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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9 12: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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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돌 한글날 경축식 축하말씀 (광화문광장)
나라 안팎의 8천만 겨레 여러분, 광화문광장을 메워주신 한글 관련 단체장과 각계 지도자, 주한외교사절과 시민 학생 여러분,
오늘은 우리 겨레가 우리글 한글을 가진지 오백일흔두 돌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서 자리에 오르신지 6백 년 되는 해입니다. 그런 뜻을 기리고자 오늘 우리는 세종대왕상 앞에 모였습니다.
먼저, 한글을 빛내시어 문화훈장을 받으신 진주문화연구소 故 김수업 이사장님과 일본 이와테 현립대학교 강봉식 교수님, 문화포장을 받으신 몽골 국립대학교 고토브 에르데네치메그 교수님과 동국대학교 변정용 교수님, 대통령 표창을 받으신 KBS 우리말겨루기 제작팀과 한국어진흥재단,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신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와 스리랑카 캘라니야대학교 김진량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9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받으신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교육’ 단체와 우루과이 ‘영속적 학습’의 관계자들도 와주셨습니다. 여러 나라 세종학당 학생들도 오셨습니다. 바깥나라 손님 모두를 따뜻이 환영합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사랑하는 시민 학생 여러분,
세종대왕께서는 우리 겨레에게 우리 겨레만의 누리를 열어주셨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가장 북쪽 유역에 4군 6진을 두고 그곳에 백성을 옮겨 살게 하여 한반도를 우리 땅으로 굳히셨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뒤에는 눈병을 앓으시며 한글을 만들어 백성 누구나 제 뜻을 쉽게 펴도록 해주셨습니다. 땅은 사람이 삶을 이루는 터전이고, 글은 얼과 마음을 담아 옮기는 그릇입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무슨 말로도 나타낼 수 없는 고마움을 우리는 세종대왕께 드려 마땅합니다.
세상에는 약 3천 개 민족이 7천 가지의 말을 쓰며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글자는 마흔 가지뿐입니다. 우리처럼 스스로의 말과 글을 모두 가진 민족은 많지 않습니다. 마흔 가지 글 가운데서도 누가, 언제,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확실한 것은 한글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래서 한글은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가 자랑스럽게 지키고 가꿀 자산입니다. 그것을 세계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1990년부터 해마다 문맹 퇴치에 앞장선 사람이나 단체에게 ‘세종대왕 문해상’을 주어 세종대왕의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1997년에는 한글을 만든 까닭과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에 올렸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들이 쉽게 익히고 쓰게 하려고 한글을 만드셨다는 세종대왕의 말씀을 적어 놓았습니다.
세종대왕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한문을 모르던 조선의 여성과 평민도 한글로 제 생각을 남겼고, 지식과 정보를 얻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글로 겨레의 얼을 지키고 일깨웠습니다. 해방 이후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도 국민의 문자 해독률이 높았기에 가능했고, 그것은 한글 덕분이었습니다.
이미 한글은 우리만의 글이 아닙니다. 한글을 배우는 세계인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2007년에 세 개 나라, 열세 곳에 문을 열어 한글을 가르친 세종학당이 올해까지 쉰일곱 개 나라, 백일흔네 곳으로 늘었습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방탄소년단의 한글 노랫말을 받아 적고 함께 부릅니다. 정부는 자랑스러운 방탄소년단께 문화훈장을 드리기로 어제 국무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유라시아 동쪽 끝에 터를 잡아 나라를 이어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큰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를 작은 나라의 작은 민족으로 결코 얕보지 못합니다. 세종대왕께서 주신 우리글과 땅이 크나큰 힘이 됐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과 땅을 주셨을 때 우리 겨레는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냉전은 겨레와 땅을 두 동강 냈습니다. 조국분단 70년은 말의 뜻과 쓰임새마저 남과 북에서 달라지게 바꾸고 있습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 함께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남북관계의 기복으로 멈추었습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을 이어가려 합니다.
이렇게 남과 북이 달라진 것들을 서로 알고 다시 하나 되게 하는 일을 더는 늦출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쌓이고 또 쌓이면, 남과 북이 세종대왕 때처럼 온전히 하나 되는 날도 좀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함께 힘쓰기를 오늘 모두가 세종대왕께 다짐 드립시다.
겨레의 말과 글을 지키고 다듬으며 가꾸는 것도 우리가 마땅히 할 일입니다. 한글학회를 비롯한 학계, 시민단체와 함께 모두가 애씁시다. 정부가 앞서겠습니다.
둘도 없이 값진 한글과 그것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오늘이 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