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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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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덧없기 때문에 꿈이다.
멀리서 주인공들이 화려한 그림체로 멋진 장면을 찍을 때면 자괴감이 든다. 멀리서 눈으로 반짝이는 미소를 좇다보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진다. 가끔은 배경의 화병이 나보다 잘 그려진다. 이럴려고 엑스트라나 하는 것이 아닌데...
만화장에서 알바를 하다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날 알긴 알까? 저들, 주인공이든지, 작가라든지. 아니, 하물며 같은 엑스트라까지도. 독자들에게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한 컷에 천팔백오십 원. 한회에 무려 10컷씩이나 출연했음에도 대사 한줄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지는 것은 하루 일당 만팔천오백원.
꼬깃꼬깃한 지폐 다섯 장과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 퇴근하다 유리벽 너머로 전시된 케이크를 보아도 씁쓸한 웃음만이 지어질 뿐이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하얗게 이는 날숨 한 조각.
오늘은 내 생일인데 말이지. 고개를 내젓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집을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외로움. 냉장고를 열면 보이는 것은 가득한 맥주병. 바닥에 나뒹구는 빈 캔은 점점 늘어난다. 술기운 때문일까? 문득 옷장을 열어 작업복을 입어본다. 주인공은 커녕, 배경 한 구석 박혀 있는 지도 모를 화병보다도 못한 그림체. 내가 혐오하는 내가 되었지만 게의치 않았다.
거울을 들여다보자 항상 웃는 얼굴 가죽 뒤로 술기운에 벌게진 볼이 드러나 보인다.
아 맞다 그게 어딨더라. 서랍장을 열고 고깔모자를 꺼내 머리에 쓴다. 비틀거리며 다시 거울 앞으로 가 비웃음을 짓는다.
캬아, 주인공 같네.
속이 뒤끓었다. 저 얼굴이 역겨웠다. 구역질이 났다. 결국 거울 아래로 토사물이 흐른다. 비틀거리며 침대에 눕는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오늘 내 생일을 아는 사람이 있던가?
꿈은 덧없기 때문에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