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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2 1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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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대신써보겠음..
[이항복은 어린 시절 퇴계 이황의 옆집에 살았다. 어린 항복이 퇴계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왜 남자의 생식기를 ‘O지’라고 하고, 여자의 생식기는 ‘O지’라고 하는 것이옵니까?” 퇴계가 항복을 꾸짖지 않고 설명한다. “남자의 생식기는 앉을 때 가려진다 해 ‘좌장지(坐藏之)’라 하고, 여자의 생식기는 걸을 때 가려진다 하여 ‘보장지(步藏之)’라 한다. 이를 짧게 줄여 부르는 것이 O지와 O지이다.”]
어처구니 없는 설명이었다. 두 단어는 외래어였다. 오늘날 두 단어를 우리가 가끔 써야 할 때면 영어를 입에 올리는 것처럼, 많은 사회가 금기어는 외국어를 들여와서 쓴다. 조선시대도 비슷했다.
두 단어가 외래어라는 사실은, 두 단어가 조선시대 중국어 어휘집인 <역어유해(譯語類解)>에 표제어로 올랐다는 데에서 확인된다. 이 어휘집은 숙종 16년 때인 1690년에 사역원에서 간행했다.
두 단어가 중국에서 왔다고 해도 한자 표기를 위와 같이 했다면 위의 어원 풀이가 맞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 <역어유해>에서 두 단어는 각각 한자(漢字) 두 글자로 표기됐고, 위의 표기와는 어떤 한 글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심재기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어어휘론 신강>에서 이 사실을 전하며 “당시 중국어에는 남녀 성기를 가리키는 다른 단어가 있었다”며 “따라서 두 단어는 중국에서도 외래어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나는 당시 이 희한한 낭설을 주위 분들에게 전하며, “퇴계의 일화는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어원 풀이는 엉터리이지만 퇴계가 어원을 틀리게 알고 그렇게 얘기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