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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저주 해본 적이 있는가? 저주는 미워하는 사람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저주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일어나던가? 대부분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에 걸린 사람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저주를 받은 당사자가 흉을 당하기도 하고, 흔히 내려오는 말처럼 세대에 걸쳐서 저주가 이어지기도 하더라. 누군가는 저주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하더라.
김성대, 이룰 성(成)에 큰 대(大)를 써서 크게 이루라며 할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녀석이 반장선거에 나와서 했던 말이다.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반장이 되었다.
녀석에게는 병이 하나 있었는데, 시력의 문제였다. 다행스럽게도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었다. 녀석의 말에 의하면, 자꾸 동쪽 방향을 바라보면, 아주 멀리서 점 하나가 보인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눈을 감아도 보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을 아무 방향에 세워놓아도 정확하게 동쪽을 집어냈다. 마치 살아있는 나침반 같았다.
성대는 성격이 징그럽게 착했다. 부잣집 귀하디귀한 외동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청소를 비롯한 난감한 일을 자청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의 도시락을 매일 싸오기도 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나눌 줄 아는 녀석을 누구라도 안 좋아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대와 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학교는 달랐지만, 녀석과 사는 곳이 가까워 서울생활이 심심하지 않았다. 물론 녀석은 신촌 근처의 고급 오피스텔에 살았고, 나는 좁디좁은 원룸을 간신히 얻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지친 몰골로 나를 찾아왔다. 안 먹던 술을 사왔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홀짝홀짝 마시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고? 무슨 일 있는 거가?”
녀석은 한 숨을 쉬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그곳이 고향에서 가리키던 동쪽임을 직감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동남쪽이지만 말이다. 어떻게 알았냐면, 항상 녀석과 늘 그런 장난을 쳤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보여...”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단지 고민이 있어서 나를 찾아 온 줄 알았다. 가령 말 못할 연애문제라든지, 영장이 나왔다든지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이내 녀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치 무서운 것을 본 것 마냥.
“어릴 적부터 동쪽 저 멀리서 보이던 점이 말이야.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어. 당시에는 콩알만 한 크기라서 체감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형태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그게...”
녀석의 말은 동쪽에서 보인다는 점이 어릴 때보다 지금이 훨씬 가까이 보인다는 뜻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왜 심각한지 알 턱이 없었다. 솔직히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그것이 뭐가 문제인가? 동쪽으로 안 보면 그만 아니냐며 영혼 없는 위로를 했다. 하지만 녀석은 이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친구야, 별 것 아니면 다음에 이야기 하자.”
다음 날에 아르바이트도 있고, 시험기간이라서 녀석을 빨리 보내고 싶었다. 말을 끊어버려서 기분이 나빴을까?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문제는 이후부터 녀석을 볼 수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몇 번이나 집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우편물이 가득 쌓인 걸 보니, 집에 없는 것이 분명했다.
나 역시 일상의 덫에 걸려 허덕대다가 영장이 나와서 입대했다. 남들 다 하는 기나긴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갔을 무렵, 녀석의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녀석이 정신병에 걸려서 몇 년간 본가에만 있다는 것이다. 믿겨지지 않았다. 설마 군대를 가기 싫어서 일부러 정신병에 걸린 척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 녀석에게 예외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장 녀석의 집을 찾았다.
“성대의 고등학교 친구인 영민이입니다.”
우리 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값비싼 도자기들이 나열 되어 있었고, 거실에는 박제 된 동물들 때문에 동물원이 연상 되었다. 특히나 눈을 부릅뜬 채 거대한 호랑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죽은 것이라지만 눈빛에 기가 죽어 고개가 절로 돌려졌다.
성대집의 가정부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성대의 방을 가리켰다. 조심스럽게 방문 앞을 다가갔다.
“성대야, 내 영민이다. 니 집에 있다는 소식 듣고 제대하자마자 왔다.”
성대의 방에서 뭔가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잠시 후 터벅터벅 천천히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방문을 완전히 열자, 냄새보다 더욱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예전의 모습은 온대간대 없고, 온 몸이 말라버린 노인이 한 명 서있었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성대는 나를 보고 반가웠는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오.. 오랜만이다. 영민아...”
녀석의 목소리가 쉬어있었다. 당황했지만, 분명 성대가 틀림없었다.
“임마야, 도대체 우째 된 거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모습이 그렇게 변한 것이 안타까웠다. 눈물이 났다. 도대체 무엇이 녀석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한참을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는 내내, 소름이 돋기도 했고 이해하지 못함에 답답했다.
어릴 적부터 보이던 그 점이 서서히 가까이 왔다고 했다. 스무 살 어느 날, 작은 점에서 사람의 형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마, 사람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형체가 더욱 선명해졌다. 괴롭고 무서웠다고 했다. 왜냐하면 멀쩡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해서 나의 자취방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이후 동쪽으로 시선을 안 두려고 노력했지만, 어떻게 안 볼 수가 있겠나? 문제는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하게 그것이 보인다고 했다.
“도대체, 그게 뭔데? 도대체 뭔데 네가 그러는 거고?”
성대는 갑자기 ‘스윽’하고 돌아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댔다.
“가까이 온다, 가까이 온다, 가까이 온다...”
알 수 없는 소리만 반복했다. 나는 성대의 손을 잡았다.
“임마야, 정신 좀 차리바바라, 성대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성대가 다시 내 손을 꽉 잡더니, 상기 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저기 동쪽에 귀... 귀신... 너도 보이지? 그치?”
당최 그 말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녀석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니, 전염이라도 된 듯 손끝부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녀석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저... 저기 말이야. 검은 옷을 입고 피를 토하며 웃는 여자가... 가까이 온다, 가까이 온다, 가까이 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녀석은 이 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가까이 온다, 삼십 미터... 가까이 온다, 이십구 미터... 영민아, 저기...”
더 이상 이렇게 두면 큰 일이 날 것 같아서 복도로 나가서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습니까? 성대가 이상합니다. 구급차 불러야 합니다.”
성대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가정부 몇몇이 급하게 뛰쳐나왔다. 나는 동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성대를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녀석의 발작을 막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저한테... 저는 살면서 잘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녀석은 허공을 보면서 계속 혼잣말을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위협을 받는 것처럼 벗어나려 했다. 있는 집 집안이라서 그런지, 구급차가 얼마 안 돼서 금방 왔다. 구급대원 몇 명이 급하게 성대를 들 것에 옮겼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내가 성대네 집에 갔을 때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한편으로는 녀석이 군대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의심도 가져봤지만 몰골을 보아하니,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초조하게 집에서 기다리기를 며칠 째 지났을까, 성대네 집에서 연락이 왔다. 성대네 가정부였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대 군이 자살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꿈을 엄청나게 꾼다. 전화기 너머로 가정부의 떨리던 목소리, 등골이 따끔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벌써 30년도 넘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붕괴되고 있는 건물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장례를 치르던 날,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마음을 다 잡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겨우 눈앞에 귀신이 보인다고 해서 자살을 한다고? 이해되지 않을 일이다. 나 같으면 보이더라도 외면하겠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한참을 울고 있는데, 아주 난리가 났다. 성대의 부모님이 대판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대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마구 때리고 있었다. 성대 어머니 말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인 건 다름 아닌, 성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 졌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성대 어머니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부엌에서 칼을 가져와 들었다. 여러 사람이 마치 경호원이 된 듯 팔목을 붙잡아 손에서 칼을 때어냈다. 그러자 분함에 울분을 토해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너무 궁금했다. 나의 죽마고우인 성대가 도대체 왜 죽은 것일까? 장례를 마치고 성대 어머니를 찾았다. 그녀는 단 며칠 사이에 폭삭 늙어 있었다.
“성대가 왜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성대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말을 하려면 할수록 성대 생각에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서였다. 다만 나에게 눈물을 훔치며 성대가 쓴 유서를 내밀었다. 담담하게 녀석이 쓴 유서를 읽어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믿겨지지 않았다. 무섭기도 하고,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시어머니가 말했어, 성대는 저주를 받았으니까 조심하라고...”
그러니까...
성대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악명 높은 친일파였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일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온갖 친일 행위를 다했다.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조선인들을 때려잡는 건 당연했고, 일본의 군자금을 대기 위해서 강제로 조선인의 재산을 빼었다고 했다. 그런 적극적인 친일활동으로 일본정부가 주목하는 인물로 평가 받으며 부와 권력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힘없는 조선인의 재산을 약탈 할 때였다. ‘영기네’라고 불리는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기네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서방과 아이가 있는 여자에게 흑심을 품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당신의 첩이 되면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조 있는 여자였고, 오히려 그런 성대 할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일침을 놓았다. 여기에 화가 난 성대의 할아버지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남편과 아이를 처참하게 죽였다. 눈앞에서 남편과 아이가 잔인하게 죽어 가는데, 누구라도 멀쩡한 사람이 있겠는가?
“내 지금은 시대를 잘못 만나서 아무런 힘이 없는 미천한 몸이다. 하지만 죽어서도 네놈이 나에게 한 잔인한 행동을 잊지 않을 것이야. 네놈 집안에 가장 잔인한 저주를 퍼부어서 네놈 숨통이 끊기기 전에 내가 겪은 고통의 수십 배를 느끼게 할 것이다.”
영기네 엄마는 자리에서 혀를 깨물어 자결했다. 그러나 곧바로 숨통이 끊긴 것이 아니라, 피를 토하면서 성대의 할아버지에게 다가 왔다. 성대 할아버지는 마치 귀신처럼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이 무서웠던지, 그녀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 피가 터지며 온 몸에 넘쳐흐르는데, 검은 옷을 입은 것처럼 물들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성대 할아버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하지만 결국 기력을 다했던 것일까? 몇 발자국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성대 할아버지는 재수가 없다며 하인들을 시켜 최대한 멀리 시체를 버리라고 했다.
이후 친일로 쌓은 업적으로 지역 유지가 되었다. 초기에는 혹시 모를 저주에 걱정을 했지만, 거침없이 부와 명예를 쌓은 뒤라 걱정은 사라졌다. 그야말로 대대손손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그로인한 저주가 손자인 성대에게 왔을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성대의 유서에는 스무 살 즈음에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었다. 하루, 이틀... 매일이 조금씩 가까워 졌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더욱 빠르게 다가왔다고 했다. 피를 토하며, 성대에게 다가오는데, 그 모습이 흡사 영기네 엄마 같았다. 아니, 분명 영기네 엄마가 틀림없다. 그녀가 성대에게 저주를 건 것이 틀림없다. 결국 그녀는 성대의 코앞까지 가까이 와서 성대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왜냐하면 유서의 마지막에 “가까이 왔다. 더는 견딜 수가 없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성대의 어머니는 시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했다. 성대가 어릴 적부터 용한 무당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성대의 아버지가 병적으로 미신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결국 아무런 대책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미신에 의지하려고 하나’라나, 뭐라나? 결국 성대의 어머니는 아들이 그녀의 저주에 걸려서 죽은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손 한번 못써보게 한 성대의 아버지를 원망했다.
몇달 뒤, 성대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비극적인 소식은 얼마 안가서 성대 아버지 역시 목을 매고 스스로 숨을 끊었다.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었다. 내가 서른이 넘을 무렵에 성대의 할아버지는 아들과 손자를 잃은 충격에 벙어리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현재 내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까, 얼핏 성대의 할아버지가 힘겹게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연명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성대의 할아버지는 저주를 받은 것일까? 자업자득의 이치인 것일까?
출처 | PS : 오늘 시간이 조금 남아서 새 이야기를 준비 해보았습니다. 만약에 퇴고를 하면 시간이 더욱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한번에 쓴 이야기를 업로드 합니다. 이후에는 조금 더 개선하여 브릿G<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46392>에 업로드 하겠습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여러분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저의 욕심입니다 ㅠㅠ 늘 감사드립니다. 빠른 시간 안에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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