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
2016-04-24 22:48:30
0
보수냐 진보냐, 극우냐 극좌냐처럼 정치적인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처럼,
종교간의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 종교별로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하나의 종교 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종교인들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예를들어 기독교 안에서도 이번 총선에서 누군가는 동성애를 거품물고 반대하는 자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성경 안의 이웃사랑을 강조하는 교리를 생각하며,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된다는 사람이 있는법이지요.
원래 종교란 것이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이해되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1+1=2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할 때는 논리적이라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라는 진술은 논리적이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음belief'이지요.
믿음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믿고나면 근거가 생기기도 합니다. (자기 확신 등)
믿음을 가진 후에, 성경을 바라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논리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고,
당연히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절대로 지엽적으로 성경을 바라봐서는 안되겠지요.
지엽적으로 바라보는 종교인들중에서 폭탄테러하는 자들도 있고,
중동을 침공하는 자들도 있게되지요.
또라이 중에 상 또라이입니다.
어쨋든, gooda님이 비기독교인이신 것 같아서 이해하기 쉽도록 위에서는 재미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를 기독교 신학에서는 '자유의지'라는 표현을 쓰죠.
신이 저에게 이런 정답을 직접적으로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라던지 제 개인적인 삶을 통해 생각해볼 때 위와 같이 생각하는 바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신이 인형을 만들지 않고 인간을 만든 이유 중 하나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인형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렇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한 로봇을 만들면 어떻겠나? 라는 의문이 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봇은 정해진 알고리즘하에 대답할 뿐, 그 논리를 벗어난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수 없겠지요.
인간은 인형, 로봇과 달리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을 사랑할수도, 신을 미워할수도 있습니다.
신을 엄청엄청엄청 미워할 수 있는 능력 (ability 혹은 capacity)가 있다면, 그 반대로 신을 엄청엄청엄청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고보는 관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