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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산을 오르고 있던 내 귀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을 만큼 인적이 드문 이곳에
나 말고도 누군가 있는 모양이었다.
마주쳐봐야 그다지 좋을게 없었으니 돌아갈까 했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내 호기심을 자극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소리는 땅을 파는 소리였다.
난 짐과 랜턴을 한쪽에 내려놓고는 소리나는 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누군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땅을 파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난 최대한 발소리를 줄이고 다가가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자세히 보니 20대 중반은 되었을까 싶은 어린 친구였다.
겁에 질린 듯 표정에는 여유가 없어 보였고
조금은 어설픈 삽질로 제법 큰 구덩이를 파내려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던 난 구덩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가 구덩이 근처에 커다란 자루가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자루는 마치 핏자국처럼 검붉은 얼룩이 군데 군데 나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집중을 하던 그때 내 눈으로 불빛이 확 비쳐 들어왔다.
“거기 누구야!!”
그 소리에 난 급히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다급하게 나를 뒤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산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아까 짐을 놔둔 곳에 멈춰서 양손을 올리고는 돌아섰다.
녀석은 날 보며 당황한 채로 내 앞에 멈춰 섰다.
“너 뭐야? 언제부터 보고있었어?”
녀석은 삽을 들고 당장이라도 내게 휘두를 기세로 소리쳤다.
난 여전히 양손 손을 든 채로 녀석에게 말했다.
“잠깐. 진정해! 놀랄 필요 없어. 난 너랑 같은 편이야.”
내 말에 녀석은 의아해 하며 내 발치에 놓인 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벗어놓은 헤드 랜턴 옆에 꽂힌 삽과 축 늘어져 있는 시체를 발견했다.
난 미소를 지으며 녀석에게 말을 건네었다.
“봤지? 우린 같은편 이야.
나도 너처럼 이걸 처리하러 왔어.“
녀석은 복잡한 표정으로 삽을 내렸다.
난 시체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그 녀석과 함께 구덩이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야.
뭐 보아하니 아직 초짜 같은데,
그럼 내가 선배가 되는건가?”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난 웃으며 시체를 구덩이 옆에 내려 놓았다.
“넌 정말 운이 좋은거야.
이래 뵈도 내가 엄청난 베테랑이거든.
내말만 들어도 공부가 많이 될거야.“
녀석은 구덩이로 내려가 다시 삽질을 하며 대답했다.
“경험이 엄청 많으신가 봐요?
얼마나 죽여 보셨어요?“
난 크게 웃고는 구덩이로 내려가 삽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글쎄.... 안세어 봐서 몇 명 인지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중요한건 지금까지 한번도 안걸렸다는 거지.
난 뒤처리가 확실 하거든.
너도 지금 제일 걱정되는게 그거 아냐?
들키면 어쩌나... 잡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
맞지?“
녀석은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마.
내가 장담하건데 내말만 잘 들으면 두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어.
그런 의미에서 장소는 정말 잘 정했어.
이 산이 정말 명당이거든.
처음 치곤 아주 훌륭한 선택이야.“
멍하니 날 보고 있는 녀석을 보며 난 말을 이었다.
“우선 알아야 할게 있어.
땅을 팔 때는 적어도 3미터 이상 파야 해.
그래야 땅위에 벌레도 안 끼고 숨기기 쉽거든.
너무 깊게 파면 나오기 어려우니까 땅을 팔 때 나올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놓는게 좋아.“
난 손수 시범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곤 열심히 삽질을 해댔다.
“일을 좀더 확실하게 하고 싶으면
시체를 묻고 그 1m쯤 위에다가는 짐승 시체를 묻어 놓는거야.
혹시라도 누군가 땅을 파더라도 짐승 시체가 나오면 더 파보진 않을테니.
그리고 작업 할 때는 몸에 착 붙은 우의를 입고 장화를 신는게 좋아.
물로 쉽게 씻을 수도 있고 작업 하기도 편하니까.“
녀석은 흙으로 엉망이 된 자신의 옷을 내려다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 주고도 못 배울 알짜배기 정보니까 잘 기억해 두라고”
나는 마치 제자를 키우는 스승의 기분으로
내가 직접 경험한 노하우들을 이야기 해주기 시작했다.
그사이 만족할 만한 구덩이가 완성되었다.
“둘이서 하니까 금방이네.
이제 시체를 집어 넣고 덮으면 끝이야.
가능하면 돌덩이 들을 잔뜩 집어 넣는게 좋아.
공간 메우기도 좋고 땅이 꺼지는것도 막아 주니까.
흙을 다 메꾸면 충분히 잘 밟아 줘야해.
애초에 무덤처럼 살짝 위로 올라올 정도로 쌓아야
밟았을 때 적당히 평평해 지니 잘 기억해 두라고.
그리고 마지막엔 주변 낙엽이랑 가지들로 감쪽같이 만들어 버리는거야.“
구덩이에서 빠져 나와 내가 죽인 시체 곁으로 가며 녀석에게 말했다.
“자 내가 다리를 들테니 네가 위쪽을 들어.”
나와 그 녀석은 시체를 들어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
두 번째 시체까지 다 던져 놓고 나니 녀석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저씨는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되었어요?”
난 기억을 더듬어 예전일을 떠올렸다.
“이유랄게 있나?
세상은 넓고 죽일 놈들은 많으니까 그렇지.“
녀석은 이해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데 열받게 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
처음 죽인놈은 노인네 였는데 성질이 아주 고약한 놈이었어.
담배 끄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아주 그냥 피가 거꾸로 솟았다니까?
화가나서는 벽돌로 주둥이를 틀어막아 줬지.
한방에 골로 갈줄은 몰랐지만 결과적으론 잘되었어.
처음이라 서툴긴 했지만 시체 처리도 깔끔하게 잘했지.
그러고 나니깐 두 번째 부턴 일도 아니었어.
그동안 짜증나는 일 있어도 참고 넘어갔었는데 그때부터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싸가지 없던 식당 직원놈.
방값 내놓으라던 집 주인놈.
건방진 술집 계집년.
거슬리는 것들은 모조리 다 머리통을 깨버렸어.
저기 저놈?
기분좋게 술먹고 있는데 시비를 걸더라고.“
난 구덩이 속에 축 늘어진 시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내가 누군 줄 알고“
녀석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너는 저사람 죽인이유가 뭔데?“
녀석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천천히 대답했다.
“아저씨 말대로 세상엔 죽일 놈들이 많더라구요.”
생긴게 영락없는 샌님이라 무슨 대답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인 듯 했다.
난 만족스럽게 웃으며 땅을 메우기 위해 삽을 찾았다.
그때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저기 다 죽이고 싶은 녀석들 투성이 였어요.
힘으로 남의 것 뺏어 먹고사는 놈들
그저 재미로 약한 사람들 괴롭히는 놈들
돈으로 사람 목숨 좌지우지 하는 놈들...
그런 놈들 볼 때 마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혐오 하는게 뭔지 아세요?“
난 삽 찾는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당신 같이 사람 목숨을 하찮게 생각하는 싸이코 놈들.”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번개처럼 삽을 휘둘렀다.
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구덩이 안으로 떨어졌다.
“내가 저사람 죽인 이유?
저놈이 혼자 사는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얌전히 자고 있는 할머니를 죽이고 돈을 훔쳤거든.
폐지 주워다 팔아가며 모은 고작 몇 만원 훔치겠다고 말이야.
감옥? 그딴걸로는 안돼. 이런 새끼들은 다 죽여 버려야돼.
그래 너 같은 쓰레기 새끼들 말이야.“
녀석은 삽을 내려놓고는 돌덩이를 들어올렸다.
난 힘겹게 팔을 올려 머리를 가리려 했지만 그다지 소용없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또다시 고통이 몰려왔다.
“처음엔 무섭고 내가 잘하는게 맞는지 고민했는데,
당신 덕에 확신이 생겼어.
쓰레기들은 더 볼 것 없이 다 죽여버려야 돼.
게다가 좋은걸 많이 배웠으니 앞으로도 유용하게 잘 써먹을 수 있겠어.
아, 그리고 한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 갈게 있어.“
녀석은 다시 한번 돌을 들어 올리며 말을 마쳤다.
“당신이랑 나, 같은 편 아니야.”
출처 | 영상출처 : https://youtu.be/cMWaAe0RcJ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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