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인더 11화입니다.
사실 장편이다보니 쉬어가는 느낌이 좀 있어야할텐데
한화씩 연재하는 것도 그렇고 잘 쓰지도 못하다보니
빠르게 진행하는게 낫겠죠?
잘부탁드립니다.
(추천과 관심 댓글은 언제나 힘이 됩니다!)
11.
...
....
고백은 주말에 하려고 했었다. 그러려면 약속을 잡아야 하지 않나? 그 이야기라도 할까. 사실 그 이야기 말고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도 내가 미리 생각했던 것이라 떠오른 것이지, 임기응변이 약한 나로서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하연이가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하연아!”
“... 왜?”
이미 그 눈엔 기대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돌아봤다는 건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
“내일 시간 돼?”
“내일? 음... 왜?”
“아. 그러니까... 사과의 의미로 내일 밥이라도 살까해서. 할 얘기도 있고.”
“할 얘기? 으음. 주말 언제?”
나는 망설이는 하연이의 얼굴에서 다시 한 번 기대감을 엿보았다.
“일요일? 토요일? 편한대로 해. 내가 맞출게.”
“그러면... 일요일. 일요일로.”
그렇게 요일을 정하며 하연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뒤로 묶은 머리가 몸짓을 따라 흔들렸다. 내 눈동자도 그 몸짓을 따라 움직인다.
“그럼 일요일 점심에?”
“응. 아. 학원 늦겠다. 먼저 갈게!”
“어. 어...”
하연이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몸을 돌렸다.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눈은 여전히 그 궤적을 쫓았다. 긴장감은 순식간에 몸을 빠져나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상시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하연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감이 들며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안도감은 얼마가지도 못하고, 일요일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막상 일요일에 만난다해도 말을 잘 꺼낼 수 있을지, 또 얼버무려 넘어가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다. 사실 리와인더가 있지 않았다면 주말에 만나자는 말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나도 돌아갈까. 어느새 하연이는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나도 가방끈을 고쳐매고는 걸음을 옮겼다.
강당 뒤편의 그늘에서 나오자 아직은 높이 떠있는 햇빛이 나를 강하게 내리쬐었다. 정면에서 비치는 햇빛에 절로 눈을 찌푸리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고 걷는다. 그래도 하늘 끝에서 구름 떼가 해를 집어 삼키려는 듯 달려오는 것을 보니 내일은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는 것은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좋아하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쏟아지는 빗소리와 몸을 시원하게 식혀버리는 그 느낌이 좋았다. 비를 맞고 난 다음의 후처리는 문제이긴 하지만.
습관적으로 자전거를 묶어두는 곳으로 걸어갔지만, 거기에 가서야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다시 몸을 돌렸다. 학교가 끝난 지 좀 지난 탓에 애들이 몇 없었다. 신호를 놓쳐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는데, 멀리 횡단보도 끝을 건너고 있는 한지석의 모습이 보였다. 알은체할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을 돌이켜보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의외로 시간이 꽤 지나 벌써 5시를 넘어갔다. 조금 서두른다면 학원에 늦지는 않겠지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시간이었다.
물리치료를 받기를 권장받았기에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으나 그러면 확실히 학원에는 늦어버리는 시간이었다. 저녁도 굶어야 했다.
딱히 쉰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제 막 학기가 끝나가고 있어서. 방학의 시작까진 학원도 좀 널널했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 너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도달해 인도의 연석에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 허벅지에서 느껴진 진동 소리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웅하며 울린 소리에 저도 모르게 힘이 풀린 것일지도.
나는 자세를 곧추세우며 인도에 서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연이로부터의 문자이려나. 스팸일 수도 있었지만 좀 전에 하연이와 약속을 잡았으니 하연이로부터 문자가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연이로부터 문자라고 생각하니 막연히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반대로 무슨 이야기일지 기대감과 궁금증이 그것을 억눌렀다. 바지의 주머니로부터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잠금을 풀었다.
그러나 잠금화면을 풀면서 느낀 것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막연한 불안감을 억누르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거부감과 불쾌함, 그리고 역겨움이 내 속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려던 나는 바로 옆에 서 있던 가로수를 짚은 채 헛구역질 했다.
“우읍. 우에엑.”
위액이 역류한 듯 목 안쪽이 타는 듯이 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해 머릿속은 의문부호로 가득했다. 상황을 깨닫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는 것이 없었다.
“켁켁. 크흡.”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불빛이 들어온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을 확인한 내 두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절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리와인더의 알람이 떠 있었으니까.
정신없이 집안으로 되돌아왔다.
왜 그렇게 구역질을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면서 생기는 현기증 같은 것일까. 아니면 미래에 있었던 일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반작용이라기엔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나의 기억까지 모조리 지워지는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일 때문이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자... 리와인더로 인한 후유증이나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이미 교통사고 때와 그 이전에 복권을 통해 실험할 때는 이런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몸이 좋지 않은 탓일까.
그래. 리와인더의 알람이 겹친 일은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급체라던가 순간적인, 그저 단순한 현기증일 수도 있었다. 의학적으로 배운 것이 없으니 뭐라고 단순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냉수를 한잔 받아 단숨에 넘겼다. 정신이 좀 드는 느낌이었다. 속이 쓰린 것도 조금은 가셨다. 조금 전의 그것은 우연이라고 치더라도. 리와인더의 알람은...
스마트폰을 다시 한번 열어 리와인더를 확인했다. 리와인더가 울린 시간은 5시 2분.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계획대로면 정확히 매시 정각해 보내기로 생각했었는데 그것과는 오차가 조금 있었다.
시간이 조금 차이 났다거나 돌발상황이라는 뜻인데... 2분 정도는 오차범위 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마 고백은 어떤 형태였든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하아.”
이래저래 갑갑한 기분이었다. 고백이 거절당한 게 아닌 고백을 제대로 시도를 한 건지 아닌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나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은 고백이 성공했을 때였다. 고백에 성공해서 하연이와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거지. 오한이 들었다.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내가 죽을 뻔하기라도 하는 건가.
... 어차피 수많은 가정 중 하나일 뿐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리 예상하고 추측하더라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그것이 들어맞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근거를 만들어 과거의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계획을 만들고 그 계획에 따라 행동하여 나에게 추측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기반과 근거로 쌓아 올린 추측으로 무슨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다행이다. 단순히 고백 실패라고 친다면 다시 시도하면 될 테고 아니면 포기해도 괜찮다. 조금 속이 쓰겠지만...
그래.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텐데. 씁쓸하긴 해도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고백이 잘 되었는데 되돌렸다면 그만큼 심각한 일이라는 이야기일 테니.
떠오르는 방법은 역시 시간을 통해 추측하는 것이다. 딱히 그것말곤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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