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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9 0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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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인천 계양구에서 철물 설비업을 하셨다. 동네 뿐만 아니라 인근 몇개 동까지 아버지의 실력이 소문이 나 거의 1년 내내 각종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중학교 시절부터 공사장에서 시다로 일하며 소소한 용돈을 받았다.
당시 같이 일하던 인부 아저씨들의 일당은 대략 5~10 정도 였던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하루 뺑이치면 만원정도 주면 아싸 땡큐였고 대부분 5천원 정도 였던것 같다.
그나마 고등학교 올라간 시점에서 만원 정도로 일당이 올라갔던것 같다.
그러던 1998년 어느 겨울(정확이는 기억이 안나지만 대충 그랬던것 같음) 일요일 아침부터 집 전화기에 불이났다.
우리 동네 뿐 아니라 몇개 동에 걸쳐 수도가 얼어서 난리가 난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에 수도를 녹이면 가정집은 5만원, 공장이나 건물 같은 곳은 한 구간당 10만원 정도를 받았던것 같다.
아버지는 늦잠을 자는 나를 깨워 알바하러 가자고 하셨고 나는 아싸 용돈 하고 따라 나섰다.
두터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나선 그날은 ㅅㅂ 너무 추웠다...ㅠ.ㅠ
아침 일찍 나가서 얼마나 돌았는지 모를 만큼 돌고 점심을 먹고 또 예약이 들어온 곳을 다 돌고 집에 오니 저녁시간...
그날 하루 공장 포함 20~30곳은 돌아 다닌듯 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5만원을 주셨더랬다.
열심히 시다를 했고 공사판 하루 따라가면 만원이었기에 너무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얼마전 본가에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때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그날 하루 번 돈이 대략 150~200은 되는 것 같은데 왜 5만원만 주셨냐고...너무 하신거 아니냐고...
아버지는 순간 말이 없으셨고 이내 말을 돌리셨다.
나는 안다. 그날 벌었던 그 돈이 내입으로, 내 옷과 내 학비로 들어갔다는 것을...
옛 추억에 나이드신 아버지께 농으로 투정을 부린것에 아버지가 미안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호랑이보다 무서웠던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