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캠프의 여성주의 이슈에 관한 유재일씨의 영상을 보았다.
정의당 메갈 사태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젊은 남성의 입장을 대변해주던 몇 안되던 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분이 풀어주는 이야기에서 배우는 점이 많아 좋았으며 그 관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이 분 말씀의 요지는, 진보진영에서 여성주의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으며 그건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적폐 그 자체인 보수를 지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 문제는 대선이 끝난 후 여성계를 상대로 따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 성향의 지지자라면 누구든 머리로는 100%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반복되는, 진보진영에 기생하는 여성계의 패악질로 인해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이번에도 대의를 위해 참으라고 하는 그의 결론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자라서 쪼잔하면 안되고 큰 그림을 고려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이제 없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데에는 80~90년대에 출생한 남성들이 살아오며 지난 수십 년간 지겹도록 교육(세뇌)받았던, 전통적인 성관념에 대한 여성계의 노오오오력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세뇌)라고 쓴 것은 그것을 교육이란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교육자도 아니고 이론적인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릇 교육이란 것은 편향되지 않고 공공선을 실현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단체들이 해 온 일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전통적인 성 역할 중에서 여성의 부담을 강요하는 문제에만 천착했을 뿐, 남성들이 지고 있는 책임과 부담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무관심했다. 아니, 적반하장으로 남성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이행하는 책임과 그에 따르는 자그마한 보상 마저도 타도의 대상으로 몰아 없애버리는 파렴치한 짓거리를 자행하고도 당당했다.
남자도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적 압력 때문에 감정 표현을 거세당하고 군대까지 다녀오면 불합리한 것에 대한 저항보다는 순응하는 법에 익숙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라지지 않은 전통적인 남성으로서의 책임감, 의무감 뿐만아니라 여성계의 지속적인 문화적 압력까지 감내했다. 대중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에 대해 교육을 하고 남성들에게 원죄의식을 강요했다. 학창시절부터 성 차별이라고는 단체기합을 받을 때 남성이 더 힘든 벌을 받은 것, 같이 싸웠는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더 잘못했다고 치부당한 것, 같은 등록금 내는 데 여성휴게실은 있고 남성휴게실은 없어 쉴 만한 곳도 별로 없던 것, 같은 등록금을 내는 데 총여학생회가 따로 있었던 것 등 무언가 이상하다 느낀 것들 뿐인데도. 그래도 감내했다. 무언가 남자라서 이득 보는 게 많겠지. 밤길을 다니면 나도 무섭지만 여성은 더 무서울 테니까 다른 길로 돌아가야지. 우리는 병역 의무가 있지만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하니까 당연한거지.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명절에 고통받는걸 봤으니까 항상 반성하고 들어줘야지. 우리는 커피 타 달라 시킨 적도 없고 시킬 생각도 없지만 그런 고통을 받고 있다니까 험지 근무 험지 출장은 남자가 해야지. 2년 먼저 입사한 동갑들은 나보다 상사지만 나는 2년치 호봉을 처음부터 먹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리고 메갈이란 게 나타났다. 우리가 일X충과 싸웠듯이, 이들도 당연히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은 그러나 우습게 빗나갔다. 대한민국의 여성단체들은 자랑스럽게 메갈을 품었다. 자칭 진보언론들은 페미니즘 투사로 그들을 포장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공부가 부족한 것이라는 일침과 함께. 근거조차 부실한 각종 통계자료를 끌어모아 아전인수를 일삼았지만 여성주의 투쟁이니 괜찮았다. 한남이니 X치니 독립투사까지 조롱했지만 미러링이니 괜찮았다. 심지어는 원내정당까지도 스스로 메갈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천명했다. 성별의 문제를 떠나 사람으로서 하면 안되는 것, 사회적인 허용선 조차도 여성주의 투쟁이란 명분 아래에선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남자도 사람이다. 최소한의 균형감과 상식조차 결여된 광기어린 집단에 열광하는 진보진영을 바라보며 비로소 집단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의를 위해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젠더 문제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양보와 지지를 보내던 그 젊은 남성들은 이제 별로 없을 것이다. 이미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어렴풋이 느끼던 사람들도 이제 문제의 실체를 명확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나 적폐 청산의 대의 따위를 들먹이지 마라. 이따위 상황에서도 덮어놓고 지지를 바란다는 것은 인면수심에 가깝다. 이 땅의 젊은 남성들이 계산기를 꺼내들게 되기까지는 이들을 샌드백 취급하며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해댄 잘난 진보꼰대들과 그에 빌붙어 기생하던 여성단체들의 공이 매우 크니까 말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진보진영이 아니면 누가 우리를 품어줄 것인가? 젊은 남녀 공히 왜곡된 분배구조와 부족한 사회정의 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니 그래도 지지해야 되지 않겠는가?"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자. 과거 이명박 정권의 부조리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이들에게 여성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나꼼수 비키니 사태" 자체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이 당시 진보진영에서 여성계에 대해서 대의명분을 생각하는 것이 부족하다며 인내와 이해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앗 뜨거!" 하면서 넙죽 엎드렸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번에 문재인 후보의 북한 응원단 자연미인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되기 무섭게 바로 저자세로 사과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발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부 총질도 마다하지 않는 꼴을 지겹도록 봐 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치인들의 향상된 자기검열과 쾌적한 정치팬질임을 남성들도 확실히 목도했다. 현실이 이럴진대, 여성할당제와 같은 제도적 역차별 소지가 다분한 정책이 우려되는 이 시점에서 남성들에게 대의를 위해 참으라고?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른바 "집지키는 개" 출신들은 이제 잘 안다. 언제나 충성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건 남은 찬밥과 멸시의 발길질 뿐이라는 것을. 그런 집은 이제 지켜주고 싶지 않다. 다른 집이 이장이 되는 한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이쪽이든 저쪽이든 학대받을 것은 자명하며 그곳에 우리 자리는 없을 테니까. 우리 선조가 따뜻한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고 금이야 옥이야 호사를 누렸다고 해서 지금 뒷마당에 사는 우리가 주먹질을 감내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난 세월 그들에게 배운 것처럼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야 멸치 한마리, 고기 한 덩이라도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는 가죽까지 벗길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