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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0 11: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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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익숙했다. 텅 빈 집은 싸늘했다. 더 이상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지 않는다. 아빠는 술에 취해 거실에 나자빠져 있었다. 혹시라도 깨게 된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문을 잠궜다. 그나마 안심이 됐다. 컴퓨터를 키고 롤을 실행했다. 헤드셋을 썼다. 학교 애들이 날 너무 세게 때렸는지 귀가 너무 아팠다. 고통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
픽창에서 티모를 골랐다. 어느 팀원이 티모?라고 채팅을 했다 갑자기 심사가 뒤틀린 나머지 부활 텔포를 들었다. 내가 가진 이 고통을 그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난 어느새 우리 팀원들을 학교 에서 날 괴롭힌 놈들이라 마음먹었다. 이 새끼들. 감히 내가 티모 고르는데 딴지를 거네? 난 히죽히죽 웃었다. 픽창은 내 스펠을 보고 아무 말도 없었다.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난 미드를 달린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었다. 내 심통의 냄비가 끓어넘쳤다. 철저하게 트롤로 간다.
게임이 시작되고 난 선언한 대로 미드를 달리기 시작했다. 적팀은 내 이런 행위를 보고 좋아했다. 그때까지도 우리팀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내가 없는 사람인것 처럼. 내가 이렇게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들은 날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끼리 단결할 뿐. 그들 사이에 내 존재는 허락되지 않은 듯 했다.
내가 끊임없이 던져도 그들은 게임을 잘 풀어나갔다. 이미 날 차단했는지 내가 채팅을 쳐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난 공기같은 존재일까? 날 인정받고 싶었다. 하다못해 티모님 같이 게임해요. 멘탈 챙겨주세요라는 한 마디라도 듣길 바랬다. 하지만 그 바램은 나만의 것. 그들은 날 신경쓰지 않았다.
50데스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템을 팔고 한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던져줘도 못이기냐며 상대 팀을 조롱했다. 나름 즐거웠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는 미드에 동그랗게 버섯밭을 지어놓고 혼자 놀았다. 여러 번의 교전이 이뤄지고 게임은 결국 우리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자축했다.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내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란 걸 알리고 싶었다. 날 받아줘. 제발. 나도 소중하다고. 나도 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외침은 이미 그들의 승리를 자축하는 환호 앞에서 사그러들었다. 키보드를 쾅하고 내리쳤다.
그 순간, 거실에서 아빠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내 방문을 쾅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고리가 거칠게 흔들렸고 욕지거리가 문 사이로 스멀스멀 다가왔다. 재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가 숨을 죽였다. 눈물이 흐른다. 그치만 온전한 나만의 세계가 그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