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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23: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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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열도에는 100여개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중국 수천개의 성읍국가, 우리나라 부여/고구려 각부, 삼한 70여국, 정도겠죠.
한반도에서 고구려,백제,신라가 소국들을 통합하며 고대왕국 규모를 갖춰 나갔듯이
일본도 100여개 나라가 30여개 나라로 합쳐졌습니다.
그 중에 한반도를 통하여 중국과 교류한 야마대국이
마치 삼한의 목지국처럼 전체를 대표하고자 했죠.
6세기에 이르러 왜는 어느 정도 통합되고,
오키미(大君,大王)가 대표하게 되는데..,
규슈남부 구마소,하이토와 같이 따로 노는 동네도 있었고,
다른 곳의 유력자들도 오키미에 완전히 종속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앙에서는 외국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권위를 세우려고 했죠.
사실상 고구려,신라,백제(,가야)는 각각 만주한반도의 상호경쟁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왜를 이용한 것인데
왜 오키미와 중앙권력자들은 그것을 내부선전용으로 썼단 거죠.
봐라, 외국에서 우리 오키미를 뵈러 온다. 이렇게..
특히, 백제는 선진문물을 퍼다주며 왜를 용병으로 썼다시피 한데,
일본서기에서는 아주 과감하고 어설픈 왜곡이 들어가 있죠.
신라 삼국통일 이후, 백제에 줄섰던 왜국은
첫 국제전이자 세계제국 당군과도 맞부딪힌 백강전투에서 패하고
신라의 보복을 크게 두려워했고,
외부와의 통로였던 백제의 멸망과 신라 국교단절로 내부선전도 여의치 않았죠.
이때, 신라 상인이 "제가 신라 왕자인데 신라가 조공바치겠습니다"라고
왜왕을 속였는데 왜왕이 너무 반가운 소식인 나머지 그런 거짓에 덜컥 넘어가서
엄청난 재물을 삥 뜯기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