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와 윈도우는 아예 다른 파일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논밭에 금 그어 놓는 것부터 달라요. 만약 윈도우 깔린 드라이브에 리눅스를 깔아야 한다면 포맷해서 해당 파티션을 싹 갈아엎어야 합니다. 보통 그래서 리눅스를 깔아도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드라이브에 까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인 사용자용 배포판 리눅스에서 NTFS 파티션의 파일을 읽을 수는 있는데, 파일 권한 설정 등은 불가합니다. 윈도우에서는 리눅스용 ext3/ext4 파티션을 읽기 위해서는 아예 서드파티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고요.
한국 페미계의 위와 같은 인식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문장은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되겠습니다. 존재하지 않긴요, 성별만 남자인 약자들 두들겨패면서 선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더만요. 약자 절대선의 믿음에서 비롯된 '체-고의 약자 선발대회'는 결국 또 다른 증오를 낳을 뿐인 거죠. 정의/불의와 강자/약자가 원칙적으로는 각각 독립된 좌표계라는 걸 왜 그렇게 애써 무시하는지.
저런 <최고의 약자를 뽑는 치킨레이스>의 가장 큰 희생양이 누구냐고요? 그건 약하게나마 '강자'의 속성을 지닌 약자입니다. 이를테면 '백인 장애인' 혹은 '남자 동성애자' 같은 게 있을 겁니다. 강자의 속성이 애매모호할수록 좋습니다. 체-고의 약자를 뽑는 레이스에서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탄압당합니다. 어쨌든 '강자' 속성이 있으니 약자 자격 없다고요. 물론 그 탄압마저 '약자'가 행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정의구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