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칼을 휘두르는것에는 손바닥과 손목이 기본이 되서 몇가지 손가락들이 필수로 칼을 잡고 그중에 몇개의 손가락은 필요에 따라 거들면 된다 라고 한것이죠" 이렇게 말씀하신 걸 전 분명히 틀.렸.다.고 한 것입니다. 애초에 비유를 하신 건 님이시죠.
2. 애초에 악진님의 말씀은 이거였죠. "30편이면 학위논문 쓰는 사람도 볼까말까 한 분량이다-_-;;;;;;;;;;;;;;;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논문30편 드립이 얼마나 허황된지 바로 알 수 있는데"
이 말은 "그 정도로 안 읽는다"가 아니라 "그 정도로 논문 30편 읽는 게 어렵다"입니다. 즉, 님이 쓴
"마찬가지로 학위논문쓸때에 정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좀 연령층이 되는 사람들이 그렇고 오히려 늦게 배운사람들이 더 그렇고... 무슨 논문 30편 읽는걸 말도안되는것처럼 말하는데 실제로 정말 30편이상 정독해서 읽고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작품 하나 남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 부분은 악진님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악진님의 말, "학위논문 쓸 떄도 볼까말까할 분량이다"는 것에 찬성하는, 오히려 그 근거가 되는 얘기인 것이죠. 두 분이 같은 얘기를 하고 계신 거네요. 작성한 분이 말씀하신 논문 30편이라는 건 악진님의 말씀처럼 그만큼 "허황된" 얘기다는 거라는 걸요. 하긴 님도 이미 작성자 분의 30편은 그냥 비꼬기 위한 용도라고 하셨으니 별 상관 없겠네요.
3.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30편을 첫줄부터 끝까지 읽는 게 병신이라는 것은 님이 고의든 실수든 잘 못 쓴 거라는 걸 인정하시는 건가요? 님이 말씀하신 "실제로 정말 30편이상 정독해서 읽고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작품 하나 남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하던 사람들"은 30편은 기본으로 열심히 읽을 테니까요.
1. 그럼 작성자 분과 악진님과 모두 연결된 얘기도 해 볼까요? 당장 님은 제가 반박한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을 못 하고 있는데요? 비유를 왜 그리 드셨는지는 잘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지금 님이 "칼은 저렇게 휘두르는 거다"고 하는 것에 대해 "칼 저렇게 휘두르는 게 아니다"고 하는 겁니다. 더 쉽게 비유하자면 님의 "칼은 손가락 하나로도 쓸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저는 "그건 절대 아님"이라고 하는 거구요.
2. 그렇다면 다른 거 필요 없네요. "정독해야할 책과 기타 인용해서 쓸 책이나 논문을 통틀어서 한 말이 다른 문장에서도 뻔히 드러나있는데 " 이 부분을 다음 댓글에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님이 위에서 한 댓글 중에 통틀어서 말 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옮겨주시면 됩니다.
1. 그럼 작성자 분과 악진님과 모두 연결된 얘기도 해 볼까요? 당장 님은 제가 반박한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을 못 하고 있는데요? 비유를 왜 그리 드셨는지는 잘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지금 님이 "칼은 저렇게 휘두르는 거다"고 하는 것에 대해 "칼 저렇게 휘두르는 게 아니다"고 하는 겁니다. 더 쉽게 비유하자면 님의 "칼은 손가락 하나로도 쓸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저는 "그건 절대 아님"이라고 하는 거구요.
2. 그렇다면 다른 거 필요 없네요. "정독해야할 책과 기타 인용해서 쓸 책이나 논문을 통틀어서 한 말이 다른 문장에서도 뻔히 드러나있는데 " 이 부분을 다음 댓글에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님이 위에서 한 댓글 중에 통틀어서 말 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옮겨주시면 됩니다.
물론 그러지 않았죠. 그렇기에 저 12개는 기본적으로 내용을 외울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줄 정도로 제대로 읽었습니다. 당연히 읽었어야 하는 것이게 읽었습니다. 아 물론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니 내세울 건 아닙니다만, 당연히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죠. 당연히 읽었어야 하는 거니까요. 따 오긴 위해서는요.
물론 그러지 않았죠. 그렇기에 저 12개는 기본적으로 내용을 외울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줄 정도로 제대로 읽었습니다. 당연히 읽었어야 하는 것이게 읽었습니다. 아 물론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니 내세울 건 아닙니다만, 당연히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죠. 당연히 읽었어야 하는 거니까요. 따 오긴 위해서는요.
원균옹호론의 역사는 대략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시작됐습니다. 아마 이재범의 [원균정론]일 겁니다. 이건 90년대 중반에 [원균을 위한 변명]이라는, 좀 더 읽기 쉬워진(한자에 독음을 다는 등) 책으로 다시 나옵니다. 이후 이걸 그대로 베껴서 나온 소설이 고정욱의 [원균, 그리고 원균]입니다 (최근 원균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죠) 이후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이 나옵니다.
을파소님 블로그에 대부분 있으니, 저 중 [원균을 위한 변명]에도 왜곡된 부분이 있습니다.
가령 그 책에서는 원균이 이순신과 따로 장계를 올린 것에 대한 근거로 실록의 기사를 근거로 삼는데, 그 부분은 이렇습니다. "이번에 원균이 올린 장계는 저번에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승리한 것과 같은..." 근데 그 책에서는 여기에 딱 하나를 집어 넣었죠. "이번에 원균이 올린 장계는 저번에 이순신이 한산도 (옥포의 오기) 에서 승리한 것과 같은..."
이 시기는 딱 한산도 대첩 이후입니다. 왜곡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죠. 하지만 그 책이 나올 당시에는 실록을 일반인이 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책에서 저렇게 적어 놓으면 아 옥포해전이구나 하죠. 실제 한산도 대첩 이전에 이미 이운룡, 우치적 등 경상우수영 소속 장수들이 포상을 받았습니다. 원균이 한산도대첩 때에 가서야 이순신이 따로 장계를 올린 것을 알아서 장계를 올렸을 가능성은 제로죠.
우선 전체적으로 반박한 거 보시려면 이글루스 을파소님의 블로그를 추천합니다. http://history21.egloos.com/category/%EC%9D%B4%EC%88%9C%EC%8B%A0%2F%EC%9E%84%EC%A7%84%EC%99%9C%EB%9E%80/page/1 반박을 위해서는 정말 하나하나 잘 정리돼 있죠.
이번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 나라 장사는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잔적의 머리를 얻었을 뿐으로 일찍이 제 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는 바다에서 적군을 섬멸하였고, 권율은 행주에서 승첩을 거두어 약간 나은 편이다. 그리고 중국 군대가 나오게 된 연유를 논하자면 모두가 호종한 여러 신하들이 어려운 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따라 의주까지 가서 중국에 호소하였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왜적을 토벌하고 강토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별도로 훈명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호종한 사람을 녹훈할 적에 아울러 녹훈하도록 말했었다. 그러나 이는 대신들이 의논하여 처리하는 데 달렸다"
라고 선조가 말했듯이 조선군에 공 있는 사람은 이순신, 권율, 원균 세 사람이고 선무공신의 세 배나 되는 호종공신, 선조 곁을 줄줄이 따른 애들이 공이 더 큰 겁니다. 그 이순신, 권율, 원균조차도 선조 뒤를 따른 내시 한 명의 공도 안 되며, 명군보다도 공이 적은 게 되죠.
선생이라고 역사 공부 열심히 하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거기는 역사 자체에 대한 탐구, 연구가 아닌 역사를 학생들에게 잘 교육하는 법을 배우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