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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 지어진 기도원은 거대한 크기의 건물이었다. 욱일교 신도의 피와 땀이 녹아든 결과물이 대단했다. 입구가 비밀통로로 숨겨져 있었지만, 산호의 도움으로 망령이 숨어 있는 예배당으로 내려갔다. 이것이 모두 사전준비를 제대로 한 산호 덕분이었다.
이제 단 하나, 망령을 없앤다면 더 이상 태규가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망령만 막을 수 있다면 자기 한 몸 바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두운 복도를 수차례 내려가서야 방음문이 보였다. 산호가 그곳이 망령이 있는 곳이라고 손짓했다. 태규는 신령이 준 귀절도를 품에서 꺼내어 들었다.
문이 열리자,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욱일교 중에 가장 열혈신도들만 모인 예배였다. 망령은 마치 신이라도 된 듯 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귀신이었다. 마치 진짜 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모든 갑옷을 갖추어 입었다.
“형님, 어째 신도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은가요? 이거 자칫하다가 망령한테 가는 길에 신도들에게 잡힐 것 같아요.”
산호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무턱대고 덤비다가는 신도들의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그래서 산호는 자신이 박정웅의 딸을 볼모로 삼아 모든 신도들을 밖으로 빼내겠다고 했다. 이미 박정웅 만큼 신격화 된 그의 딸 혜연이었다. 무모했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태규는 왼쪽 통로로, 산호는 오른쪽 통로로 흩어졌다.
이 얼마만큼 기다렸던가, 집안의 원수이자 민족의 원수인 망령을 드디어 자신의 손으로 없앨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망령에게 앞으로 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귀절이 세차게 울어댔다. 망령에게 반응을 한 것이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태규는 신도들이 나가기를 바랐다. 잠시 후, 산호가 기도를 하고 있는 혜연을 쏜살같이 낚아챘다. 혜연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삽시간에 예배당이 소란스러워졌다.
“전부 움직이지 마, 조용히 있어. 움직이면 당장 이년의 목을 그어버릴 것이야.”
신도들은 당황을 해버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다. 그저 영애의 안위가 걱정되어 울먹거리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산호가 혜연의 목을 부여잡고 칼로 위협을 하니까 네로의 기적처럼 길이 열렸다. 그리고 조금씩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마다, 마치 주술에 걸린 시체마냥 한 걸음, 한 걸음 따라 움직였다.
“그래, 용기 있으면 따라와 봐. 어디 와보라고.”
하지만 혜연은 의외로 침착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신도들이 살리려고 따라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산호에게 악마 같은 놈이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반응은 산호가 바라던 바였다.
산호는 신도들을 예배당 출구까지 유인해서 정말 혜연을 죽일 마음이었다. 광인은 광인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런 산호의 눈을 신도들 몇 명이 읽어버렸다. 산호의 광기 어린 모습에 그들이 점점 빠르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산호는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제발, 출구까지 버티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데 신도들의 무리 중에 어디선가 낯이 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산호의 아버지와 여동생이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토록 찾았던 가족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닌, 혜연이었다.
“영애님, 영애님...”
눈물을 머금고 걸어오는데,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당장 혜연의 목을 베고 가족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모든 신도들을 기도원 밖으로 빼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태규가 망령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버지와 동생들을 보고 있으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이 무얼 들고 달려드는지 보일 턱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에 놀아난 듯 산호의 정신이 갈수록 혼미해졌다.
“형님, 미안하우...”
산호는 아버지와 동생이 코앞에 왔을 때 위험을 감지했다. 그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쥐어져 있었고,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산호의 뱃속 깊숙이 칼날이 들어와 있었다. 살점부터 내장까지 베이는 고통이 이렇게 아픈 줄 몰랐다. 있는 힘껏 혜연의 목을 베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여동생이 오른손을 잡아 놓아주지 않았고, 아버지는 산호로부터 혜연을 구해내고 있었다.
“아... 아버지...”
이미 그들에게는 산호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욱일교를 위한 마음뿐이었다. 산호가 쓰러지자 배를 움켜쥐며 쓰러지자, 그제야 신도들은 광기를 폭발하며 달려들었다.
2
산호가 신도들을 데리고 나간 덕분에 드디어 망령과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오로지 망령을 없앤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다. 망령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태규를 응시하고 있었다.
“후토시?”
태규가 귀절을 손에 쥐며 망령을 향해 달려갔다. 신선이 준 목검 때문이었을까?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이미 망령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거대하게 변한 몸을 일으키며 칼을 뽑았다. 진정 신이 되었는지, 왜소한 일본인은 없었다.
하지만 태규의 목검이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자, 망령은 힘을 잃은 듯 당황해했다. 신선이 준 귀절은 진정 대단한 무기였다. 사람한테는 아무런 쓸모없는 나무작대기에 지나지 않지만, 귀신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명검이었다. 거기에 마치 태규는 도술을 부리듯 의자 몇 개를 가볍게 넘어갔는데, 순식간에 구로다의 눈앞까지 와서 검을 휘둘렀다. 특히 목검이 울어대는 것이 귀신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했다. 필히 망령은 아직 신이 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구로다는 어마어마한 제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태규에게 또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비참했다. 망령은 엄청난 음기를 입으로 내뿜으며 태규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귀신의 힘은 거기까지였다. 신선이 준 목검에 닫자마자 순식간에 칼날이 부러졌다.
“박정웅, 바카야로!”
망령은 이 모든 것이 박정웅의 탓이라고 했다. 그가 권력에 도취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망령은 진작 태규를 죽이자고 했건만, 그가 듣지 않아서 벌어진 일 같았다. 이제 구로다는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었다.
태규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귀절을 휘둘렀다. 이번만큼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망령의 팔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망령은 처음으로 두려웠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까봐 겁이 났다.
“후토시, 살려줘. 제발, 살려줘...”
망령이 비굴하게 빌었지만, 어림없는 짓이었다. 태규에게는 모든 행동이 개수작에 불과했다. 다시 한 번 신선의 목검을 휘둘러 사지를 절단했다. 절단 된 구로다의 몸에서는 검은 피가 넘쳐흘렀다. 급기야 그의 입에서도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장군님, 장군님...”
뒤늦게 달려온 신도들이 그 광경을 보자, 울어댔다. 그리고 일제히 태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빨갱이 놈의 머리를 베어버리자.”
“배신자, 빨갱이 놈!”
태규는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어서 목검으로 귀신의 머리를 잘랐다. 검은 핏물이 무대를 가득히 덮었고, 구로다의 형체는 사라졌다. 그리고 기름을 부어 망령의 물건을 태워버릴 찰라, 이미 광기를 내뿜는 신도들이 달려왔다. 하는 수 없이 망령의 물건을 들고,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귀절은 울음을 멈췄다. 태규를 잡으려는 신도들의 손들을 목검으로 쳐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의자를 넘었던 능력도 사라졌다. 모두가 자신을 죽일 듯 쫓아오는데, 망령과 처음 대면을 했을 때보다 무서웠다.
“산호는 어떻게 된 걸까?”
힘겹게 예배당의 출입구를 올라왔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산호는 십자가에 못이 박힌 예수처럼 온 몸이 찢겨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를 들고 오는 무리 중에 산호의 여동생과 아버지도 있었다. 이미 그들의 기억 속에 산호는 없었다. 잘 못된 믿음이란 혈육의 정도 없는 것이었다.
“산호, 이친구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희생만 시켜서 미안하다...”
태규는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광신도의 무리들과 하나하나 싸워가며 길을 만들었다. 개중에는 흉기를 든 자들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피해갔다. 숨이 차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어갔다. 그러나 아직 망령의 물건을 태우지 못했다. 이것만 완전히 없앤다면, 죽어도 좋았다.
“거의 다 왔다... 나가서 이것만 태우면 모든 것이 끝난다.”
광신도들이 쫓았지만, 태규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부어서 탈출에 성공했다.
3
도망치고, 또 도망을 치고 보니 박정웅을 죽인 낙희관(樂喜館)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태규였다. 망령의 투구와 갑옷을 바닥에 던진 후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속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였다.
“더 이상 일본의 잔재 속에서 민족이 고통 받는 일이 없기를...”
성냥을 망령의 물건에 던지려는 찰라, 뭔가가 머리를 강하게 ‘퍽’하고 내려쳤다. 순식간에 쓰려졌지만,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안 간힘을 썼다. 누군가가 망령의 물건을 가져가고 있었다. 초점이 흐릿하지만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정웅의 딸 혜연과 그녀의 곁에 항상 머무는 민봉남이었다.
당장, 저들을 막아야 하지만 이상하게 눈이 감겼다. 설상가상으로 먼 곳에서 신도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뭐라고 했소. 끝나지 않는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한 개인만으로 바꿀 수 없는 법이라 하지 않았소? 하지만 처사님의 도전은 훗날 많은 사람들을 한 마음으로 모을 것이요. 그 마음이 부디 더러운 불의와 얼룩진 권력의 횡포로부터 이기길 빌겠소.”
노승은 태규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욱일교의 광신도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좀 전까지 다 죽어가는 인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니 말이다.
“이거 분명 욕 얻어먹게 생겼는데? 아니, 우리들이 죽을 수도 있어. 교주님을 죽인 작자를 코앞에서 놓쳤는데... 이거 어떻게 하지?”
단풍이 한창 울긋불긋하게 물들 무렵, 김태규는 박정웅을 총으로 사살했다. 그리고 그가 모시는 망령을 처단하려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친일파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나라와 겨레를 버릴 수 없었던 김태규, 편하고 쉬운 인생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끝나지 않는 지배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걸었던 인물로 평가 받을 것이다. 물론 욱일교를 비롯한 친일파들에게는 사탄이자, 테러리스트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언제 끝나지 않는 지배로부터 해방이 될까?
출처 | 꽤 오랫동안 질질 끌었던, 끝나지 않는 지배가 완결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부족하고 서툴었지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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