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2017-02-25 12:27:54
10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니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난 그가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안사람들끼리는 이미 오가며 지내는 눈치였고 애들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으니 들은 바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아랫집에 사는 그 변호사 양반이구나. 마누라가 문 잠가 놓고 어디 간 모양이네.
주말 오후에 집에도 못 드가고 안 됐소. 열쇠 하나 복사해서 갖고 댕기지, 변호사도 별 수 없네.
그라마 앉아서 책 보소, 나는 들어갑니데이.’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의 곁을 지나쳤다.
마주 목례를 하며 미소 짓던 그의 표정이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떤 계기였던지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의 집에서 차를 한 잔 나눈 뒤로 우리는 차츰, 그리고 매우 가까워졌다.
심지어 문 변호사는 나를 자기네 동창생 그룹(이들은 주로 함께 휴가를 함께 보내는 죽마고우 그룹이었다)에까지 끼워주었다.
이건 사실 좀 드문 일이다.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라는 게 그저 데면데면 의례적인 인사나 나누기 십상이고, 남자들끼리는 더욱 그러하다.
한데 아무런 학연이나 특별한 관계도 없는 사람들끼리 다만 이웃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아도 참 의외라 느껴진다.
우리는 부부동반으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지리산 종주를 비롯해 여러 산을 함께 올랐고 스킨 스쿠버도 함께 했다.
나는 그가 좋았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재미난 농담도 할 줄 모르고, 좀처럼 실수하는 법이 없어 뭔가 좀 어렵게 느껴지고…,
한 마디로 부담 없이 친해질 요소라고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그였지만, 함께 사귀는 내내 나는 그의 속 깊은 따뜻함에 언제나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우 사려 깊고 남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순박했다. 변호사라면 출세한 직업인데 잘난 척 하는 법이 없었다.
입에 발린 얘기로 호의를 표하지 않았다. 함께 길을 가다가 서점이 보이면 슬그머니 끌고 들어가 책을 사서 준다거나,
함께 놀러 간 시골 장에서는 물건 좋아 보이는 마늘 두 접을 사서 나한테 한 접 슬쩍 건네준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깊은 정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선 되고서 문 변호사도 노 대통령을 도와 참여정부를 이끌어 가기 위해 서울로 가게 되었다.
우리 친구 그룹은 그를 위해 송별회를 마련했다. 온천장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 그 자리에서,
친구들은 기왕에 그렇게 결정이 되었으니 잘 하고 오라는 격려를 얹어 그대를 보낸다마는 솔직한 속마음은 “자네가 가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판이라는 게 어떤 곳인데, 더 없이 아끼는 친구가 상하고, 상처받고, 아파할 것이 몹시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문 변호사는 그 특유의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가서 원칙대로 일 하겠다.” 그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친구 하나를 잃은 것 같아 쓸쓸함이 왈칵 밀려들었다.
‘나의 친구 문재인’이 이제는 모든 사적인 관계를 뒤로 한 채 ‘국민의 공복’이 되기 위해 떠나는구나….
기쁜 마음으로 보내기야 하겠지만 함께 어울려 다니며 추억을 쌓는 일이 더 이상은 힘들겠구나….
우리 친구들은 문 변호사가 서울로 간 뒤로 참여정부 5년 동안 단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우정이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이름에 값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