울고, 소리치고 미친듯이 감정을 토해내서야 잠들었다. 결국 죽지 못하고 오늘도 눈을 뜬다. 그렇게 허기진 감정을 채우려 다시 청소를 한다. 그 흔적, 그 냄새,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닦고, 지우고, 잊는다. 물어 뜯은 손톱, 그 아래 생긴 물집이 아플때까지 닦고, 지우고, 잊는다. 하지만 아직 빠지지 않은 기억이 송곳되어 울고, 소리치고 감정을 토해낸다. 눈물에 일그러진 빛이 안개되어 이 기억을 가릴때까지.
활을 잡은 손이 흠뻑 젖을 정도로 긴장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긴장을 풀기 위해 긍적적인 말을 내뱉었다. "조용히!" "옙." 하지만 혼났다. "저기 보이는 빨간 열매가 놈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금방 열매를 따먹기 위해 나타날거야."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작은 사슴 한마리가 수풀속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열매를 따먹기 위해 나무 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신중하게 노여라. 다리나 몸통이 아닌 목을 노려야해." "옙." 손끝이 창백해 질정도로 힘을 꽉 쥐고 활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열매를 따먹기 위해 목을 쭉 빼고 들어 올린 사슴을 향해 시위를 놓았다. -팽! 쉬이익! -푸르르르 "으앗!" 그러나 화살은 사슴을 지나쳐 과일나무에 꽂혀버렸다. 사슴이 놀라서 도망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불합격이다." "아- 안돼!"
요즘 같은 시대에는 뒷산에 올라 봐야 끓여먹을 칡 뿌리 하나 얻지 못한다. 그러니 큰 아이의 나이를 속여 배급을 더 받아야 우리 가족이 굶주리지 않는다. 큰 아이는 젓가락 마냥 빼빼 마랐고,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하나는 작았기에 미군 양반들의 눈은 쉽게 속일 수 있었다. 아이는 가루우유 한줌에 방긋 웃기에 등에 업힌 작은 아이가 마주 옹알거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작은 바람을 하늘님에게 빌어본다. 이 나라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어요." 그녀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잘 미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작에 나를 알아본것이다. "얼마나 남아있나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을 말해주었다. "저는 어디로 가는건가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나는 생의 진동이 멈출때 영혼을 옮기는 집배원에 불과할뿐이다. "제게 말해 줄 수 없는건가요?" 감을 눈을 뜨며 그녀가 다시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생의 진동이 멈출때까지 외롭지 않도록 해주는것이 내가 그녀를 위해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