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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07: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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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끼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었죠.
저역시 한달 생활비 30으로 서른 중반까지 살았습니다.
잘살진 못했지만 나름 노력 많이 했고, 어디가서 모자라다는 소리 듣지 않고, 월급도 직장생활하면서 통계 상위 20%안에는 듭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집안을 뿌리째 뽑으셔서 제가 그동안 모은 돈 억단위로 깔끔하게 날리고 집도 없고, 빈털터리로 30대 후반을 맞이하네요.
연애는 사고로 제대로 만나지 못해 헤어지고, 맨날 바람핀다는 의심에 시달리다가 헤어지고, 돈안쓴다고 헤어지고, 이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투잡 쓰리잡하느라 연애는 커녕 사생활 자체가 없습니다.
흙수저 인생 한번 있을 실패의 기회는 부모님께서 쓰셨고, 부모님집으로 돌아가서 두시간씩 출퇴근하며, 건강생각한다고 간헐적 단식 핑계삼아 끼니도 줄였네요.
제 인생의 다음장은 노력하며 숨쉬다가 어느날 너무 부끄럽지는 않게 가는것이 남았겠죠.
흔히 인터넷에서 말하는 흙수저의 말로입니다.
작성자님께서는 본인이 얼마나 많은 행운과 좋은 주변사람들을 딛고 계시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이 미래를 알고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까요?
제 삶을 보는, 저같은 부모와 주변을 보고 자란 20대는 어떤 삶을 살까요?
절약과 저축은 미래를 위한 노력입니다.
지금이 아니라 앞날을 위해서 현재를 미래에 양보하는거죠.
근데 미래가 없을꺼란걸 아는 사람이 노력을 할지언정 어떻게 저축과 절약을 할까요...
물론 저는 다시 절약하고 저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고 절약과 저축도 하지 않으면서 버는족족 펑펑 써대고 심지어 노력하지 않는 나보다 어린 이들을 욕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그들에게 내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저 역시 나름 노력한 제 삶을 통해 그들에게 더 나아질거라 말할 자신이 없거든요
부의 불평등, 법의 선택적 적용, 집값 폭등, 사기횡령 장려국 뭐든 상관없습니다.
노력하면 나아진다, 저축하고 절약하면 한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다, 집은 고시원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어느정도 사회생활을 하고나면 아파트도 가기 하는거다, 가족은 부족함 속에서도 서로 손잡고 이겨내며 함께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꺼다.
제 삶에서는 딱 한가지, 제가 노력해서 인정받고 월급 좀 더 받을 수 있다는거 것 하나 빼고는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노력하면 굶지는 않고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수명을 다 할 수 있다는게 40대를 맞이하는 제가 맞이한 현실입니다.
이제 막 대학졸업하고 사회진출한 내 팀원 애들 쭉 보면, 집이 힘들다고 엉망으로 다니면서 핸드폰은 최신기종 뽑은녀석, 자기는 엄청난 노력을 한 것처럼 말하는데 맨날 여행다니기 바쁘고 능력은 갓 고졸이나 다름없는 고문관녀석, 인생이 취미생활 그 자체인 녀석, 이것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살겠나 싶다가도 노력한다고 딱히 나은 미래가 기다리지도 않을텐데 싶어서 그냥 일이나 잘 가르쳐 밥벌어먹고 살게해줘야지 합니다.
물론 노력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 친구들은 정말 사비를 들여서라도 도와주고 싶죠.
비율이 높잔 않아도 힘껏 현실을 살아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만, 집이 잘 살지 않으면 그 친구들도 이미 절망을 디폴트로 깔고, 최소 희망을 가지지는 못한채로 어떻게 하면 조무 더 나은삶을 살지 발버둥치는 정도입니다.
성공한 작성자님은 본인의 노력으로 일궈낸 현실로 20~30대를 핑계꾼들로 보실지 모르겠지만,
실패한 저는 제 노력으로 일궈낸 현실로 20~30대를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로 봅니다.
백날 노력해서 앞으로 연봉이 7천 8천 올라도 네 삶은 더 나빠자기만 할 수 있다는 것,
너 자신의 노력보다 세상의 더 많은 요소들이 네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이 널 계속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건,
미래를 위해 노력할 시간에 그냥 현실을 즐겁게 살아내게 하는게, 차라리 당사자에게는 그게 더 현명한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