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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22: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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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추석 연휴로 기억한다.
큰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께서는 내일 새벽에 사촌형들과 벌초를 가라고 말씀하셨다.
어르신들께서 바빠 올해는 벌초를 미리 못 했다고 하셨다.
내일 벌초를 위해 일찍 자려고 들어가는 데 잠깐 불러 세우더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신다.
마을 공판장에 가서 맥주를 사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던 큰아버지께서는 '심각하게 할 이야기가 많으니 젤 큰 병으로 세 병 사온나'라고 말씀하시곤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슬슬 정수리가 훤해지는 삼형제들은 식탁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 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별별 상상을 하며 공판장에 도착했다.
제일 큰 맥주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사장님께서 640ml 병을 꺼내주셨고 마침 딱 세 병이 남았다고 하신다.
공판장에서 돌아와 식탁에 맥주를 놓아드렸다.
안주 좀 만들어 드릴까요 물었지만 병따개나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심각함을 느끼곤 바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새벽 다섯시에 맞춰놓은 거친 알람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문을 열고 나가니 삼형제들은 여전히 식탁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말이다.
식탁 위에는 반 쯤 마신 맥주병과 따지 않은 병이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큰아버지가 맥주병 하나를 들고 말씀하셨다.
"이거 냉장고에 느놔라 안 딴기다"
오래전 추석 연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