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활용법]
청년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의자에 묶여 있었다.
청년의 앞에는 중년의 남자가 무서운 얼굴로 청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는 잘도 사람을 죽였구만.
그것도 여섯 명씩이나.
아니지. 알려진 것만 여섯 명일 테고 실제로는 더 있겠지.“
청년은 크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청년은 경찰을 피해 창고에 잘 숨어있었지만
갑자기 눈앞의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뛰어들어서는 이렇게 묶어 놓은 것이다.
“아무래도 경찰은 아니신 것 같은데 누구세요?
제가 죽인 사람 가족이신가?“
청년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족속이야.
마음 같아선 당장에 경찰에 넘겨 버리고 싶지만 우선 지금은 참겠어.
역겹지만 네놈 도움이 필요하니까.“
남자는 품 안에서 어떤 남자의 사진을 꺼내어 청년에게 보여줬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놈한테 복수해야겠어.
이 인간이 내 딸과 아내를 죽였거든.
술에 취해서는 차로 들이받고 그대로 도망쳤지.
분명 서둘러 병원에만 데려갔으면 살았을 텐데 말이야.
내 복수를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네놈은 분명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이라든가 그런 세세한 걸 잘 알고 있겠지.“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요구하는 건 이거야.
이놈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줘.
고문을 하던 사지를 자르건 간에 최대한 고통스럽게.
물론 나중에라도 내가 시켰다는 말을 하면 곤란해.“
청년이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조용히 덧붙였다.
“거절한다면 당연히 넌 곧바로 경찰서행이야.
하지만 날 도와준다면 풀어주지.”
청년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언제 시작할까요?”
의자에서 풀려나 밖으로 향했던 청년은 몇 시간 후 불쾌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혹시나 틈을 봐서 도망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구만.
그래 그놈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였나?“
남자의 말에 사진 몇 장을 건네며 말했다.
“아저씨가 계속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잖아요.
도망칠 기색이 보이면 바로 신고 하셨을 테니 별수 없었죠.
내키지는 않지만 빨리 해치우고 자유를 찾는 수밖에.
사진 확인해 보세요.“
남자는 청년이 건넨 사진을 훑어보았다.
가능하면 전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절반 정도 보자 도저히 사진을 넘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놈의 끔찍한 모습을 보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건만 메스꺼운 느낌만 들 뿐이었다.
남자는 복수감 대신 알 수 없는 찜찜함을 느끼며 사진을 내려놓았다.
청년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 전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 말에 남자는 비웃음을 흘렸다.
“그런 것 치고는 시체가 너무 끔찍한데?
이전 살인 사건들도 사지 멀쩡한 시체가 하나도 없다고 들었어.“
청년은 크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알아요. 헛소리처럼 들리시겠죠.
하지만 진짜예요.
전 남한테 피해 안 주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 안에 무언가 끔찍한 게 있었어요.”
거기까지 말한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건 3년 전이었어요.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저를 조종하는 것 같았어요.
당연히 처음엔 무시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을 죽이고 있었어요.
그 공포심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거예요.“
거기까지 말한 청년을 눈을 지그시 감고는 감정을 조절했다.
“제가 처음 사람을 죽일 때 어떤 느낌이었을 것 같으세요?”
“글쎄, 희열을 느꼈나? 아니면 만족감?”
남자의 말에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즐겁다고 느낀 적 없었어요.
눈앞에 있는 사람을 찌를 때마다 내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어요.
그리곤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죠.
하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자살할 수도 없었죠.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남자는 약간 의외라는 듯 가만히 청년을 쳐다보았다.
살인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없었지만, 청년의 말에는 고통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청년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전과는 약간 달라 보였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라는 말이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복수했다는 쾌감 대신 허탈감과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만이 들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무어라 말을 건네려던 남자는 생각을 바꾸곤 입을 다문 채 돌아섰다.
그래도 살인자는 살인자다.
사연이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살인자는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
“됐으니까, 그런 소린 그만해.
약속대로 신고 따윈 안 할 테니 너도 약속 지켜.
난 갈 테니까 다시 마주치는 일 없도록 하자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던 남자의 등 뒤로 청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살짝 방심하셨죠?”
그 말에 놀란 남자가 급히 몸을 돌렸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청년은 어느새 남자의 뒤로 다가와 돌아서는 남자의 몸에 칼을 찔러 넣었다.
“신파에 참 약하시네요.
처음엔 경멸하면서 계속 틈을 안 보여 주시더니 말 몇 마디에 태도가 싹 풀어지셨어요.“
남자는 청년을 떨쳐내려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가 방금 사람을 죽일 때마다 못 견딜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했었죠?”
청년은 남자를 바닥에 쓰러트리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었어요.
처음 사람 몸에 칼을 찔러 넣었을 그때부터 말도 못 하게 황홀했거든요.“
청년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