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의 일이였습니다. 오유에 작성하던 공략이 마무리 되고 마지막으로 브금만 넣으면 되는지라 잠시 휴게하기로 했습니다.
좀 피곤해서 세수 좀 할까 하고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냉장고에서 사과도 한 덩이 꺼내먹었습니다. 상했더군요. 큭.
그렇게 주방에 체류하는 사이 제 방의 컴퓨터가 흉측한 효과음을 냈습니다. 당시 전 평소에도 가끔 들리던 소리라 별거 아닐거라 생각했죠.
방에 돌아왔습니다.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보호기를 지우고 어떤 효과음이였을까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래 작업창에 어떤 아이콘이 깜빡였습니다.
다름아닌 인터넷 아이콘이였습니다.
깜빡거리는 그것을 클릭해보니 인터넷 연결 오류라고 창이 띄워져있더군요.
거기까진 좋습니다. 저희 집은 무선공유기를 쓰기에 가끔 이럴때가 있습니다. 기다리기만 하면 인터넷은 자동으로 연결되고 오류창은 사라지지요.
문제는 그 후입니다.
불쾌한 효과음이 한번 더 울리더니 인터넷 연결 오류 창 위에 또 다른 창이 생성됐습니다.
예기치못한 오류가 발생해 프로그램을 종료합니다.
..?
보통 확인 창엔 확인과 취소 두 선택지가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 창엔 확인밖에 없더군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치면 무조건 '예'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 이상 앞으로 진행할 수 없는 강제성 이벤트랄까요.
'오유에서 글을 쓰면 자동으로 저장해주니까 꺼도 괜찮겠지'
그렇게 전 낙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약 1분 후 저는 경직하고 맙니다.
'저장된 게시물 내용찾기' 버튼을 눌렀지만 그것이 복구해준 글 내용은 제가 썼던 내용의 반절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숨쉬기 힘들어지더군요.
일주일동안 쓴 공략글인데.
나름 정성을 들여 썼는데.
..후
아직 하나 더 남았습니다. 오늘 저녁, 그러니까 거의 몇 시간 전 일이겠군요.
낮에 공략 날려먹어서 면목없다는 글을 오유에 올렸습니다. 일단 남은 게시글이라도 빨리 정리해올리겠다. 그런 내용이였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정리를 시작하려했습니다. 컴퓨터의 암호를 풀고 인터넷창을 올려 오유 글쓰기창을 올렸습니다.
근거없는 불길한 예감과는 달리 제대로 남아있더군요. 안심했습니다.
그대로 키보드에 손을 올린 순간.
또 소리가 울리더군요.
윈도97만큼 불쾌한 경고음은 아니었으나 그 '뗑' 특유의 울림은 상당히 신경에 거슬립니다.
이번에도 '인터넷 연결 오류'창과 '예기치 못한 오류로 프로그램 종료'창이 순서대로 떴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저장은 되어있을겁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 공략이 저장됐는지 확인을 했었거든요.
다시 인터넷창을 열고, 오유 글쓰기 버튼을 눌러 '저장된 게시물 내용찾기'를 클릭했습니다.
설마 헨드폰에서 작성한 글까지 저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낮에 올렸던 공략 다 날려먹었다 올린 글, 그것이 그 복구된 내용의 전부였습니다.
'일주일가량 쓴게 거의 절반이상이 날아갔더군요'
제가 썼었던 이 문장이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습니다. 마치 과거의 제가 현재의 저를 농락하는듯 했습니다.
모니터에 침을 뱉을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그런다고 바뀌는거 없으니까요. 남자답게 참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모니터에 침을 뱉었습니다. 참기는 무슨. 속이 후련하더군요.
마우스 커서를 정처없이 계속 움직였습니다. 어떻게하면 복구 할 수 있나요. 뭘 바치면 되나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윽고 손을 놨습니다.
모니터에 묻은 침을 깨끗이 닦아내고 페브리즈를 뿌리며 전 체념했습니다.
망했구나. 면목없다는 게시글을 올리고 나머지라도 올리겠다 양해를 구했었는데.
그 나머지조차 다 날아가버렸으니 이젠 완전히 망했구나.
거짓말쟁이 허세쟁이로 낙인찍힐거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유에 문의글을 올리려했습니다. 혹시 최근 글 외에 더 이전의 글도 복구가 되는지.
그때 그 순간, 어떠한 사실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마치 데스노트를 얻고 기억을 되찾은 라이토처럼.
아니 데스노트 모르시는 분은 이해하기 어렵겠군요. 마치 어제 감명깊게 꿨던 꿈 내용이 번뜩 기억난 것처럼.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 사흘분의 공략을 소실한 저는 피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바탕화면에 텍스트 파일을 만들어 그곳에 백업을 해뒀었던 것입니다.
하필 그것은 바탕화면의 일러스트 그림에 절묘하게 묻혀 눈에 띄지 않았었습니다.
그 텍스트 파일을 개봉하자 그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어있는 저의 공략본을. 저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때의 저.
멍청합니다 현재의 나.
그럼 모두들 보람찬 주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