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키우고 의식주 겨우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쯤
인간은 어렸을 때의 꿈과 젊음의 열정이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때쯤이면 내 삶이 결국 0.1%정도의 별빛을 특별하게 하기 위한 99.9%의 어둠중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인생이 생각보다 별 대단한 게 아니란 사실도 받아들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리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특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린 것이다.
그저 모두 친구고 모두 별볼일없는 녀석들이며
오직 나만이 위대한 존재가 될 거라고 믿었기에 난 그때 유치한 철부지였다.
어느 순간 대단한 녀석들은 원래 대단했던 것이며 이후에도 계속 대단한 삶을 산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대단한 줄 알았던 난 사실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다행히 젊음도 열정도 꿈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인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혹시나 내게 아직 발견하지 못한 대단한 가능성이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
또는 미련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평생 그렇게 선망했던 0.1%의 별처럼 내게서 무언가 빛이 나서
갑자기 나를 하늘에 콱 박아주지 않을까 하는 착각 때문에 우린 죽는 순간까지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삶이 주는 희망이란 이렇게 잔인하고 기만적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그는 눈에 띄는 미모로 무려 이십대의 나이에
공중파 방송의 촉망받는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가 주말뉴스데스크 앵커가 된 것은 그의 나이 서른 하나.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한 것은 서른 아홉.
언론인 영향력 1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 여덟이었다.
모든 기자와 앵커의 롤모델.
여자 아나운서들이 가장 존경하고 같이 일하고 싶은 앵커.
화제의 중심이며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빛나는 길이었다.
반대쪽에 또 한 남자가 있다.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에 퉁퉁한 몸집의 그는 이상한 언어들을 만들어 낸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비웃는 객기를 보였으며 언론사라고 봐주기 힘들 정도의 인터넷 사이트와
쇼핑몰이라고 봐주기 힘든 쇼핑몰을 어찌어찌 운영해 나갔다.
그의 주장에는 실수도 많았고 오류도 많았지만
그게 그렇게 사회에 혼란을 끼치지 않았던 건 원래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며 사회의 여러 일들에 대해 독특한 시선을 제공하는 것.
딱 거기까지가 그의 역할이었고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계속 진보하리라고 알았던 세상이 어느날 대놓고 후퇴했다.
사람들은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사탕발림에 현혹되어
전과 12범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뻔한 잘못들이 이상하게 왜곡되는 게 일상이 되던 시절.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 사이에서 뉴스를 안보는 게 상식이었던 시대.
잘 생긴 사람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덥수룩한 사람은 들이받았다.
사람들은 품위 있게 질문을 던지는 남자를 존경했다.
낄낄대며 아무렇게나 들이받는 남자는 폄하했다.
9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국민세금 수십조 수백조가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고,
수백 명의 아이들이 수장되었고, 그럼에도 모든 뉴스가 공정한 보도라는 미명 하에 말도 안되게 편협했던
그 시절을 잘 생긴 남자와 덥수룩한 남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버텨냈다.
돌이켜 보면 손석희가 박근혜에 의해서 JTBC 에서 잘렸다면 그도 살해의 위협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실제 살해의 위협에 시달렸던 건 덥수룩한 남자 김어준이다.
그는 정권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음산한 일들,
그러나 뉴스에는 절대 나오지 않던 그 모든 일들을 실제로 지켜봤던 사람이었다.
손석희를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는 언제나 주목을 받고 있었고 훨씬 더 영향력이 컸고 존경을 받았다.
김어준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다.
그는 처음부터 별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고 영향력도 미미해 보였고
존경보다 그를 의심하거나 폄하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김어준이 죽는다고 네이버 실검 1위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손석희는 능숙했고 김어준은 어리숙했다.
김어준은 족벌언론의 농간에 속수무책이었고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실력없이 도망 다니는 그를 응원하는 게 꽤 쪽팔리게 느껴졌다.
결국 그 살벌한 시절을 버텨낸 것은 손석희가 아니라 김어준이었다.
손석희가 한국 역사 제일의 특종인 타블렛 PC 건을 터뜨린 것은 영원히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는 징조는 꽤 많았었고
점점 박근혜를 만만히 보면서 무너뜨리겠다고 달려들던 언론은 JTBC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시계를 더 이전으로 돌려서 이명박의 도곡동 땅과 다스, 사대강을 나꼼수팀이 파고 들었을 때는
누구도 그들 때문에 정권이 무너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생방송으로 오세훈이 쫓겨나는 것을 기뻐하던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만큼 정봉주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박근혜가 당선된 순간에는
스튜디오를 버리고 해외로 도망가야 했다.
그들이 목숨걸고 찾아낸 수많은 의혹들은 대부분 낡고 터무니없고 싸구려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그들의 외모와 그들의 커리어, 그들의 방법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점잖게 양복을 빼입고 화려한 뉴스룸 카메라 앞에 선적이 없다.
어떤 언론도 김어준과 인터뷰하거나 스튜디오로 초대하지 않았다.
태생부터 B급이었고 무명이며 실패자였던 그들은 조그만 스튜디오에 모여서
그저 낄낄 대며 썰을 풀어대는 그런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뭐 대단한 게 나올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들 역시 평범한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고 우리는 믿었고
우리가 별 볼일 없는 소시민인 것처럼 그들 역시 우리 수준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랬다.
그렇고 그런 사람의 친구는 여전히 그렇고 그래야 한다는 동창회 심리로 우린 그들을 바라봤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질 때 그것 때문에 이명박까지 무너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어이없을 정도로 어설펐고 얽혀 있는 사람들의 수준 역시 후졌고 일처리는 놀라울 정도로 유치했다.
이명박은 프로페셔널이다.
대단한 사람들이 수십겹으로 얽히고 설킨 채로 평범한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조차 힘들었고
그래서 그냥 먼 우주 너머의 일로 치부하고 잊어버렸다.
나꼼수라는 단어는 얼마나 구식처럼 들리는가.
언제적 나꼼수야.
다스가 이명박 것인게 뭔 문제라고...
2017년 10월 그가 “다스는 누구겁니까?”라고 처음 그 위대한 질문을 꺼낸 날 그 뜬금없다는 분위기.
그게 도대체 언제적 일인데?
겨우 현대차 시트나 만드는 회사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건데...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란 딱 그정도였다.
그 질문...
돌이켜 보면 박근혜보다 더 어려운 이명박을 박살낸
그 질문은 분명 김어준의 9년에 걸친 고행의 최종 화두였다.
손석희의 타블렛이 박근혜를 무너뜨렸다면 김어준의 질문은 이명박을 무너뜨렸다.
둘다 명료하고 쉬웠다.
차이라면 손석희는 타블렛을 우연히 얻었고 김어준은 9년의 인내 끝에 그 질문을 만들었다.
그 질문이 나오기까지 김어준은 중동 제보를 무려 2년이나 비밀에 붙였으며
수십건 고소고발을 당했고 수많은 비아냥과 폄하, 무관심속에서 버텼다.
김어준에게 질문은 생존수단이었다.
김어준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했다.
왜냐하면 대중들에게서 관심이 끊기는 순간 그들은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해 주지 않을 때 그들은 번개탄이나 화물트럭, 또는 라면먹다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그 질문들 중에 어떤 것에 대해 왜 지금까지 밝혀진 게 없냐고 묻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평범하다는 반증이다.
그들은 각 질문의 대답을 원한 게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살아남으면서 정권이 바뀔 때까지 버티는 것,
그래서 정권이 바뀐 뒤 새로운 세상이 오면 그때는
각 답의 맞고 틀림이 의미없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목숨의 경각 속에서 모든 것은 정권의 교체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파악하고 있었고
그 본질 아래서 각론의 질문과 답은 생각만큼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김어준은 약자의 논리, 버림받은 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누구도 말하길 꺼릴 때 정의당의 가치, 최태민의 아들,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없는 가족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함께 높여줬다.
그 와중에 어느새 그의 곁에는 마치 판타지 소설 주인공마냥
한명 한명 동지들과 친구들이 생겨났고
이제 그의 질문을 함께 외쳐줄 수많은 전문가들과 동지들, 시민들이 그의 주변에 바글댄다.
길거리 초등학생도 던질 수 있는 질문으로 최고권력자를 무너뜨린 김어준은 한때 우리 중 평범한 누구였었다.
평범한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는
비범한 영웅이 권력자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다.
영웅은 하늘의 별처럼 멀지만 평범한 이는 우리 곁에서 친구가 된다.
친구도 할 수 있는 일은 왠지 우리도 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을 준다.
망상일 수도 있는 그 착각이 어느 순간 현실로 바뀐다면 그건 아마
그 전에 우리에게 정말 그런 가능성을 보여줬던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녹화일에 벙커에 가면 얼마든지 그를 볼 수 있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그의 언어도 멀리 있지 않고 그의 눈높이도 딱 우리 정도다.
그리고서 세상을 바꿨다.
이제 몇시간 후면 이명박은 포토라인에 선다.
앞으로 그에게서 확인해야 할 죄목은 분명 지금 검찰이 들이대는 죄목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그들 덕택이었듯이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길 역시 우리는 그들에게 많이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네이버와 삼성까지 향해 갈 것이다.
그들을 기다리는 전쟁은 어쩌면 지금까지보다 더 힘들 수 있고 양상이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그들에게는 더 많은 전문가들이 있고 노하우와 자신감도 생겼다.
여전히 그들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려는 세력들은 존재할 것이다.
또한 생각지 못한 위기와 대중들의 반발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질문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세월이 그들의 진정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상식과 선의를 가지고 무언가 대단한 일을 꿈꾸며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참고 버티기로 맘먹는다면 오늘 김어준의 승리는 많은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만큼은 우리중 평범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많이 많이 축하를 받고 스스로도 마음껏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오늘 승리의 맨 앞자리는 온전히 김어준과 그들의 친구들 몫이다.
DVDPRIME의 문자마약상 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