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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4 19: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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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으로 쓸까하다가 그냥 씁니다.
저는 대학들어가서 학생회를 4년 했어요. 남들 4년 공부할 동안 운동권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스무권 가까이 책을 읽으며 여성주의 세미나를 준비했고, 농활에 가서 여성주의 때문에 학우들과 설전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요.)
반값등록금에 함께하고, 희망버스에 참가하고, 수업을 빼고 노동절에 시청광장에 가고, 뭐 이거 말고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네요. 다 쓸 수가 없어요.
그냥 딱 잡혀가기 전까지 했던거 같아요. 몸도 많이 상했고..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물대포 맞는데 바로 뒤에서 선배가 연행된 적도 있고..
아버지는 못마땅해하시고, 어머니는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걱정이 되니까 말리셨고, 남자친구랑도 싸운 적이 있고 (잘 받아주어 고맙지요.)
함께해준 동기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동기들이 이해하지 못했죠. 희한한 거 하고 다니는 애. 그래도 학생회에 아는 애 있어서 편하다, 이 정도?
그리고 4년째가 된 상황에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하는데 적응이 안되는 거에요.
나도 남도 안 속이고 정의롬게 내 양심에 따라 살았는데 주변에서는 저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나아가서는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더러 있고
저 스스로도 나는 주류사회에 영영 편입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저를 짓눌렀습니다.
과거의 저를 불러다놓고 그 시선으로 저를 보면 제가 이해가 안되거든요. 내가 왜 송곳이 되어있지? 이런 느낌이랄까요.
취업도 못하면 어떡하지, 빨갱이 소리 들으면서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실제로 그와 비슷한 .. 뭐 종북이니 좌파니 등등 여러번 들었습니다)
여성주의도 그렇습니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저는 페미니즘의 F도 몰랐어요. 그냥 내가 드센 여자애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이라는 사실도 인정하기 힘들었고 제가 가진 성욕을 굉장히 나쁘게 바라보고.. 내제된 차별성 때문에 스스로를 많이 힘들게 했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누려야하는 그 모든 권리를 알기 전의 저는 힘들었어요. 물론 그 권리를 다 알고 생각하는 지금도 힘듭니다.
제가 노동권을 생각하고 여권을 생각하고 성소수자를 생각하고.. 말고도 그냥 이 나라를 생각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내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믿어서에요. 그런 저를 사람들이 반골이라고 하고 이기적이라고 하고.. (가족생각을 안 해서.. 일거에요 아마)
촛불집회에 나가는 걸 철없는 짓으로 몰고 가고. 그냥 그게 다 힘들었어요. 내가 정말 틀린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이요. 아무도 너 잘했다고 해주지 않으니까.
길게 쓸 생각이 아니었어서 두서가 없네요.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은 그 모든 걸 모르고 고민하지 않을 때의 제가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편했다?고 하기에도 저는 저를 너무 많이 괴롭혔고 괴롭혀야 했어요.
스스로에게 가해지던 압제? 표현이 격한가요, 어쨌든 그런 압력에서 벗어나고 전 지금 행복해요.
불안함이 없진 않지만 아직 세상이 좀 두렵지만 그래도 여성주의도 노동권도 민주주의도 기본권도 다 내 권리고
나를 속이지 않고 당당해지기 위해 필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걸 다 가질 수 있는 저를 사랑하기로 했거든요.
고민하기 힘드신 거 알아요. 진짜진짜 힘들고 남들 안하는 고민을 나만 하는 거 같고.
근데 고민이 아니라 사색이고 철학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 너무 힘들고 왜 이런 걸 알아서,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저도 그랬고 제 동기들과도 정말 많이 그랬지만 꼭 좋은 결론 내고 그래서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글재간이 없어서 너무 길어졌네요 ㅠ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