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껜가 EBS에서 OECD 하위권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문해력 저하 문제를 특집 방송으로 다루었더군요.
글자만 알았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바닥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겨레 신문 기자도 출연했던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겨레 신문과 오마이뉴스 같은 한국의 진보 언론들은 국민의 문해력 저하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집단입니다.
우리나라 진보 세력에는 당연히 과오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과오 중 하나가 국어 포퓰리즘입니다.
이들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어려운 단어, 말을 쓰는 사람이 문제라는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주창해왔습니다.
이들의 선악 이분법에 의하면 민중은 선이고 순수한 존재이며 사회지배층(?), 지식인, 엘리트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순수하고 선한 사람인 반면 어려운 한자를 배우고 그런 어려운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잘난척하고 민중을 멸시하는 악한 집단이죠.
어려운 단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보통 수준의 단어인데도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당당합니다.
그런 어려운(?) 말을 내가 어떻게 아냐, 왜 남이 모르는 단어를 쓰냐는 당당한 태도로 나옵니다.
이런 태도는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끼쳐서 공공기관이나 국가 정책상으로도 어려운 한자어를 쉽게 고쳐 쓰자는 정책이 지속되어 왔죠.
국가마저도 모르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니 국민이나 특히 학생들이 독서나 한자, 어휘 공부를 통해 어휘력 향상에 힘써야 한다는 개념이 생겨날리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한글을 알면 국어는 당연히 읽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무식한 관념이 대중적으로 자리잡았고 그 결과가 문해력 최하위권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입니다.
남이 너 때문에 불편하다고 하고 항의를 해야 남의 입장을 비로소 고려하게 되는 존재인 것이죠.
네가 그렇게 어질러 놓으면 누가 치우라는 것이냐고 일깨워줘야 비로소 자기 행동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한겨레 식의 국어 포퓰리즘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이기적 성향에 철저히 영합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가 불편해지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죠.
언어를 배우고 단어를 익히는 것은 타인과의 의사 소통과 상호 작용을 위한 공동의 자산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배려하는 것이죠.
사회에서 사용되는 어휘를 최대한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틈틈이 공부해서 어휘력을 늘려서 소통에 지장이 없고 서로가 말귀를 잘 알아먹게 되면 서로가 편합니다.
반면 단어, 언어 능력이 부족하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남도 불편합니다.
한 마디로 남에게, 사회에 큰 민폐를 끼치는 일입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한국 말을 전혀 못 한다면 어떨까요?
자기도 물론 불편하겠지만 그런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자영업자, 공사기업의 일선 창구 직원들도 엄청 불편하겠죠.
한국에 살면서 한국 말을 전혀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외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타인의 불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편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죠.
어려운 한자, 한자어, 그런 걸 내가 왜 배워야 하냐는 한국인들도 사실은 똑같습니다.
본인이 문서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면 그 사람을 위해 은행원이든 공무원이든 남들이 했던 말 반복하면서 번거롭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줘야 합니다.
공부해서 한번에 알아들으면 서로가 편할 텐데 남들을 이처럼 번거롭게 하면서도 국어 포퓰리즘에 세뇌된 한국에서는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들의 그런 노고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뻔뻔하고 이기적 인간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들이 이기적이는 것은 영어에 대한 이중적 태도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죠.
한자를 모르고 어려운(?) 한자어를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던 인간들이 영어 단어에 대해서는 본토 발음까지 신경 써가면서 무식(?)이 들통날까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니죠.
별로 어렵지도 않은 한자어를 쓰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서 항의하면서도 영화 제목이든 광고든 범람하는 영어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듯 합니다.
아마 지구상에서 한국인들의 한자와 영어에 대한 이런 태도만큼 이중적인 태도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서 접근해서는 안 될 문제에 대해서까지 쓸데없이 정치적, 이념적 프레임, 즉 반민중, 반민족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씌워서 포퓰리즘을 선동한 죄악이 한겨레 신문을 비롯한 일부 진보세력에게는 있습니다.
민중의 편이냐 지식인의 편이냐, 젊은 세대의 편이냐 기성세대의 편이냐, 이런 식으로 너는 누구 편이냐는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될 문제에 대해서까지 철저하게 누구 편 프레임으로 다룬 것이 우리 언론의 천박한 수준입니다.
물론 이들만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 지식인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난히 시류에 영합하고 바른 말을 못 하는 성향이 강한 것이 한국 지식인 사회의 체질이니까요.
일본만 해도 무슨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냐고 비웃음이나 샀을 주장이 한국에서는 견제 없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커다란 해악을 낳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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