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align=center><FONT color=#000080 size=5>[근조] 내가 반했던 남자</FONT></P>
<P align=left><FONT color=#808080>2009.5.24.일요일</FONT></P>
<P align=left><IMG src="http://www.ddanzi.com/images/rs_1.gif" align=absMiddle border=0> </P>
<P>88년이었을 게다. 그 날은 아침부터 재수, 삼수생 몇명과 모여 학원 대신 종일 당구를 치고 있었다. 그 시절 그 또래가 5공의 의미를 제대로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일주일치 식대를 걸고 내기당구까지 치고 있었으니 당구장에서 틀어놓은 5공 청문회에 대한 관심도는, 다이 위의 하꾸 각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P>
<P>그러니까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멈춘 공 앞에 서고 보니 하필 TV와 정면이었고, 그 순간 화면엔 웬 새마을운동 읍네 청년지부장 같이 생긴 남자 하나가 떠 있었다. 무심하게 허리를 숙이는데, 익숙한 얼굴이 언뜻 스쳐갔다. 고개를 다시 들었다. </P>
<P>정주영이었다. </P>
<P>그 남자는 몰라도 정주영이 얼마나 거물인지는 그 나이에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 촌뜨기가 그런 거물을 상대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타임을 외치고 TV 앞으로 달려갔다. </P>
<P>일해재단 성금의 강제성 여부를 묻는 질의에 "안 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다 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정경유착의 공범이 아니라 군사정권의 일방적 피해자로 둔갑시키며 공손히 '회장님' 대접을 받고 있던 정주영을, 그 촌뜨기만은 이렇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P>
<P>촌뜨기 : 시류에 순응한다는 것은 힘 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간다는, 그러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P>
<P>정회장 : ...</P>
<P>촌뜨기 : 그것은 단순히 현상유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성장하기 위해 힘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까?</P>
<P>정회장 : 힘 있는 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괴로운 일을 당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영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P>
<P>촌뜨기 : 혹시 그 순응이, 부정한 것이라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P>
<P>정회장 : 능력에 맞게 내는 것은 부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P>
<P>촌뜨기 : 일해가 막후 권부라는 것이 공공연히 거론되기 이전에는 묵묵히 추종하다가, 그 권력이 퇴조하니까 거스르는 말을 하는 것은 시류에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까?</P>
<P>정회장 : ...</P>
<P>촌뜨기 : 왜 부정이 아니라면 진작부터 6.29 이전부터 바른말을 하지 못했습니까?</P>
<P>정회장 : 우리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P>
<P>촌뜨기 : 이렇게 순응하는 것이, 힘이 있을 때는 권력에 붙고 없을 때에는 권력과 멀리하는 것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치관의 오도를 가져오게 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지 않습니까? </P>
<P>정회장 : ...</P>
<P>당구 치다 말고 TV 앞에 모여든 놈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P>
<P>"와, 말 잘 한다." </P>
<P>그러나 내가 그에게 순식간에 끌렸던 건 그의 논리와 달변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의원들이 거대한 경제권력 앞에서 스스로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있을 때, 그만은 정면으로 그 권력을 상대하고 있었다. 참으로 씩씩한 남자였다. 그건 논리 이전의 문제였다. 그건 가르치거나 흉내로 될 일이 아니었다. 난 그렇게 노무현을 처음 만났다. </P>
<P><IMG src="http://www.ddanzi.com/images/rs_2.gif" align=absMiddle border=0> </P>
<P>그 날로부터 2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많은 일들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되짚는 일은 그만 두련다. 한참이나 기억을 늘어놓다 다 지워버렸다. 그건 다른 이들이 잘 할 테니까. 그 사이 뭘 잘 했고 뭘 못 했는지 하는 이야기도 그만 두련다. 그 역시 다른 이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은 그저 20년 전 처음 만났던 그를 오늘 이렇게 보내고 마는 내 개인적인 심정만 이야기 하련다. </P>
<P>난 그를 두 번 직접 만났다. 부산에서 또 다시 낙선한 직후인 2000년 3월이 처음이었다. 그에게서 반드시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를 한 번은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씩씩한 남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은 차일피일 게재를 미루다 그냥 덮고 말았다. 어차피 만남 자체가 목적이었으니까. </P>
<P>그 다음 해인 2001년, 해수부 장관 시절 그를 다시 한 번 만났다. 그때 이야기는 2002년 대선의 잠재후보군을 연쇄 인터뷰하던 시리즈의 하나로 지면에 실었다. 당시만 해도 그를 유력후보라 부르는 건 사실상 억지였으나 그리고 대통령에 실제 당선될 확률은 거의 제로라 여겼으나, 그것과 무관하게 그의 인터뷰를 꼭 싣고 싶었다. </P>
<P>그렇게 두 번의 만남에서 오갔던 말들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하나 밖에 없다. 그는 진짜로, 씩씩한 남자였다는 거. 그가 대통령으로 내린 판단 중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고 지지할 수 없는 결정들도 많았으나 언제나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정치고 뭐고 다 떠나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씩씩한 남자였다. 스스로에게 당당했고 그리고 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상대했다. 난 그를 정치인이 아니라, 그렇게 한 사람의 남자로서 진심으로 좋아했다. </P>
<P>그런데 그가 투신을 했단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워서는 아니다. 사람의 이별이란 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닥친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와의 첫 만남도 아무런 예고 따윈 없었으니까. </P>
<P>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그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의 방식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돌아올 줄 알았다. 최근의 뉴스에 별반 관심이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난 그를 완전하고 흠결 없는 정치인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었기에. 뭐가 어찌 되었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돌아올 거라 여겼다. 그는 내게 그만한 남자였다. </P>
<P>그런 그가 투신을 했단다. 투신이라니. 가장 시답잖은 자들에게 가장 씩씩한 남자가 당하고 말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억울하건만 투신이라니. 그것만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죽음이 아니라 그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하루 종일 뉴스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투신 직전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다는 대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씩씩한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단다. </P>
<P>울컥했다. </P>
<P>에이 씨바... 왜 담배가 하필 그 순간에 없었어. 담배가 왜 없었냐고. 에이 씨바... 그거는 피고 갔어야 하는 건데. 그때 내가 옆에서 담배 한 개비 건네줬어야 하는 건데. 그가 그렇게 가는 걸 말리진 못한다 하더라도 담배 한 개비는 피우고 가게 해줬어야 하는 건데. 노무현은 그 정도 자격 있는 남잔데. 그 씩씩한 남자를 그렇게 마지막 예도 갖춰주지 못하고 보내버렸다는 게, 그게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이 난다. </P>
<P>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도, 정권에 대한 성토도 지금은 다 싫다. <BR>지금은 그저 담배 한 개비를 그에게 물려주고 싶을 뿐이다... <BR>그렇게 못했다는 게 너무 속이 상할 뿐이다...<BR>그 담배 한 개비는 피고 갔어야 했는데... <BR>그게 속이 상해 자꾸 눈물이 난다...</P>
<P>나머지는 다음에,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자... </P>
<P align=center><a target="_blank" href="http://www.ddanzi.com/images/articles/250/20090524130543.gif" target=_blank><IMG src="http://www.ddanzi.com/images/articles/250/20090524130543.gif" border=0></A><BR><FONT color=#808080>두 번째 만남에서 너무 촌뜨기처럼 담배 핀다고 <BR>묻어 뒀던 사진 한 장, 이제 그의 곁으로 보낸다.</FONT></P>
<P align=right><BR> 딴지총수(<a target="_blank" href="mailto:[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A>)</P>
<P align=right><IMG height=15 src="http://www.ddanzi.com/images/end.gif" width=76 border=0><BR></P></TD></TR></TBODY></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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