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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씨앗 [73가지 심리학 효과 소설, 두번째]
게시물ID : panic_911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비_
추천 : 19
조회수 : 148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10/12 02: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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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영이 타락하여 병에 걸렸다.

그런 고로, 어떤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될 수 없다.

병은 깊다. 매일만큼 더 깊어질 거다.

이 모두 그간의 신앙생활이 헐거웠기 때문이라.

이제라도 회개하여 용서받으라.

신이 많이 노하셨노라. 죽음을 피할 수 있으리란 장담은 못하겠다.

허나, 인간의 생은 죽는 순간 진정 시작되는 것.

영혼의 생은 끝이 없으니, 고통 역시 무한일지어라.

살고자 기도하지 말고 용서받고자 후회하라.

만일, 신이 자비를 베푼다면 너의 영은 천국으로 보상받으리.

감히 거스르지 마라. 조아리고 무릎 꿇어라.

기도하라.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

이 모두 너를 위함이니 서운하게 생각지 말고 부디 기도하라.     



여기까지, 엄마의 말들.

매일 말라가는 내 손 꼭 쥔 엄마는 구구절절 진심이다.    

 


제 몸 하나 몸 가누어 침상에서 내려오면 금세 풀썩 쓰러지는 내 몸을 휠체어에 얹고는, 줄로 꽁꽁 묶어 새벽마다 교회로 향하는 엄마였다. 빚진 돈으로 십일조를 내고 목사의 손을 꼭 잡는 엄마는 간절했다. 그건 빌어먹을, 모성이었다.



목사는 오전 내내 나를 꾸짖었다. 목사 말에 따르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었다. 심지어 태어나기도 전부터 죄가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조차 죄였다. 규율, 계명, 원죄, 따위들. 벌거벗은 철부지 남녀가 사과 하나 따먹은 것이 내 죄의 이유라면 나는 차라리 동물원 침팬지 우리에 절을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논리와 근거로써 반박했지만 그럴수록 내 죄만 더 늘어갔다. 목사 말이 길어져 묶인 내가 탈진에 가까워져 갈수록 엄마의 중얼거림은 빨라졌다. 엄마는 두 손 꼭 모아 허공에 지껄였다. 내겐 망언으로밖에 안 들리는 방언. 엄마 방언이 절정에 다를 때면 목사는 양 손으로 내 뺨을 쳤다. 그건 폭력 아닌 회개의 씨앗을 심는 거라고 말하면서. 만화책 등장인물들이 싸울 때 제 입으로 기술명 외치듯, 실제 소리 내며 회. 개. 의. 씨. 앗! 한 번 뺨에 글자 하나씩, 손바닥과 등을 교차시키며.     



흐름을 한 번 타면 그 행위들은 일면 외설적이기까지 했다. 속도가 빨라지고 소리가 높아지다 호흡이 거칠어지면, 엄마는 이내 방언을 신음처럼 내뱉었다. 달아오를수록 몇 대일 지도 모를 회개의 씨앗이 돈 세는 기계처럼 나를 후려 갈렸다. 그럴 때의 엄마와 목사가 내뿜는 광기란 정말 만화책 속 전투처럼 과장되어 있어서 감탄사와 느낌표, 강조선 따위가 허공에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방언 끝에 엄마는 반드시 울었고, 울기 직전 어김없이 교태 섞인 소리를 내질렀다. 엄마가 그 순간을 맞이할 때면, 목사는 날 패던 손을 거두어 한 동작에 털썩 무릎 꿇고 허공에 두 팔 벌렸다. 금세, 엄마 톤에 맞추어 목사의 울부짖음이 시작됐고, 두 사람의 호흡과 높은 소리가 섞여 교성처럼 예배당을 메웠다. 그 몸짓과 표정들은 오르가즘의 만끽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기도로 섹스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역겨운 신앙 포르노를 감상하는 동안 그래도 나는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적어도 그 날 두 사디스트를 위한 마조히스트로서의 역할은 끝난 거니까. 그러기 위해선 나도 어느 정도는 울어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를 되도록 크게 외치면서.   


   

나는 얼마나 더 이 짓을 계속해야 죽을 수 있을까?      



(2)



쇠한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병에 걸렸다.

그런 고로, 체계적인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병은 깊다. 매일만큼 깊어지도록 방치한 탓이다.

이 모두 그간 엄마의 신앙생활이 독실했기 때문이라.

이제라도 현실을 깨닫고 나를 살려주었으면.

진짜 신이 노하셨노라. 엄마의 신이 이단이란 사실을 장담한다.

허나, 인간의 믿음은 맹목적일 때 이성을 잃는다.

고집과 아집은 끝이 없으니, 고통 역시 무한일지어라.

우상에 기도하지 말고 용서할 테니 이제 나를 제발 구하라.

만일, 엄마가 자비를 베푼다면 나의 몸은 회복되고 비옥질지니.

감히 거스른다 말씀 마시라. 조아리라, 무릎 꿇으라 하지 마시라, 제발.

기도해도,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이 모두 부질없는 짓이거늘. 내 목숨이 그깟 사이비보다 하찮은가?

엄마, 너무 서운타. 나는 어디에 매달려야 하나?     



여기까지, 내 심정.

매일 말라가기 전, 건강했던 두 손으로 엄마 목을 졸랐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내 심정은 구구절절 진심이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침상에서 내려오면 내가 풀썩 쓰러지는 이유는 다리의 괴사 때문이다. 어느 날 다리에 혈관이 툭 튀어나온 걸 발견했을 때, 진즉 도망 나왔어야 했다. 엄마에게 끝까지 보이지 말고 혼자 병원에 갔어야 했다. 퉁퉁 붓기 시작한 다리가 어느새 울퉁불퉁해졌을 때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다 다리를 저미는 예리한 통증에 그대로 주저 않았다. 잘 벼른 칼날로 종아리를 포 뜨는 느낌이었다. 아픈 것보다 당황이 컸다. 이게 뭐지? 엎지른 물에 팬티까지 다 젖어 바지를 벗고 욕실로 향했다. 갈아입을 바지를 챙겨 들어가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뜨거운 물에 다리를 좀 담그니 한층 나았다. 내일은 돈을 빌려서라도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욕실을 나오다 그만, 현관문을 여는 엄마와 마주쳤다. 그때까지 필사적으로 숨기고 지낸 다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엄마는 경악하며 다그쳤다.     



그게 뭐니! 너... 너... 너 교회 제대로 안 나가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    


 

엄마는 내 어깨를 눌러 주저앉히고는 두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먼저, 목사. 아이가 사탄에 씌었어요. 다음, 담임. 아이가 열이 심해서 내일 학교를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모의고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통화 후 엄마는 바삐 짐을 챙겼다. 근거리 여행용 작은 캐리어에 옷 몇 벌과 세면도구를 담고, 성경책 두 종과 말씀 책 세 권, 찬송가 책 한 권, 큰 십자가에 작은 십자가가 박힌 이중 십자가 목걸이, 한자와 정체 모를 고대 문자들이 알알이 박힌 묵주를 옷 무더기 사이에 조심히 넣었다. 오래지 않아 목사와 청년 둘이 우리 집에 도착했고, 내게 속박복과 역병 의사 마스크를 씌웠다.     



전에 엄마 손에 이끌려 갔던 교회 지하실에서 두어 번 보아 알고 있는데 그건 엄마 종교의 공식 회개 복장이었다. 양초 냄새 가득한 지하실에는 평균 신장 성인 두 보폭 정도만한 방 일곱 개가 일 열로 있었는데, 그 안에 속박 옷과 역병 의사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돌로 된 의자에 한 명씩 묶여있었다. 문이 따로 없어서 사실 방이라기엔 그저 움푹 들어간 공간일 따름이었다.  



맞은편 벽에는 하얀 가운의 초등생 성가대 열댓 명이 일열 횡대로 방을 향해 찬송가를 불러댔다. 찬송이 끝나자 열 양쪽 끝에 대기 중이던 중년 남녀 여럿이 아이들 뒤로 가 자리 잡았다. 엄마도 그중 한 명이었고, 내가 아는 얼굴도 몇 있었다. 짐작으로는 모두 집사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성경책을 펼쳐 같은 구절을 낭독했다. 그건 하나님보다 높은 곳에 계시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신다는, 우주 신의 말씀이었다. 또 우리가 속한 우주는 셀 수 없이 많은 우주의 하나라서 우주 넘어온 우주를 총괄하는 대 우주신이 있다는 게 엄마 종교의 교리다. 기도는 그래서, 회복의 우주라 불리는 곳으로부터 치료의 힘을 끌어오는 거라고.


낭독을 마친 후에는 권사들로 짐작되는 일곱 중년 남성이 각 방으로 한 명씩 들어가 마스크 쓴 사람들 옆에 섰다. 마침내 목사가 일곱 방의 중앙에 서서 기도를 시작했다. 권사들은 성수를 뿌리고 마스크 쓴 사람들의 손을 꼭 붙잡고서 각자 무어라 중얼거렸다. 엄마가 돈을 바친 덕에 성가대에 들 예정이었던 나는 그 날 이후로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3년간, 매 달 1회 그 광경을 보아야만 했다. 기도가 절정에 달하기 시작하면 성가대 어린이들은 밖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이후 진행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 내가 거기 앉혀지기 전까진 말이다.



(3) 



나는 매일 교회에 간다. 매일 뺨을 맞는다. 매달 1번 눅눅한 지하실에서 상처 부위를 짓밟힌다. 병은 정말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시체에 가까워질수록 엄마 얼굴엔 화색이 돈다.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약은 ‘기도 증폭제’라 불리는 하얀 알약. 하루 기도가 끝나면 목사가 직접 먹여준다. 그게 무언지 안다. 단순한 항생제다. 또 대야를 채운 성수에 발을 담그도록 하는데, 그건 소독약이다. 상처가 퍼지는 걸 약간 더디게 하는 정도. 그렇게 번 시간만큼 더 맞아가며 기도하다 운다. 나는 절벽을 향해 달리는 마라토너다. 내가 죽는 날,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주신의 가호로 영혼의 영생을 얻게 되었다며 기뻐하려나? 기도는 아무 효과가 없다. 하지만 엄마는 그 ‘가짜 약’을 무엇보다 믿는다.      



오늘도 동이 터 엄마 손 붙들고 교회에 간다. 거기, 목사가 있다. 신의 대리인. 일부 재림인 목사. 모든 성녀의 남편.  



우주 신을 믿는 내 모든 형제가 한 명의 아버지로부터 왔도다.        



_



2. 가짜약 효과(Placebo Effect)

약효가 전혀 없는 약을 먹고도 약효 때문에 병이 난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현상을 '가짜약 효과'라고 한다. 가짜약이란 뜻의 한자어를 써서 '위약 효과'라고도 한다. 플라시보란, 생물학적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중성적인 물질이지만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실제 효과가 나타나는 약물이나 물질을 말한다.  

출처
보완
2016-10-12 02: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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