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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 10: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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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때 닌텐도 게임보이가 한참 유행이었다. 대구에서 알아주는 명문초를 다녔지만, 아버지는 10급 군무원, 어머니는 우유배달을 하고 있는 집이라 주변에 있는 친구들의 경제생활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부모님은 의사, 판사, 변호사, 좀 못한 집이 교수, 교사였으니. 당시 7~8만원씩 했던 저건 더더욱 사달라고 말도 할 수 없었고.
97년인가, 초등학교 6학년때 난 우주소년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했었다. 나름 과학자가 꿈이었던 소년이었으니까.
근데 우주소년단에서 여름방학때 캠프를 일본에 있는 스페이스 캠프에 간다는 것이었다. 참가비가 당시돈으로 100만원. 요새 2000원 3000원씩 하는 아이스크림이 500원이 채 안되던 시절이니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우리집 사정을 뻔히 아는 난 캠프 참가 용지를 엄마한테 선뜻 내밀수가 없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어쨌든 참가용지를 엄마한테 드리자 엄마는 어떻게 했는지 날 그 캠프에 참가시켰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처음 가보는 외국이니 신이 안날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식사에 일정이었지만, 그땐 정말 너무나 즐거웠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쇼핑을 하는 일정이 있었다. 거기에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게임보이가 있었다. 4500엔. 그당시 우리돈으로 한 4만원쯤 되었을거다.
한국에서 7~8만원 하는게 여기선 4만원이니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엄마가 날 보내주면서 손에 쥐어준 돈은 1만엔. 다른 친구들이 맛있는거 사먹으러 다니고 할때도 안쓰고 꾸역꾸역 안고 있었던 돈이다.
버스안에서 머리를 쥐어싸매고 고민고민하다가 엄마아빠가 이 돈을 어떻게 버는지가 떠올라서 차마 살수가 없어 버스에 다시 올랐다.
친구들은 "니 그거 안사나??"하면서 지들끼리 즐겁게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난 버스 뒷자리에서 영문모를 눈물을 삼켜가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먹고 살만하고 나도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지만, 얼마전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그때 기억이 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 눈이 흔들리는걸 봤다.
돈을 버는 지금도 엄마 등골빼먹는 못난 아들이지만, 조만간 효도할게요 엄마.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