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침몰한 천안함에서 구조되지 못한 승조원들의 생존 가능성을 두고 72시간이라느니 최대 일주일이라느니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던 때였다. 내가 해군에서 6년 가까이 근무한 것을 알고 있던 한겨레 기자가 뭐라도 건져볼 요량으로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나는 일언지하에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생존 기능성 빵프로입니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72시간 정도라고 하던데...”
“그건, 승조원들이 침몰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얌전히 꼬르륵 가라앉았을 때 얘기구요. 이 경우는 멀쩡히 항해 중이던 배가 전조 증상도 없이 말 그대로 선체가 똑 부러졌단 말이에요. 그럼 승조원들이 미처 대비하거나 피신할 틈도 없이 잘려나간 뒷부분으로 급격하게 물이 쏟아져 들어왔을 거예요. 함미에 충분한 공간이 있는 건 맞지만 해당 구역으로 피신한 뒤 밀폐까지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아~ 그렇겠네요. 그런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해군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그걸 모르는 걸까요?”
“알죠.”
“그런데 왜 생존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걸까요?”
“글쎄요... 사람들의 눈을 붙들어두기 위한 거 아닐까요?”
“눈을 붙들어두다뇨?”
“사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침몰 원인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침몰 원인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오로지 생존 가능성만 얘기하고 있잖아요. 저 또한 해군 출신으로서 단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바라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한 생존 가능성은 없어요.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에요.”
“그건 정부에서 정보를 독점하고 있어서 밝히기가 쉽지 않아요.”
“기자님, 지금부터 제 얘기 잘 들으세요. 모든 해군 함정들은 항해일지와 통신일지를 써요. 그걸 찾으세요. 항해일지와 통신일지를 보면 천안함이 왜 그시각에 거기로 갔는지가 나올 거예요. 거기다 추가로 KNTDS(Korea Naval Tactical Data System) 기록도 확보하면 좋아요.”
“그걸 해군에서 내놓을까요?”
“비밀에 속하는 거라 쉽게 주진 않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그쪽도 정신이 없을 때라 실수로 내놓을 수도 있어요.”
“네. 한 번 알아볼게요.”
그렇게 우리의 통화는 끝났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한겨레에서는 그와 관련한 어떤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궁금증이 커져갈 무렵 예의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글로씨 죄송해요.”
“뭐가요?”
“글로씨가 알려주신대로 저희 내부망에 올렸는데, 데스크에서 킬 했어요.”
“이유는요?”
“현시점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거겠죠.”
“음...그렇군요.”
“대신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공유를 했으니까 누구라도 쓸 거예요.”
“네. 애쓰셨네요.”
씁쓸했다. 그래도 눈꼽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는 한겨레 데스크의 수준이 그정도라니... 이후 KBS를 필두로 천안함의 항해일지와 통신기록, KNTDS에 관한 얘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한겨레는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은근슬쩍 기사 몇줄을 써제꼈다.
몇년이 지나 세월호가 침몰하던날... 이름도 모르는 한겨레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존 가능성을 물었다. 나는 천안함 때와 같은 대답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한겨레에서는 새월호의 항해기록과 통신기록에 대한 기사는 한참 후에야 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한겨레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