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2010년 5월 MBC가 준비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특집 방송에 대해 불방 압력을 가한 정황이 확인됐다. 당시는 지방선거를 보름 정도 남겨둔 시점으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73)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58) 등이 출마한 상태였다. 김재철 전 MBC 사장(64)은 이들을 ‘노무현의 졸개’로 표현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노 전 대통령 관련 방송을 저지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경향신문이 확인한 2010년 5월17일 국정원 작성 ‘노무현 보도 관련 선거법 위반 명분 보도 제재 방침’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2010년 5월13일 MBC를 담당하던 국정원 관계자는 MBC 임원 ㄱ씨에게 “원세훈 원장님 등 우리 원 지휘부에서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맞아 MBC가 이를 부각 보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국정원은 MBC <시사매거진 2580>이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당일인 그해 5월23일 노 전 대통령 특집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ㄱ씨는 다음날 국정원의 입장을 김 전 사장에게 보고했다.
문건은 김 전 사장이 선거 국면임을 앞세워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특집 보도를 제지하려 했다고 적시했다. 그해 6월2일 예정된 지방선거에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평가되는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 송영길 민주당 의원(54) 등이 각각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인천시장에 출마했다.
김 전 사장은 지방선거를 ‘여권 대 노무현의 선거’로 규정했다. 그는 “평상시 전직 대통령 서거 1주기라면 나름대로 특집도 해볼 만한 상황”이라면서도 “이번은 선거 국면이고, 한명숙·유시민·송영길 등 노무현의 ‘졸개’들이 대거 수도권 등 전면에 나서 자신들의 상품성이 아니라 노무현을 내세워 치르는 선거”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김 전 사장은 “공영방송을 자칭하는 MBC가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노무현 특집을 하는 것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문건에 적시돼 있다.
그러면서 김 전 사장은 사내 임원진 기구를 통해 노 전 대통령 특집 방송을 제재할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은 김 전 사장이 격주 화요일마다 사장 주재로 보도부문 간부들이 모여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 여부를 점검하는 ‘리뷰보드’를 통해 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방송 저지를 시도하겠다고 했다고 적시했다. 또 선거관리위원회와 법률 전문가 등에게 MBC의 노 전 대통령 특집 방송이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여부 등을 문의하라고 ㄱ씨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ㄱ씨는 “중견 간부들이 일선 PD와 기자들을 어떻게 제압해 나가는지가 관건으로 보인다”고 국정원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 관계자는 “사장 등 MBC 주요 간부진을 대상으로 노무현 서거 관련 특집 방송을 하지 못하게 계속 협조해 가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문건에 적시됐다. 그러나 <시사매거진 2580>은 그해 5월23일 ‘바보 대통령 노무현, 서거 그 후 1년’제목의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