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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로 8년 만에 지상파 복귀…
“내가 음모론자? 본질적으로 모든 추론은 입증되기 전까지 음모론”
“나는 방송인이란 자의식이 전혀 없다”
그는 11월4일 SBS 새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로 8년 만에 지상파 방송에 복귀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지상파 방송에서 메인 진행을 맡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어준에 대한 평가는 다분히 양면적이다. 그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은 그가 팟캐스트 등으로 기존 언론이 제기하지 못했던 의혹을 새롭게 드러내거나 여러 시사 이슈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에 열광한다. 다른 한편에선 ‘음모론’ 등이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이뤄질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우려한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제작 담당자인 김종일 피디는 “호감을 가진 분이 많지만 반대로 우려하는 분도 많을 걸로 안다. 형식은 좀 가벼울지 몰라도 내용은 정도를 지킬 것”이라며 “기존 이슈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생산할 줄 아는 진행자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 총수를 10월11일 서울 충정로 ‘벙커1’에서 만났다. 새 프로그램 이야기와 함께 그에게 가해지는 여러 비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일단, 사진은 무조건 얼굴이 작게 나온 걸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시사를 주제로 한 지상파 방송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임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1순위였던 당사자로서 소감이 어떤가.
나름 다양한 층위의 방송을 지속하고 살았던 자로서 재수 없는 말이긴 한데, 사실이니까 그냥 뱉자면, 나는 방송인이란 자의식이 전혀 없다. 애초 생겨먹기를 ‘누군가 나를 쓰지 않으면 직접 만들어 내가 나를 쓰지, 뭐’ 주의라, 퇴출됐다 또는 복귀한다 이런 감흥 자체가 없다. 나를 잠시 필요로 하는 시대 또한 하릴없이 지나갈 터이니 감격 역시 없다. 다만 밥줄 끊어지기 싫으면 저쪽 구석에 가서 ‘닥치고 짜치라’는 협박으로 시민적 자존감을 유린해 정권을 유지하던, 비열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던 시대가 이제야 비로소 마감되는구나 하는 감상은 있다.
섭외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는 얘길 들었다.
난 날것이 좋다. 편하다. 실수하면 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딱 내가 가진 것만으로 장사하다 가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생겨먹은 종자인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생방송 라디오가 좋다. 연출하고 녹화하고 편집해서 마침내 드라마를 구성해내는 TV는 불편하다. 그래서 모든 TV 출연 요청을 고사해왔다. 이 팀과 결국 함께하기로 한 것은, 일차적으로 책임피디의 인간 범주를 넘어서는 끈기에 탄복·항복했던 바가 크다. 그리고 책임피디의 다큐적 감수성이 날것을 좋아하는 내 감수성과 투박하게, 맥이 닿아 편했다.
설정은 극적이지만 내용과 시각은 정통
‘거의’ 정통 정치시사 토크쇼라는 콘셉트는 뭔가.
정통이라고 하기엔 진행자의 몰골부터 정통이 아니잖나. (웃음) 진행자의 행색과 말투와 태도는 유사 노숙자적이고 프로그램 설정은 과장되고 극적이지만 다루는 주제와 내용과 시각은 정통이라는 의미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주역 피디인 배정훈 피디가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최근 배 피디와 프랑스 파리에서 중요한 인물을 인터뷰하고 왔다던데.
배 피디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주역 피디인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피디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웃음) 그러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 빼준 거 아니겠나. 으하하. 박근혜 대통령 ‘5촌 살인사건’ 두바이 취재 때 동행했던 유일한 지상파 피디였다. 배 피디가 합류한다는 것은 탐사보도 영역이 프로그램의 주요한 한 축이 된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꼭 합류시켜달라 요청했다.
파리에서 인터뷰한 인물은 중요하다 표현하기보다는, 분명 인터뷰 대상이 되는 인물임에도 미디어가 접근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또는 당사자가 접근을 거부했던 인물이라고 하는 게 적확하겠다. 박근혜 정권 시절 사건 중 그 실체가 합리적 의문의 여지 없이 명백하게 밝혀졌다고 보기 힘든 사건의 핵심 관련자다. 답을 얻지 못하면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이 사건도 애초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의구심에서 첫 질문부터 다시 해보자며 만난 인물이다. 궁금한가? 안 알려준다. (웃음)
다른 시사예능 프로그램과 견줘 어떤 차별화를 꾀할 것인가.
내가 전략이고 차별화다, 으하하. 재수 없나. 재수 없어 하시라. 즐거운데 유익하기까지 하면 장땡이지. (웃음) 내가 생겨먹은 꼴을 어떻게 프로그램에서 코너화할지 고심했다. 토크 위주로 진행되는 최근의 시사예능 프로와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시사프로를 만나게 되리라 장담하는 바다.
김어준이라는 인물이 대중화된 계기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였다. <나꼼수>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쫄지 마, 떠들어도 돼’, 이 태도는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나꼼수>는 그렇게 탐사의 외피를 쓴, 시대에 대한 위로였다. 그 영향이나 의미는 제삼자가 답할 일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만들었고,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진보언론은 진보정권에 애정 가져야”
과거 <나꼼수>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지금의 상황에서 김어준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청와대 권력이 교체됐을 뿐이다, 겨우. 그리고 정권 교체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시대가 너무 후져, 대가리에 돈과 제 욕망밖에 없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 주인 행세하는 꼬락서니가 가소롭고 하찮아서, 바꾸고 싶었던 거다. 정권 교체는 그 수단일 뿐. 내 능력치 한계가 자명한지라 역할 범주가 제한적이나, 매체가 무엇이든 정칟경제·사회·문화적으로 제발 후지지 말자는 게 일관된 목적 메시지다.
지상파 방송 진행자로서 책임감도 만만치 않을 듯한데, <나꼼수>처럼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을까.
<나꼼수> 때 각종 소송을 달고 살았다. 그때는 책임감이 없어 그랬겠나. 바보. (웃음) 누구도 나를 정권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없는데 어떻게 무책임하겠나. 내 발언을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압박감은 지금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화법과 수위로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김어준 총수를 ‘음모론의 대갗라고 평가한다. 김어준식 음모론은 기존 언론이 제기하지 못했던 내용을 드러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보도는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 가능성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인터뷰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내가 음모론자로 불리는 게 기성 미디어 입장에선 다행이고 신나나보다. (웃음) 그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본질적으로 모든 추론은 입증되기 전까지 음모론이다. 자신의 경험치를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합리적 추론을 음모론이라 공격하는 건, 그 ‘론’이 사실로 입증되는 공포를 거절하는 방어기제거나 공작적 기획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설마’이거나 단순한 지적 상상력의 부재거나 그 자체가 방해 공작이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시대는 가능한 모든 추론을 의도적으로 멈춰서는 안 되는 시절이었다. 비밀과 공작이 그 정권들을 지탱한 양 축이다.” 5년 전 <나꼼수>가 한 주장들이 지금 입증되는 걸 보라.
‘친정부 언론인’이라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친정부’의 뉘앙스는 ‘권력과 결탁하는’ ‘출세 지향의’ ‘곡학아세’ 아닌가. 내 성깔머리와 가장 먼 단어들이다. 현 정부뿐 아니라 누구의 덕도 볼 생각 없다. 지상파 출연이 그 덕 아니냐. 그건 내 덕이다. (웃음) 내 세계관과 맞는 정부를 지지하는 건 당연한 거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전 정부들에 가했던 수준의 비판적 잣대를 그대로 적용할 건가.
문재인 정부도 잘못하고 실수할 게다, 당연히. 그럴 때 상대적으로 관대할 거다. 현 정부의 세계관에 동의하는 한 잘못과 실수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질문의 의도는 ‘무릇 언론이라면 정부에 냉정한 비판적 견제가 마땅하지 않은갗일 텐데, 개인적으로 촌스러운 언론관이라 간주한다. 제 역할을 ‘절대적 논평자’로 포지셔닝하는 언론의 자의식 과잉이다.
언론도 제가 속한 시대와 세계의, 겨우 일부일 뿐이다. 진보언론은 제가 속한 시대와 세상의 진보에 조금이라도 더 기여코자 존재하는 거 아닌가. 그럼 진보매체가 진보정권을 상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보수정권을 대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빨아주라는 게 아니다. 애정을 가지라는 거다.
“<김어준의 파파이스> PD 고생 많았다”
김어준 총수는 그동안 기존 언론에 비판적 자세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모든 언론을 하나로 놓고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시민들의 ‘언론 냉소’를 키우는 측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모든 언론을 같은 잣대로 본 적 없거니와 작금의 대중 냉소 역시 모든 언론을 같은 준거로 야속해한 결과가 아니다. 범진보 독자군 이탈의 귀책사유는 진보언론 자신에게 있다.
기존 언론이 극복할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졸라, 많다. 그건 따로 하나의 인터뷰거리다.
그동안 언론인 또는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쌓은 대표적 업적은 무엇이라고 보나. 반대로 후회되는 일은 없었나.
업적이라 여기는 거 없다. 후회 따윈 원래 없다.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는 그만두는 건가.
처음 출발 때부터 정권 교체까지 같이 가자 했다. 오히려 6개월 더 한 셈이다. 이경주 피디에게 특히 고맙다. 여러모로 고생이 참 많았다. 한겨레TV와 함께할 날, 앞으로도 다시 있겠으나 일단 각자 간다. 너무 오래 붙어 있었더니 서로 지겹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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