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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와 나의 아내
나는 언제나 개의 얼굴이 탐욕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날 아내와 함께 보았던 개도 예외는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나와 아내는 서울에서 한참 벗어난 역 주변에 있는 시끌벅적한 시장으로 놀러 갔다. 번화가도 좋지만 특별한 곳에 가보고 싶다는 아내의 주장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라고 여기저기 돈 쓰고 다니면 아깝다는 생활신조도 한몫을 했으리라.
하얀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시장에는 하얀 닭털이 흩날렸다.
우리가 갔던 시장은 주로 개나 닭을 잡아 파는 곳이었다. 아내는 길거리에서 파는,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모를 핫도그를 들고서 시장을 돌아다녔다. 한국에서 만든 인도풍의 부처 동상이나 노인이 염소를 끌고 다니는 이색적인 풍경이 눈을 즐겁게 했다. 정신없이 돌아다닐 무렵 우리는 작은 철창에 갇힌 작은 개를 보게 되었다.
개는 5000원이라는 명찰을 목에 건 채로 철장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자기, 저거 사다가 키우자. 크리스마스 선물로 딱이야."
아내는 나를 바라보며 강력하게 요구했다. 아직도 임신을 하지 못했던 탓일까 아니면 그저 적적했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거절했다.
"여보야, 나도 일 나가고 당신도 일 나가면 저 개를 누가 돌봐줄 건데? 개도 외로움을 느낀대."
"그래도…. 여기에 내버려 두면 죽지 않을까? 우리 어린 목숨 하나 살려주는 것 치고서 기르자. 응?" 아내는 자꾸 보챘다.
나는 철장 주변에 널려 있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뜬금없지만 왜 저 쇠사슬에 걸린 것이 내가 아닌가, 이 개가 쇠사슬에 뒷덜미가 뚫려야만 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목덜미가 시큰했다.
"그래, 그러면."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아내는 지갑에서 5000원을 꺼냈고 주인장은 검은 비닐봉지에 개를 대충 쑤셔 넣었다. 아내는 식겁하며 봉지를 버리고 개를 품에 안았다. 아내는 개장수를 쏘아봤지만, 개장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지폐를 앞주머니에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개 사료도 사고 명찰 달린 목줄도 샀다. 아내는 명찰에 '산타'라고 적었다. 크리스마스에 사 온 개다운 이름이다. 우리의 작은 반지하 원룸에는 개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쩐지 개가 나보다 더 비싼 음식을 먹고 더 잘 지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내의 밝은 얼굴을 보니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 웃으며 두 줄이 뜬 임신 테스트기를 나에게 내밀었다. 덕분에 아내가 근무하던 직장에서는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이런 작은 일로 우울해 한다면 정말 꼴불견일 것이다.
나는 지질하게 방구석에 앉아 있는 대신 미래의 아이와 아내를 위해 오토바이를 샀다. 퇴근 후 배달앱을 통해 라이더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었다. 갈수록 취침 시간은 늦어졌지만 나는 책임감과 사랑을 원료 삼아 부지런하게 치킨과 족발을 날랐다.
여느 집안이 그렇듯 위기가 없진 않았다. 아내가 뒤집어 벗어 놓은 양말을 지적하면 나는 왜 아직까지 바닥을 닦지 않았냐며 응수했다. 정말 사소한 일로 말싸움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나의 말투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공격적인 어투로 말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것만큼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이었다. 가끔은 아내가 일부러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잘 지나갔다.
싸웠다가 화해하고 또 싸우고 다시 화해하는 일상의 반복.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은 그런 날들이 흘러갔다. 문제없는 집안은 없다. 그런 가정이 있다면 분명 누군가가 내색하지 않고 속앓이를 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나는 바람에 조금씩 깎여가는 바위처럼 무미건조한 날들에 의해 서서히 스러졌다. 반면 아내의 배는 커졌으며 개의 덩치도 커졌다. 이제 개는 두 발로 서면 내 가슴까지 닿을 정도다. 아내는 새벽에 돌아온 나를 보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자기, 우리 산타 병원에 좀 데려가야 할 것 같아."
"응? 어디 아파?"
"요새 통 기운이 없어. 어디 아픈 곳 없나 검사 좀 받아봐야겠어."
얼마나 아픈 걸까? 개를 쳐다보았다. 개의 눈은 흐리멍덩했고 코에는 물기가 없었다. 요새 집안 여기저기에 배설물을 흘리고 다니던데 아마 아파서 그랬던 것일까.
"아, 그래. 그럼 다녀와야지. 다녀오는 김에 중성화 비용도 좀 물어봐. 요새 개들은 다 시킨다는데?"
"알았어."
"나는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해서 들어가 좀 잘게."
아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다음 날 저녁 부업을 가기 전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잠깐 집에 들렀을 때였다. 문을 열자마자 아내는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채 아내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산타가 많이 아파."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개야 또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개는 이미 가족이 된 듯하다. 아내가 저렇게 눈물을 흘리니 나도 모르게 개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치료하면 되지. 요즘은 동물도 대학병원에 데려가잖아. 다 잘 될 거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양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차려입은 다음 오토바이를 타러 나갔다.
*
"MRI 촬영을 비롯한 초진 비용은 50만원 되겠습니다." 카운터의 간호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카드를 내밀었고 영수증이 올라오는 모습을 가만히 시켜보았다.
산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의사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초기 혈액암입니다. 의외로 개도 암에 곧잘 걸립니다. 사람도 암에 걸리면 돈 많이 들어가시는 거 아시죠?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시다면 저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특히 돈 문제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집도한 케이스 중에서는 3000만원 까지 지출하신 분도 계십니다. 견주분께서 잘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돈 때문에 산타를 죽인다니. 그건 안 될 일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산타를 살릴 생각이다. 남편이 출근한 다음부터 새벽에 돌아오기까지 내 곁에 있어 주는 가족은 산타뿐이다. 무엇보다 산타를 버리고 난 후의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내 품 안의 산타는 떨리는 머리를 들어 내 뺨을 핥았다.
*
반지하는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그깟 개새X 한 마리 때문에 그렇게 돈을 썼다고? 남편이 잠도 못 자고 새벽바람 맞아 가면서 남이 처먹을 음식 나른 돈으로? 돌아버리겠네."
3시간밖에 자지 못해서 가뜩이나 날카로워져 있는 신경은 우연히 확인한 통장 잔액으로 폭발했다. 어느새 아내는 개 병원비로 천만원이나 써버렸다.
"산타는 내 가족이야. 당신 같이 집에 없는 사람보다 훨씬 나아! 그리고 돈은 당신만 버는 줄 알아? 나도 지금까지 번 거 있어!" 아내는 발악하듯 되받아쳤다.
나는 아내의 뺨을 때렸다.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이러는 줄 알아? 정신 차려!"
"컹! 컹!" 개는 나를 도둑 보듯 짖어댔다.
"하. 이제는 개새X도 지랄하네."
아내는 별다른 말없이 젖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집을 나가버렸다. 투룸을 구했으면 다른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었을 텐데.
머리를 싸맨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개는 나를 향해 끊임없이 짖어댔다. 순간 저 개만 없다면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개를 집에 들인 순간부터 가정 사업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래 저놈의 개만 없으면….'
나는 평소처럼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개를 강제로 안았다. 개는 발버둥 치다 내 품을 빠져나갔지만 병든 개답게 결국에는 힘이 빠졌는지 축 늘어졌다. 옆 동네 공원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나는 누가 볼까 봐 개를 품 안에 깊숙이 넣고서는 공원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도 퇴근 시간 이후라서 공원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에 버려진 박스에 개를 놓아주었다.
"제발 집에 오지 마라. 너만 없으면 돼."
개가 말을 알아들었을까. 나도 정신이 나갔나 보다.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라도 따라오지 않을까 뒤를 쳐다보았지만 개는 따라오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
집에서 뛰쳐나와 얼마나 걸었을까.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더 나아가서는 산타가 아프다는 현실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었다. 어째서 누구는 병에 걸리고 누구는 건강한 걸까.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산타를 내버려 두고 내가 어딜 간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 고개를 들어보니 옆 동네까지 와버렸다. 돌아가야겠지.
"컹! 컹!"
어디선가 익숙한 개 짖는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공원 구석에는 학생들이 뭔가를 구경하는 듯 몰려 있었다.
"이 개 어디 아픈 것 같은데? 못생겼다."
"그러게, 이렇게 생겨선 아무도 안 주워갈 것 같은데."
"요즘 누가 이렇게 큰 개를 아파트에서 키워?"
"그러면 곧 안락사 행이네"
"불쌍하다."
"너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해라. 말에 영혼이 하나도 없다?"
나는 호기심 반 혹시나 하는 마음 반으로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개는 '산타'라고 적힌 명찰을 단 채로 종이 박스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철장 속에 웅크리고 있던 바로 그 모습으로 말이다. 산타가 왜 여기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이 버린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내가 산타를 안고 돌아가자 남편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산타를 꽉 안고 잠들었다. 산타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
아내는 개를 치료하는데 500만원을 더 썼다. 내 자식과 아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아낌없이 쓸 것이다. 하지만 개한테 1500만원을 쓰다니. 개가 가족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지 현실이 되면 안 된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다.
나는 저번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확실한 방법으로 개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찍 잠든 아내의 품에서 빠져나온 개를 안은 채 오토바이를 탔다. 지금 들어있는 기름의 딱 반을 쓸 때까지 달릴 것이다. 그곳에 개를 버리면 돌아오지 못하겠지.
그렇게 난 이름도 모르는 어느 다리에 개를 버렸다.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테니 돌아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속도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속도감은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 시원한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 세계에는 개도 없고 산타도 없다.
돌아온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갔다 온 척을 했다. 아내는 나를 의심했지만 알리바이를 대니 결국 산타가 집을 나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성실하게 일한 대가이다. 아내는 유산한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나는 아내에게 코끼리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죽을 때가 되면 무리에서 벗어나는 코끼리의 습성처럼 산타도 죽을 때가 되어서 우리 가족을 떠난 것이다. 우울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잃어버린 것에 너무 집착하면 우울이 된다. 그러니까 깔끔하게 잊고 행복하게 살자. 우리 아기를 생각하자. 이런 말들을 하니 아내도 수긍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개를 버린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나는 부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개를 버리지 않았다면 수술비로 날렸을 돈으로 아내를 위한 깜짝 선물을 샀다. 요즘 아내는 임신으로 입맛이 바뀌어서 순대를 자주 찾는다.
순대가 든 비닐봉지를 부스럭대며 집 문을 열었다. 모든 불이 꺼진 채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개가 헐떡이는 소리다.
나는 황급히 불을 켰다. 침대에서 잠든 아내의 사타구니에 어떤 개가 코를 박은 채 헐떡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랫도리를 아내의 다리에 비비적대고 있었다. 개가 움직이면서 목에 달린 명찰도 달랑거렸다. 명찰에 적힌 단어는 익숙했다.
'산타'
*
비명 같은 소리에 잠을 깼다. 단 한 번의 비명이었지만 어딘가 심장이 발까지 떨어지는 듯했다. 흐린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건 바닥에 널브러진 남편의 신발이었다. 남편이 돌아왔나 보다. 그런데 남편은 어디 있을까. 나는 불안에 휩싸였다.
사람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불행을 회피하기보다는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그 습성. 나는 불행을 직감했지만 기어코 화장실로 향했고 그 장면을 보고 말았다. 화장실 바닥은 진득한 붉은 얼룩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의식에 검은 장막이 드리웠다.
*
둔탁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단 한 번의 소리였지만 어딘가 피가 머리까지 솟구치는 듯했다. 얼굴에 튄 피를 닦고 보니 아내가 쓰러져 있었다.
그 이후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119로 전화를 했고, 내 옷과 얼굴에 묻은 피를 본 구급대원은 112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현재 경찰서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개가 부인을 어떻게 했다. 이 말씀이십니까?" 경찰이 미심쩍게 물어봤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러니까…"
"에라 이 개만도 못한 녀석아. 사내구실 하나 똑바로 못 허냐?" 뒤편에 쉬고 있던 주정뱅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 조용히 좀 하세요! 푸흐흐흐." 내 앞의 경찰은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다른 경찰은 비웃던 경찰의 머리를 서류철로 때리더니 완곡한 말투로 나를 달랬다.
"선생님, 사실대로 말씀 안 하시면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일시구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
"네?"
"돈 때문에 개를 죽였습니다."
돈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 나오자 그제야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중언부언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장에서 주워온 개가 큰 병에 걸렸고 돈을 많이 썼다. 그래서 추가 지출을 막기 위해 개를 버렸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버린 개가 돌아온 듯하다. 혼자 있던 아내는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이런 진술을 하자 경찰은 무표정한 말로 자판을 두들겼다. 나를 가지고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일까 보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한 후에도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기절한 아내의 몸에 자상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나.
그렇게 경찰서 철창 안에서 새벽을 보내게 되었다. 이미 주정뱅이는 이불을 베개 삼아 곯아떨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주정뱅이의 코골이를 들으며 개와 아내를 생각했다. 아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봤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 밝자 나는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아내는 12인실 병원의 구석진 곳에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보, 몸은 괜찮아?"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가만히 쥐어보았다.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 나는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절거렸다.
"중성화 수술을 시킬 걸 그랬어."
"내가 여보 주려고 순대 사 왔는데 그걸 못 먹었네."
"여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병원 밥은 맛이 없잖아."
"우리 해외여행 가기로 했잖아. 기억나?"
그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갈색 양복에 검은 구두를 신은 남자가 나와 아내를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변호삽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변호사라니? 아내는 고개를 창가로 돌리며 내 손을 뿌리쳤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찝찝한 기분으로 병원 옥상으로 변호사를 따라갔다.
"담배 피우십니까?" 변호사는 친한 친구라도 되는 양 말했다.
"아뇨, 끊었습니다. 건강이 중요하죠."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변호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직 두 분 말씀을 못 나누셨나요?"
"네? 무슨…"
"좋습니다. 쉽고 빠르게 가죠. 이혼입니다. 그것도 한쪽의 명백한 과실로 이혼 사유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런 케이스는 재판까지 끌고 갈 것 없이 원만하게 합의 이혼으로 하는 게 양쪽 모두에게 좋습니다."
나는 담배 연기 너머로 쏟아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개를 죽였기 때문에 양육권을 얻을 수 없으리라는 것. 그리고 매달 양육비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 재판을 해봤자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 아내 편에 선 변호사라서 그런지 아내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이야기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하지만 재판의 승산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아내와 법정 다툼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재판을 통해서 내가 얻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건가. 허탈감이 들었다.
더는 병원에 있을 수 없었다. 아내를 만나봄 직도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프고 피곤했다. 희미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비틀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고요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경찰이나 구급대원들이 개를 치워 줄 리가 없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개를 담았다. 나는 1500만원이 든 봉투를 들고선 원룸 뒤편의 쓰레기장으로 갔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주변에는 고양이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바닥에는 찐득한 국물이 흘렀다. 고양이들이 비닐봉지를 찢고선 음식 찌꺼기를 먹고 있었다.
고약한 냄새 때문일까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내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자 고양이들은 사람의 낌새를 알아채고 달아났다. 순간 이곳에 개를 버려도 되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합법과 불법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나를 제지했다.
나는 잠시 음식물 쓰레기장 앞에 서 있었지만 이내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까지 아니 하늘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피곤했다. 이미 출근은 물 건너간 상태이다. 문자로 병가 처리를 부탁했지만 답장은 묵묵부답이다. 병가는 핑계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어딘가가 아프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다. 혈액암처럼 온몸을 도는 혈액을 통해 모든 곳에 병에 걸린 걸지도 모른다. 이미 병은 나와 한 몸이 되었다.
멍한 정신으로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 앞에 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를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거울 너머에서 개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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