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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90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비_
추천 : 20
조회수 : 3587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6/08/21 13:42:11
울음으로 삶을 토해내는 것들이 있다.
예컨데 쓰름매미처럼.
그것들은 기를 쓰고 바람에 소리를 얹는다.
오늘 이곳 바람이 내일 저곳에 있어,
불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제 울음도 바람따라 영영 세상을 유랑하도록.
눈부신 생은 한 철이겠다만
그 시절 처절하게 만개한 숨으로
한시도 쉬이 산 일생이 아니었음을 주장하듯
울음은 듣는 이의 온 신경을 건드린다.
그처럼 들을 수 있는 모든 생명의 기억엔
여름 매미 존재가 강렬하다.
또 진동처럼 우는 무당개구리도.
불쾌함의 잔상은
그러니까 진상처럼 오래 머물러
사람을 쥐어짠다.
처절한 것들의 울음소리는
여름 태양의 묵직함과
습도 높은 날의 물컹함까지 뒤섞일 때
사람을 때로 미치게 만든다.
그런 날이 있다.
그래서 다 잡아 찢어발기고픈.
-
숲의 여름은 싱그럽고
숲의 여름은 징그럽다.
온갖 것들이 무성하여
모든 것들이 과하다.
강원도 양구 깊은 숲의 한 중대 막사.
그 여름 막사 주변에선
무당개구리가 연대를 이루었더랬다.
울어대는 무당개구리 소리는
꼴베기와 진지공사와 제초작업과
대민지원과 유격훈련과 행군과
경계근무와 얼차려와 주말작업에
지친 장병들 귀에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잠을 쫒는 귀신이 목을 비틀어도
고된 일과에 지쳐 죽듯 자는 장병들이었지만,
무당개구리 연대의 송곳합창곡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잠을 놓쳤다.
한 여름 아침이면 퀭한 눈으로,
건전지가 거의 다 된 듀라셀 토끼처럼,
맥없는 도수체조로 아침을 시작하는
장병들 모습 보는 것이 흔했다.
차라리 영창에 가면 잠을 푹 잘 수 있으려나.
차마 그런 생각 마저 드는지
유독 윗선으로부터의 집합과 얼차려가 잦기도 했다.
무당개구리 세력은 무궁한 번영을 거듭하여
기어이 산자락 아래 대대까지,
도심지 연대까지 뻗어나갔는지
어느날 상부지침으로
무당개구리 소탕명령이 하달됐다.
오늘부터 양일간 막사 주변을 돌며
보이는 무당개구리는 전부 잡아들여
죽이라는 행보관 명령에 짓던
장병들 표정이란!
분노와 회한과 두려움과 떨림과
복수를 기대하는 환희와
지난 핍박의 날을 되새기는 처연함과
언제 그걸 다 잡지 하는 막연함
따위가 뒤섞여
보통 비범을 뛰어넘는 비장마저 느껴졌다.
-
그리하여 모든 중대원들이
혈안으로 무당 개구리를 잡아들였다.
1m가량 되는 주황색 마대자루가
매 시간이 멀다하고 꽉꽉 들어찼다.
그 안에서 무당개구리 수백마리가 뒤섞여
한시라도 제 울음을 더 내보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막사 한켠엔 무당개구리 화형장이 마련되어
연신 타닥 타닥 울음과 존재를 증발시켰다.
행보관은 가장 많은 마대를 채워오는 분대에
포상외박을 내리겠다며
무당개구리 사냥 시합에 열기를 더 했다.
무당 개구리 살점과
마대자루 섬유가 한데 녹아들며
풍기는 냄새는
언뜻 오븐에 닭을 굽는 냄새와도 비슷했다.
매캐한 연기와 불쾌한 타닥거림 속에서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을 정도로.
그 냄새를 인지한 순간부터
종일 속이 메슥거렸다.
냄새에 요기를 느꼈다는 사실이 더 역겨웠다.
나는 겨우 토악질을 참았다.
그러나 다음 날.
무당개구리 사냥꾼들의 광기가
최고조에 다다른 시점에서
나는 더 이상 구역질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소대 실세이자 옆분대 분대장이었던 최.
최는 무당개구리가 한가득 아우성치는
마대자루 더미를 깔고 앉아
투둑투둑 아래로부터 터져가는
개구리 소리를 즐겼다.
그러다 문득 영악한 입꼬리를 올려
무언가 엉뚱한 짓을 시작하겠단 신호를 보냈다.
- 야구하자, 야! 구!
최는 쌓인 마대자루 가장 윗단 하나를
번쩍 들어 세로로 세웠다.
소대원들 쉬고 있는 그늘로 그것을
질질 끌고와서는 한껏 설레는 미소로
마대자루 매듭을 풀어 무당개구리 한 마리를 꺼냈다.
마대자루 바닥에 끌려오며 짓이겨진
무당개구리들이 곤죽으로 피를 뿜었다.
그러고는 최는,
씨발 나를 지목했다.
- 창용.
- 일병 안.창.용!
- 이거 주워서 저쪽으로 가!
- 예 알겠습니다!
나는 최가 가리키는 곳에 널브러진
판자하나를 주워 농구골대 아래 흙밭에 섰다.
- 글고 쥐돌이.
- 일병 쥐.돌! 찍찍!
- 창용 (- 일병 안.창.용!) 옆에 가서 앉아.
- 예 알겠습니다!
판자는 평범한 성인 남자 팔꿈치부터
검지끝 정도 길이였고 녹슨 못이
두어개쯤 달려있었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 자아, 와인드 업.
설마, 설마.
- 던진다 잘 쳐라.
설마, 설마, 설마.
당장이라도 설사가 나올 것 같았다.
여지없이 무당개구리는 날아왔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판자를 들어올리지도 못하고 자실했다.
군대도 사람사는 곳이라며, 씨발.
이어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그건 포수가 무당개구리를 받아
글러스삼은 박스 위에서 터지는 소리였다.
동시에 내 이마에 최가 던진 돌멩이가
명중하는 소리였다.
- 이 씨발라마. 치라 그랬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차마 최의 눈을 똑바로 볼 수는 없었다.
고개를 떨구고 나는 애원했다.
- 못하겠습니다...제발... 최병장님...
최의 눈동자에 순간 광기가 돌았다.
최는 마침 날 벼르고 있던 참이었기에.
지난 겨울 최는 쥐 한마리를 잡아
쥐덫에 끼인 그대로 둔 채
막사 밖 서리바람 속에 방치하고는,
매일 조금씩 라이터로 살을 지져 괴롭게 했었다.
쥐는 결국 육일만에 죽었는데
가져다 버리라는 걸 내가 흙에 묻어주다가
그만 최에게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뺨을 수차례 맞았건만
이후 최는 나를 점찍어 집요하게 꼬투리 잡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최의 타겟이 된거고.
최는 내 앞으로 달려들어 발길질을 가했다.
널브러진 나를 수십차례 밟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마대자루에 삽을 넣어 무당 개구리를 한가득 퍼냈다.
그러고는 내 전투복 상의 윗단
단추를 젖혀 개구리를 쏟아 부었다.
개구리가 가득 든 내 몸을 다시 밟기 시작했고
나를 감싼 개구리들이 투두둑 터져나갔다.
최는 다른 분대원들에게도 나를 밟도록 명령했다.
심지어 이병들에게까지.
최가 무서웠던 탓도 있겠지만
그 순간 악마를 내뿜는 기운에 모두가 압도당해
무엇에라도 홀린 듯 나와 옷 속의 무당개구리를 밟았다.
터지는 살점들이
내장기관들이
체액이
살갗위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온 몸이 뜨거웠다.
어떤 개체의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
비릿한 피 냄새가 콧 속 가득 들이찼다.
무언가 내 속에서 중요한 어떤것이
무당개구리들의 말캉한 몸통과 함께
무참히 터져나간 느낌이었다.
그 날, 홀로 보내진 욕실에서
늘러붙은 개구리 살점을 내 손으로 떼내며
수차례 소스라쳐야만 했다.
그러는동안에도 막사 뒤뜰,
욕실 창으로 보이는 농구장 한복판에선
무당개구리 야구가 한창이었다.
- 홈런! 역시 최병장님이십니다!
시원한 함성소리가
무당개구리 타는 연기를 따라 숲에 울려퍼졌다.
여름엔 역시 야구라고,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출처 보완 |
2016-08-22 03: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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