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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5 16: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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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0월 8일 새벽
명성황후가 친러정책을써 친일세력을 몰아내자 조선의 식민지화 정책이 어렵게 되므로 정세의 다급함을 느낀 일제는 여우사냥을 시작하였다.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고로와 소수의 일본군, 그리고 소수의 일본 불량배들이
궁궐에 난입해서 친위대를 무력화시키고,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찾아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석유를 뿌려 시체를 태운다음 연못에 뼈를 던졌다. 그리고 그 그날아침 짜여진 각본대로 흥선대원군을 궁궐에 입궐시키고, 훈련도감 군사들을 내세워 조선내부의 내란으로 보이게끔 연극했고, 친러내각을 무너뜨렸다.
한편에는 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본인만의 주도로 이루어진게 아니라, 이 배후에는 대원군의 철저한 계획이 있었다는 말도 있더군요. 대원군의 사주없이는 불가능했을 계획이라는게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있구요.
어찌됐던, 가슴아픈 역사의 한토막입니다.
잊지않겠다-┏ 라는말은 이럴때 쓰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