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申/ 上曰: “君臣大義, 無所逃於天地之間, 而端宗大王避于寧越時, 禁府都事王邦衍, 到郡踧踖, 不敢入, 及其入侍庭中, 端宗大王具冠服御堂中, 問所以, 邦衍無以爲答。 彼以奉命之臣, 猶且如此, 而其時貢生之常侍於前者, 乃請自當於所不忍處, 便卽九竅流血而斃。 天道昭昭, 其在懲惡之道, 所當論以逆律, 貢生姓名, 如有流傳可知之端, 令本道啓聞。”
임금이 말하기를,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천지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종 대왕(端宗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 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정중(庭中)에 입시(入侍)하였을 때에 단종 대왕께서 관복(冠服)을 갖추고 마루로 나아오시어 온 이유를 하문하셨으나, 왕방연이 대답하지 못하였었다. 그가 봉명신(奉命臣)으로서도 오히려 그러했는데,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가, 즉시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 천도(天道)는 논해야겠으니, 그 공생의 성명이 전해와서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으면 본도(本道)로 하여금 계문(啓聞)하게 하라.”
-조선왕조실록 숙종대왕실록 33권. 숙종 25년(1699년, 기묘)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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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군주인 숙종이 직접 단종의 타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 일을 벌인 자에 대해 찾으려 함을 말하고 그게 사서에도 남네요...
"단종에게 사약을 가져간 금부도사는 차마 어찌할 수 없어 엎드려 울기만 하자 옆에 있던 하인이 직접하겠다 하고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았다."
숙종이 노산군이었던 단종을 추존한것도 그렇고, 그때쯤엔 타살이 거의 진실로 받아졌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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