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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 2017-05-19 11:33:48 6
[속보] 문통령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렬 임명 [새창]
2017/05/19 10:39:38
그냥 파격이네. 피우진의 보훈처장 임명도 파격 이여서 충격을 받았었는데,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은 약간의 기대는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파격 입니다.

보통 검사장 으로 승진하면 가는 자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검 차장,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장, 대검 기획조정부장, 공판송무부장 등이 바로 그것이죠.
이중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장 이나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요직인 반면, 고검차장은 한직이죠.

그런데 그런자리도 아니고 검찰요직중 법무부 검찰국장과 쌍벽을 이루는 중앙지검장 이라니 문통의 의중을 알것 같습니다.
윤석렬은 강골이기 때문에 문통의 기대 데로 잘 할것으로 믿습니다.
2403 2017-05-19 09:25:17 14
잘 알려지지 않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 [새창]
2017/05/19 02:00:32
2번 문제는 약간 복잡한 내용이 있습니다.

20사는 소요 진압부대로 미군의 통제 밖에 있는 부대 이지요. 따라서 미군의 승인을 받을 필요 없이 통보만 하면 되는 부대 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을 아무도 몰랐다는 겁니다. 한국군도 몰랐고, 미군도 몰랐으며, 미 국방부도, 국무부도 몰랏던 사항 입니다.
서중석교수의 현대사 이야기를 보면, 이문제는 86년 미 국방성 변호사들이 밝혀낸 사실 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신군부를 지원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1996년에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팀셔록이 입수해 폭로한 체로키 파일에 의하면,
미국은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에 특전사를 동원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 했으며(권리도 없는데),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 작전 때에도 신군부와 일정 부분 협의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요.
2402 2017-05-19 08:51:51 18
권홍우 논설위원 페북,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던 국방부에서 있었던 일> [새창]
2017/05/19 07:42:53
지 애비가 했던것과 똑 같네요. 내친구가 영등포 로타리 근처에 있는 흥국생명에 다녔는데, 흥국 건물에 보훈처가 있어서 일년에 한번정도 박정희가 방문을 했었는데, 방문하면 커텐으로 가리고 밖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갔다고 하더군요.
2401 2017-05-19 08:37:34 16
[새창]
아무리 진영논리가 판을 쳐도 그렇지, 어떻게 304명의 학생들이 살해 당하다 시피 했는데, 추모 리본을 달았다고 빨갱이라고 할수 있나.
2400 2017-05-19 08:22:35 45
시민의 눈 활동하신 봉사자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새창]
2017/05/19 07:06:45
서명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중일 때는 초상권이 없다고 알려 졌는데 저렇게 억지를 쓰는 자들도 있지요.
일부의 주장대로 초상권이 있다고 해도 휴대폰을 뺏을 권리는 없지요.
노상 말하는 바이지만 선관위는 1급 적폐청산 대상 입니다. 반드시 승리 하시길 바람니다.
2399 2017-05-18 20:47:56 2
대통령의 배려…경호차량 세우고 구급차 먼저 [새창]
2017/05/18 18:32:23
만약 의전왕인 황교활 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2398 2017-05-18 20:27:30 7
[새창]
운전석도 좋아요.
2397 2017-05-18 19:22:45 0
계란 사러 가는 글 [새창]
2017/05/18 15:52:58
자주는 아니지만 옥션에서 3a 나 2a 20알을 택배 포함 5천원에서 6천원에 팔더군요. 벌크타입 입니다.
2396 2017-05-18 19:19:16 7
80년 5월에 광주에서만 학살이 일어난 이유 (feat. 유시민) [새창]
2017/05/18 17:49:58
본문에 나온대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있었다고 해도 광주 처럼 진압을 했다면 시위가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시민들이 호응을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데 당시 시민들은 그런 쪽 이였습니다.
반면 87년 유월 항쟁이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참여가 엄청나게 많았고 특히 넥타이 부대의 참여가 결정적 이였는데,
이미 호헌선언을 한 전두환이가 쓸수있는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친위쿠데타를 계획 했지만,
광주의 학습을 한 군수뇌부가 다시는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수 없다고 거부 함으로서 실패를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월의 피는 한국 민주화의 초석이 된것입니다.
일부 에서는 미군의 활략을 주장 하지만, 그것 보다는 노태우의 회고록에 나왔듯이, 계엄군이 국민의 편에 서는것을 가장 두려워 했지요.
그래서 군 수뇌부가 거부하자 전대가리는 '우리가 쓸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며 육이구 선언을 허락 한겁니다.
문대통령이 광주정신을 계승 한다고 한것도 419와 5.18, 6월 항쟁은 정신적으로 연결된것 이라고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2395 2017-05-18 18:47:27 15
80년 5월에 광주에서만 학살이 일어난 이유 (feat. 유시민) [새창]
2017/05/18 17:49:58
백색 전화와 청색전화를 아세요?
백색전화는 전화 사용자가 소유자로서 팔수도 있는 전화고, 청색전화는 사용만 할수 있는 전화죠. 그만큼 전화가 없었던 시절 입니다.
시골 리단위에 가면 이장집에나 전화가 있어서 외지네 나가있던 자식이 전화를 걸려면 이장집에다 전화해서 이장이 방송으로 호출 하던 시대 입니다.
2394 2017-05-18 13:46:55 1
전효성, 과거 일베용어 논란에 실천적 반성ㄷㄷㄷ.txt [새창]
2017/05/18 13:05:27
현대사만 배워도 더 되지요. 프레시안에 서중석교수의 현대사 이야기가 연재 됐는데 해방에서 유월항쟁 까지가 253편 입니다.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2393 2017-05-18 08:18:52 1
강아지를 모셔왔습니다. [새창]
2017/05/17 15:55:06
눈을 살짝 치껴 뜬 것이 영리하게 생겼네요.
2392 2017-05-18 08:17:02 0
강아지를 모셔왔습니다. [새창]
2017/05/17 15:55:06


2391 2017-05-18 08:16:39 2
강아지를 모셔왔습니다. [새창]
2017/05/17 15:55:06


2390 2017-05-18 08:09:05 0
시바견.....털뿜뿜 수준.....jpg [새창]
2017/05/17 18:39:40
시바 털뿜왕 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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