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산마시 민흥리. 인근 송평리와는 서로 ‘윗마을’ ‘아랫마을’하고 부르던 경상북도 변두리의 평화로운 시골마을...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딱딱한 석상들이 을씨년스럽게 가을바람을 맞는 폐촌이 돼 버린 지 어언 10년이다.
재앙은 십년 전 그날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거머리로 가득한 연못에 집어넣었다 뺀 듯한 턱을 가진 털보 귀농민 민 씨가 고사리 밭의 잡초를 베러 가던 어느 날이었다. 고사리 밭과 사이에 좁다란 콘크리트길을 둔 오 영감의 논에선 두꺼비들이 시끄럽게 울어재끼고 있었고, 그 앞을 흰 뱀이 길 건너 멀찍이서 똬리를 틀고 노려보고 있었다.
성질이 나쁜 민 씨는 흰 뱀을 보고 ‘이 요물이, 누구 고사리 농사를 훼방 놓으려고 해?’라고 생각하며 예초기에 시동을 걸었다.
예초기의 커다란 엔진소리에도 백사白蛇는 아랑곳 않고 논밭을 주시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민 씨의 발걸음에도 백사는 아랑곳 않고 논밭을 주시했다.
그리고 예초기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이내 가로질러 베어버렸음에도 떨어진 백사는 아랑곳 않고 논밭을 주시했다.
민 씨가 잘린 백사의 머리를 짓밟아도 백사의 머리는 아랑곳 않고 논밭을 주시했다.
결국 민 씨가 “징그럽다”며 백사의 머리를 논밭으로 뻥 차 버렸고 첨벙 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두꺼비들이 몰려와 백사의 대가리를 뜯어먹었다.
하지만 민 씨는 아랑곳 않고 예초기로 고사리 밭의 잡초를 베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민흥리에는 괴상한 일이 생겨났다. 오 영감의 논에서 가끔 보이던 두꺼비들이 어느새 마을 전체를 뒤덮은 것이었다. 그 덕에 민흥리에선 그 해 여름 만에 흉작의 기미가 보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두꺼비들의 서식처인 논밭의 주인, 오 영감을 향했다.
“오억마이 갸가 사술邪術을 부리가 두꺼비고 맹꼬이고 깨구락지가 이빠이 늘어난기라!”
“땅도 많은 쉐끼 뭐가 모질라가 우리한테 염병이고?”
계속되는 마을 주민들의 질책에 오 영감이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내는 억울하다. 내 무신 재주가 있다꼬 두꺼비를 부리메 내 무신 원한이 있다꼬 마실 농사를 다 망쳐삐리긌노?”
그러자 올해 이장에 당선된 이장 한 씨가 지지 않고 말했다.
“오가 니가 아이모 누가 그랐노? 말을 해 봐라. 구신이 와가 그랬나?”
“승우이 아부지, 고마 하이소. 억마이 아재도 벼 농사 개판 나뿠다 아잉교. 말 들으 보모 틀린기 하나 읎소.”
이장의 아내 윤 씨가 이장을 말리며 말했다.
“니는 가시내가 으디 와가 끼어드노? 이 말서 중차대한 일이니께이 내 걍 가라 안카드나!”
이장은 오히려 윤 씨를 공격하며 외쳤다. 어느새 ‘두꺼비 사태에 대한 오 영감의 입장표명 및 대비책 갈구를 위한 마을회의’는 이장 부부의 부부싸움으로 변질되어 갔다.
“이장님요, 그라모 쩌 아랫말 사는 고 무당이 고로코롬 용하다는디 그 아지매한테 가가 물어보모 안돼예?”
윤 씨가 이장에게 “내 즈딴 기를 스바이라고 오래도 살아삤다 고마 뒤지야제”라고 할 때쯤, 마을에서 ‘어린 그룹’에 속하는 이영자 씨가 말했다.
“영자 니는 마, 새파랗게 젊은 년이 벌써 그 뭐꼬, 오컬트에 빠져가 이런 마을의 중차대한 일에 끼 드가서 쌩지랄이고?”
이장은 철벽처럼 반박했다.
“아랫말엔 고 양증태이 고 시끼네 동네 아이가? 내는 양증태이 고놈 옆에 사는 가시내 말 같은 기는 몬 믿는다.”
3대가 마을에서 살아온 토박이, 서 영감이 외쳤다.
“아부지요, 증태이 아재 우리 말 살 제 이장님 옆집 살았다 아잉교? 그라믄서 이장님 말씀은 와 그리 잘 믿능교?”
마을의 유일한 30대이며 서 영감의 차남인 서준태가 말했다.
“양 가 고 오라질 새끼랑 내는 와 엮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시끼가?”
이장이 서준태에게 소리쳤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서 영감이 서준태를 감싸고, 이장 부인이 이장을 나무라는 등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필요 없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졌고 결국 회의는 흐지부지 되다가 늘 그렇듯 주민 투표까지 시행하여 ‘무당에게 물어본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그렇게 그날, 민흥리의 온동네 사람들이 괴상한 굿이 열리는 마을회관 앞마당으로 모이게 되었다.
“숭구당당 숭당당 숭구당당 숭당당...”
무당 박 씨는 처음 보는 산적이며 물고기를 올린 괴상한 제사상에서 괴상한 내음의 향을 피워놓고 괴상한 주문을 외우며 괴상한 춤동작을 보이며 괴상한 점을 보았다.
“옳거니!”
박 씨는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산신님이 노하셨다! 백사 산신님이 노하셨다! 산신님이 재앙을 막으시던 중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액귀 두꺼비가 재앙을 불러왔다! 모두 죽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겁을 먹었다.
“그... 그라믄... 우째야 하는 깁니꺼...?”
이영자 여사가 벌벌 떨면서 물었다.
“방법이 없다! 어서 마을을 떠나라!”
마을 사람들은 술렁였다. 죽기도 싫고, 고향을 떠나기도 싫다고 서럽게 우는 노파가 있는 한편 사기꾼 아니냐고 대놓고 뒷담을 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중 하나, 보건소에 새로 온 의사 권재호만은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사내가 외쳤다.
“근데 으뜬 쉐끼가 산신님을 죽인 깁니꺼?”
“맞심더! 그쉐끼가 누굽니꺼? 아주 갱을 치야함더!”
사내의 한마디에 마을 사람들의 감정은 공포에서 분노로 물결이 일어나듯이 싹 바뀌어갔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무당은 침착하게 사람들을 진정시켰고, 물결이 잠잠해지자 이내 외쳤다.
“내 그대들의 소원을 들어 산신님을 대신해 그 원수를 처벌하겠다!”
무당은 어디선가 대뜸 칼을 빼내들더니 놀라우리만큼 날랜 몸짓으로 마을회관 옥상에 칼을 꽂고 재주를 넘어 땅에 내려왔다. 그러고는 방울을 흔들며 주문을 외웠다.
“자! 산신이시여! 산신님을 죽인 그 불한당에게 엄벌을 내리소서!”
주문이 십 여 초간 계속되자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마을회관 옥상에 꽂힌 칼 또한 흔들렸으며 사람들이 칼에 대해 까먹었을 때 쯤, 칼이 옥상의 벽돌에서 뽑혀 정확히 마을회관 문에서 굿을 바라보던 민 씨의 머리통에 꽂혔다.
“신벌이 내려졌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보건소 청년의 부검 결과 민 씨는 ‘사고사’로, 칼을 꽂은 무당은 ‘과실치사죄’로 판결나 벌금 및 위자료를 무는 것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